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들어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37여년간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람에 천착했으며, 최소한의 단서―표정, 어투, 눈빛 등―만 확보하는 순간 그를 간파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R이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낙천적이라는 점이다.
깨나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나는 R에게 “사람은 지질하고, 세상은 추악하고, 우주는 지독히 새까맣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낙천일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는데, 여기에는 물론 약간의―솔직히, 적지 않은―비아냥이 섞이기도 했지만 호기심이나 부러움의 비중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나봐”라는 R의 답에 “야 이 개새끼야”, 아니면 “인간은 원래 그런 거야.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쭈구리들” 따위의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최대한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사람을 너무 쉽게 좋아해서 탈이야!”며 나름의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진실은 오인의 구조 속에서 태어난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당선작의 첫 문장이다.
나같으면 '태어난다' 대신 '드러난다'로 표현했을 것 같지만, 투고조차 안 한 지질이는 침묵하랏.
지난 크리스마스에 마치 자기가 감히 ‘박제가 된 천재’, 아니면 최소한 ‘모던-뽀이’라도 된 마냥 차려입고 명동성당 옆을 지나치듯―그러한 콘셉트로―찍힌 사진을 프사로 바꾼 간잽이가 그날 자기는 다만 친구 셋이서 보냈다고 말하며, 그러나 추후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세 명의 친구 중 자신의 제외한 둘은 여자였으며, 모두 솔로였는데 그 사실은 감쪽같이 숨긴 채 상경했다.
창신동 옥천매운족발에서 앞다리 하나를 시켰다. 앞다리는 뒷다리보다 3000원 비쌌는데, 원래 계획과 달리 앞다리를 시킨 것은 “술은 내가 사겠다”는 간잽이의 말 때문이었다.
‘장수막걸리’ 1통과 ‘카스 병맥주’ 3병을 마셨다. 주먹밥도 시켰다.
화장실 간 사이 간잽이가 감쪽같이 술값만 따로 계산했다. 주먹밥까지 계산하는 포부도 보였다.
필담 멤버로부터 벗어나야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 이라고 간잽이가 말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번 주말엔 간잽이를 따라 부산에 갈 예정이다. 내 인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