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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일기2] 글(4.14) 글이 두렵다. 글을 써야겠다. "재미없게 살기로 했다." 세 번째 막이 올랐다. 반쯤 지친 배우들은 하나같이 벚꽃을 닮아있다. 분장 아래로 금세 땀이 차오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홈플러스에서 '하디 빈 53 쉬라즈'를 샀다. 30% 할인. '진로와인', '오스카'따위를 제외하고 제일 저렴했다. 4천700얼마. 고작 1천원 정도 비쌀 뿐인 다른 종류의 와인도 많았음에도 굳이 이걸 산 건 전적으로 내 지갑에 있던 5만원권 때문이었다. 거스름돈 받을 때 그래도 5천원짜리가 나으니까. 동전이야 저금통에 쑤셔넣으면 그만이다. 홀짝홀짝 S는 술을 마셨다. "으, 맛없어"라고 말하며 술잔을 후루룩 비우는 S는 나와 닮았다. 것보단 내가 S를 닮은 걸까. S는 "한 방울만" 담은 술잔을 세 잔 정도 비웠고.. 더보기
[금주일기2] Prologue 나는 그곳에 없었고, 그곳으로부터 나는 도망쳐나오고 있다. 이곳을 향한 여정.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여행이 시작됐다. 그 이름하야 술여행. by 벼 더보기
[금주일기] 나(1.12) 나도 모르게 자꾸 금주일기를 취중일기라고 말한다. 점심에 회사 근처 'Charlee'에 갔다. 파란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그리스 산토리니에 접어드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생맥주' 1잔을 마셨다. 갖가지 피자, 파스타와 함께. "종5역 13번출구로 나와서 뒤돌면 보이는 투썸 끼고 들어오면서 오른쪽 보면 뜬금없이 이자까야가 하나 있음 그것이 야젠" C의 설명에 따라 "뜬금없이" 종로 5가 '야젠'에 갔다. C와 H를 만났다. C는 4년 만, H는 3개월여 만이다. 10분 정도 늦었는데 먼저 만난 둘은 그새 라면, 숙주볶음, 가라아게를 시켜 먹고 있었다. 라면은 국물만 있었고 가라아게는 한두 조각만 남아있었다. 숙주볶음은 깨나 많았다. 가라아게 한 조각과 라면 국물 몇 숟갈, 그리고 숙주볶음을 많이 먹었다. .. 더보기
[금주일기] 술(1.11) 술을 끊을 순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마시되 오늘부턴 2잔을 넘기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술꾼이자 아버지가 비슷한 공약을 내세운 바 있는데 아마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R과 흑석에서 만났다. 지난번 여성들과의 술자리에 흠취해 결국 술병에 걸려 귀중한 나와의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P형은 이번엔 신경수술을 받았단다. 오늘도 P형은 골방의 것으로 남겨두고 중앙대를 나온 친구에게 저렴한 술집을 추천받았다. 친구는 "저렴은 모르겠다"며 '장독대'를 언급했다. 파전이 대표 메뉴였다. 고맙지만 프로 다이어터로서 밀가루 범벅을 먹을 순 없었고, 대신 R과 단백질 위주의 음식을 찾아 돌아다녔다. 숯불 바베큐 집 등을 전전한 끝에 흑석시장 '순대나라'에 갔다. 모듬 대자와 순대국 하나를 시키고 '장수막걸리' 4통.. 더보기
[금주일기] 요새(1.10) 요새들어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37여년간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람에 천착했으며, 최소한의 단서―표정, 어투, 눈빛 등―만 확보하는 순간 그를 간파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R이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낙천적이라는 점이다. 깨나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나는 R에게 “사람은 지질하고, 세상은 추악하고, 우주는 지독히 새까맣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낙천일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는데, 여기에는 물론 약간의―솔직히, 적지 않은―비아냥이 섞이기도 했지만 호기심이나 부러움의 비중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나봐”라는 R의 답에 “야 이 개새끼야”, 아니면 “인간은 원래 그런 거야.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쭈구리들” 따위의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최대한 억울.. 더보기
[금주일기] 지향(1.9) 지향과 지양을 구별못해 시험문제를 하나 틀렸다. 고등학교 3학년 중간고사. 윤리시험이었다. 씩씩대며 교무실에 찾아간 내게 선생은 다만 "책 많이 읽고 생각을 넓게 하라"고 타일렀다. 지금 그 교훈인지 꾸짖음인지 모를 가르침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지만 최소한 선생 덕분에 나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지양과 지향을 혼동하지 않을 수 있었다. 10여년 만에 불러본다. 이렇게 말하면 내 나이가 드러나겠으나, "그러면 내가 너무 드러나잖아요"라며 굴러온 기회―중고책 따위,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비지떡도 공짜라면 기회라고 생각하는 편이니, 어쨌든―를 걷어찬 홍모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과 달리 나는 드러내보일 만하달 게 그리 없을 뿐더러 차라리 비교하자면 관종에 가까우니까. 오~겡~끼~데~수~까~~? .. 더보기
[금주일기] 가열찬(1.8) 가열찬 주말을 보냈다. 계간(quarterly)비난 멤버들과 노량진 '폼프리츠'에 갔다. '클라우드 생주스' 2잔을 마셨다. 감자튀김 라지 사이즈를 안주로 시켰다. 콜펜인지 바닐라생맥인지를 부여잡고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갓대홍을 소르피자는 의기양양하게 바라봤다. 그는 자몽생맥을 들고 있었다. 갓대홍이 나의 몫까지 계산했다. 이로써 우리의 채무 아닌 채무관계는 끝. 예지력 좋은 학곰군이 비 오는 것을 맞췄다. 아니면 그는 단지 예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이 우산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추워지겠다. by 벼 더보기
[금주일기] 998(1.7) 998일. 어마어마하다. 이 나라의 업보다. 전문시위꾼들과 광화문 '청일집'에 갔다.북어탕, 녹두빈대떡, 모듬을 시켰다. '장수막걸리' 2 통을 마셨다. by 벼 더보기
[금주일기] 티라미수(1.6) 티라미수다. 티라미슈가 아니라. 오후 세시부터 여섯시까지 술을 마셨다는 R이 "술이 모자라다"고 말하는데 잠자코 있을 수가 있나. 대학로 '삼촌은총각'에 가려 했는데 사람이 많아 '코다차야'에 갔다. '맥스 생맥주' 5여잔을 마셨다. 안주로는 크림새우, 나가사끼짬뽕, 물회를 먹었다. 나가사끼짬뽕은 너무 짜 거의 먹지 않았다. 뒤늦게 R의 회사동료가 합류했다. 처음봤다. 나이스 투 미츄. 답없는 연애얘기만 네시간. 집 들어가니 두시. by 벼 더보기
[금주일기] 보건의학(1.5) 보건의학에서 규정하는 '고위험 음주'란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의 경우 소주 7잔, 여성은 5잔 이상 마시는 횟수가 한 달에 1회 이상인 경우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개초핵꿀위험 음주'를 하고 있다. 행보카다. 교대 '아는 형님'에서 숙성삼겹살 무한리필에 '타협노선의 생주스' 무한리필을 먹었다. 핵꿀맛. 다만 얼마나 먹고 마셨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P들과 끊임없이 교육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잘못 키워져왔나. 언젠가 세상은 오타쿠가 될 것이다(Thanks to 들뢰즈). 두 시간여에 걸친 얘기의 결론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너도 이미 글렀으나 그래도 세상은 아직까지 살 만하다, 고 믿는 와중에 내일은 금요일이다. 딱히 특별한 감상은 없다. '금요일'이라 할 만한 금요일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