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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의전서열 거스른 인사, 국회의원 특보가 소통의 길?

어제(27일) 청와대 인선 개편 작업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혹시?’ 하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 실망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필자 또한 국정원장이 비서실장이 되었고, 여당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정무특보 자리를 꿰찬 것에 대해 잠시나마 놀라긴 했어도 ‘충격’까지 받지는 않았다(어쩌면 반복되는 인사 참극에 대한 내성인지도 모르겠다).

 

의전서열 11위 → 18위?

 

그러다가 점심에 신문을 읽다 재밌는 칼럼을 발견했다. 중앙일보 이규연 논설위원의 글이었다. 요지는 의전서열 18위 비서실장이 국정축이 되는 것이 정상이냐며 김기춘 비서실장 사례처럼 차기 비서실장이 ‘왕실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해당 칼럼은 비서실장 발표 전에 쓰인 글이다). 나는 문득 국정원장과 비서실장의 의전서열을 비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확인 결과, 국정원장의 의전서열은 11위, 비서실장의 서열은 18위였다(2015년 기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권력은 상승지향적이다. 당연히 위를 향하는 것이 이치다. 의전서열은 명목일 뿐, 비서실장의 위계는 적어도 국정원장보다 높아 보인다. 백번 양보해서 국가를 위해 좀 더 낮은 자리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임 국정원장에 임명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여전히 ‘실세’인 것(혹은 그렇게 언론에 비춰지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많은 하마평이 쏟아진 자리가 다름 아닌 비서실장이었고, 실제로 이날 한 언론은 비서실장 내정자를 다른 이로 지목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비서실장 발표 후에도 내정자의 과거 이력부터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비서실장이 될지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하는 언론이 대다수 있었다. 언론이 관심을 가지는 인사는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그에 걸맞은 사람이 와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신임 비서실장의 자격 요건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현 정권의 인재 풀이 너무 좁은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여당대표를 총리로,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으로. 이는 흡사 ‘돌려막기’와 유사한 듯한 착각(또는 현실)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국회의원 특보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목은 3명의 새로운 정무특보들이다. 비박계로 간주되는 주호영 의원과 친박계의 핵심인 윤상현·김재원 의원이 국회의원 겸 특보로 임명됐다. 냉정히 말해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가교는 쉽게 말해 연결고리다. 현역 의원들이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선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특보로 임명했어야 한다. 여당 국회의원이 가능하다면, 논리적으론 야당 국회의원도 특보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현 상황은 국민과 정부 사이, 여당과 야당 사이가 아닌 친박과 비박 사이의 가교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을 듯하다.

 

목적과 별개로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정무특보로 근무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어느 네티즌이 지적한 대로 “이러러면 3권분립을 왜 하느냐”는 공격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것이 설령 법적, 행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국민 머릿속에 그려지는 3권분립과 이번 국회의원 특보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국회의원은 각료를 겸직할 수 있다. 총리나 장관직을 맡아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원들은 도의적으로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특보는 스탠스가 애매하다. 장관과 국무총리처럼 행정부의 수반은 아니기 때문에 본업은 국회에 있지만 언제든지 정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특보의 역할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그런 대표가 정부를 위해 얼마든지 조언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특보’라는 이름을 붙여 조언하는 것과 ‘국회의원’ 직함 뒤에 조언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국민들 입장에선 해당 국회의원이 정무특보로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국회의원으로서 입장을 밝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국민, 정부, 국회, 나아가 해당 국회의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소통을 위한 특보를 국회의원으로 임명한 결과, 오히려 애매한 스탠스로 ‘불통’ 이미지가 더 강조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도 작심하고 비판한다. 유 원내대표로서도 답답할 것이다. 취임하며 할 말은 하겠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복심 의원 2명을 특보로 데려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날을 더 세웠는지도 모른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제목소리를 너무 늦게 내고 말았다. 여당 원내대표의 청와대 인선 비판에 기대거나 보태는 방식으로는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 최근 들어 새정치연합은 비판의 목소리를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아마도 중도층 민심을 얻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판할 땐 작심하고 비판하는 것이 야당의 야당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야당이 비판을 받아왔던 가장 주요한 요인은 비판‘만’ 해서였지, 비판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장 야당이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인사 문제에 경우는 좀 더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길 바란다.

 

쓰다 보니,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요는 이것이다. 의전서열과 권력서열은 일치하지 않는다. 의전은 허상이고 실체는 권력이다. 거꾸로 가는 의전서열은 여전히 ‘왕실장’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