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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세상을 쓰다

개의 시선으로 본 삶의 흔적, 김훈 <개> 김훈의 는 담담하다. 특별한 사건도 서사의 큰 줄기도 없다. 그저 개의 시선으로 사람의 삶을 보고, 듣고, 맡고, 핥고, 짖을 뿐이다. 개의 시선은 낯설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모두 이질적인 것들로 만들어버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러나 관습적으로 당연시했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령 새끼를 단순히 ‘먹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새끼의 고통을 몸속으로 ‘돌려보내는’ 행위로 승화하는 개의 시선은 미묘하게 대비된다. 이런 충돌은 죽음을 이해하는 서로의 방식에서 특히 극대화된다. 사람은 무덤을 두어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개는 죽음의 장소를 다시는 찾아가지 않음으로써 아픔을 견뎌낸다. 다른 한편 이 소설은 개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쉬이 관심 갖지 않을 ..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3월 개봉 영화 기대작 다섯 편 삼월은 새로운 시작의 달이다. 아직 학교에 다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게 새해의 시작은 일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삼월이다. 그렇다. 삼월은 누가 뭐래도 개강(혹은 개학)의 달이다. 세 달여 만에 찾아간 학교는 학생들로 붐볐다. 모두 다시 돌아온, 하지만 늘 새로운 삼월을 맞이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삼월에 개봉할 아름다운 영화들을 놓쳐서야 되겠나. 짬이 안 나면 짬을 내서라도 영화관을 찾아가자. 원래 없어야 진정한 ‘짬’이다. 그대들이 애써 마련해 놓은 황금 같은 공강 시간은 이런 데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첫 수업을 오후로 잡은 이들이라면, 브라보! 그대들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내 알기에. 착각이라면, 죄송하다. 그렇지만 이번 .. 더보기
<친일인명사전>, 뭐가 그리 두렵나 광복 70주년 3·1절이 지나갔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되뇌었고, 각종 행사들이 열렸다. 태극기 애국 논쟁을 제외하면 70주년 3·1절 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하게 흘러가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자 신문을 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09년 발간한 을 서울시내 중고등학교에서 비치하려 하자 보수단체에서 이에 제동을 건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보고 두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하나는 최근 들어 보수단체들이 분야 가리지 않고 맹활약하고 있어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수단체가 왜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에게 온정을 베푸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물론 이 나라 무수히 많은 보수단체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다는 점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다만 보.. 더보기
마이 리틀 텔레비전 아이디어 제안서 설 연휴 전부터 눈여겨본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다음팟에서 생중계되었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 방송 아이디어를 착용해 지상파에서 시도했던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고, 모방이 모방을 낳고 있는 지상파 예능의 신선함을 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다음팟 생방송를 지켜봤고, 나의 기대는 한껏 더해졌다. 웹상에서 프로그램 생방송 당시,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감자로 올랐다. 본 방송 전의 한 시간 반여의 생방송은 가장 훌륭한 광고였다. 그리고 본 방송을 지켜봤다. 나의 점수는 60점 정도. 지상파와 인터넷 방송의 결합의 시도는 좋았으나, 시도를 가꾸는 제작진의 분투 노력은 어쩐지 언밸런스 해보였다. 전 세계 미디어를 장악하려는 프로젝트라고 말하며, 프로그램 위에 군림.. 더보기
[단막극 다시보기] <위대한 개츠비>에 바치는 드라마 <위대한 계춘빈> 지독한 짝사랑을 한 남자의 이야기. 위대한 (짝사랑을 한) 개츠비의 이야기다. 피츠제럴드의 이 위대한 소설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며 이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말 단순한 사랑 이야기지만 이 소설은 몇 번을 분석해도 모자를 만큼 위대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쓰는 나도 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고 그 남자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숭고함만 어렴풋이 깨달은 정도였다. 2010년에 KBS2에서 방영된 을 볼 때의 나는 를 알지 못했다. 그 때 나는 이 드라마 특유의 밝은 분위기와 “정유미”라는 순수한 매력을 지닌 배우에 반했었다. 그리고 이라는 드라마로 멋지게 이름을 알린 윤난중 작가의 독특한 이야기 구성에 빠졌었다. 5년이 흘렀고 나도 그 때보다는 조금 달라졌다. 도 읽었.. 더보기
<킹스맨>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악한 포스터와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예고편을 봤을 때만 해도 한 편의 코믹물인 줄만 알았다. 얘기다. 하지만 막상 열어본 영화는 생각보다 진지했고, 또 복잡했다. 개봉한 지 이 주도 넘은 이 시점에, 새로운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에 을 올리는 까닭이다. 애초에 나는 머리 식힐 겸, 킬링타임용 정도로 를 보러 갔음을 시인해야겠다. 정신없이 싸우고, 정신없이 웃긴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 풀리지 않은 궁금증들이 머리를 맴돌았고, 하고 싶은 말들은 또 너무 많았다. 이 영화를 ‘아 그 영화. 얼마 전에 봤었지. 근데, 무슨 내용이더라.’ 정도로 회상한다면 굉장히 안타까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겸 글을 남긴다.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 더보기
의전서열 거스른 인사, 국회의원 특보가 소통의 길? 어제(27일) 청와대 인선 개편 작업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혹시?’ 하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 실망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필자 또한 국정원장이 비서실장이 되었고, 여당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정무특보 자리를 꿰찬 것에 대해 잠시나마 놀라긴 했어도 ‘충격’까지 받지는 않았다(어쩌면 반복되는 인사 참극에 대한 내성인지도 모르겠다). 의전서열 11위 → 18위? 그러다가 점심에 신문을 읽다 재밌는 칼럼을 발견했다. 중앙일보 이규연 논설위원의 글이었다. 요지는 의전서열 18위 비서실장이 국정축이 되는 것이 정상이냐며 김기춘 비서실장 사례처럼 차기 비서실장이 ‘왕실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해당 칼럼은 비서실장 발표 전에 쓰인 글이.. 더보기
삼시세끼 차승원 외출, 만재도 산체 하나 발령 딸에 대한 부정은 먼 타지에서도 그윽했다. 생일을 맞이한 딸을 만나러 20시간에 외출을 결심한 차승원은 손호준과 유해진 둘만 만재도에 남기고 뭍으로 향했다. 끼니를 담당했던 우리의 차줌마 차승원은 혹여 둘이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울까봐 배추 4포기를 때다가 겉절이를 한 소쿠리 만들어 준비했다. 저번 유해진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콩자반을 냉큼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배 시간을 지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손호준, 유해진을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겉절이를 버무렸다. 모르긴 몰라도 차승원의 요리에는 화려한 실력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차승원의 외출은 만재도 파란 지붕 가족에 크나 큰 타격으로 예상되었다. 불과 1박 2일의 외출이었지만, 집안일 지분 100%를 차지하는 그의.. 더보기
<나이트 크롤러> 로버트 엘스윗과 제이크 질렌할 덕분에 (나이트)의 내러티브는 명확했다. 다른 말로 하면 의 내러티브에 대한 의문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인과관계는 뚜렷했고,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구조도 거의 완벽했다. 는 마치 한 편의 첩보물 같았다. 사실상 영화는 한 민간 촬영기사에 대한 내용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위에서 말한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영화 내내 이어지는 긴장감도 그러했다. 이에 대한 의문은 감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뒤 해소되었다. 댄 길로이(Dan Gilroy)는 각본가 출신이다. (숀 레비, 2011), (토니 길로이, 2012)같이 잘 알려진 영화 외에도 6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쓴 경력이 있다. 그리고 는 그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즉, 각본가 출신인 길로이는 에서 자신이.. 더보기
충무공에 대한 단상(斷想) 며칠 전 광화문을 지나다가 이순신 동상 앞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매번 무심결에 지나치던 천막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가족은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혹자는 이제 세월호법이 통과됐는데 왜 여전히 광화문을 ‘점거’하고 있냐며 그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제 천막 주위에는 적막함이 가득하다. 용기 있는 누군가는 말한다. “여기서 가장 힘든 분들은 유가족들입니다. 그분들 힘내시라고 격려하는 게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태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동안 소통은 온데간데없고 독선과 아집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용감한 시민들은 계속해서 등장했지만 유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