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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미국은 한반도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원하며, 중국 주도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이와 정확히 반대 입장이다. 16일엔 방한 중인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사드 도입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나 사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 입장에선 사드의 X밴드 레이더 기능이 부담스럽다. 자국 내 군사적 움직임 등을 고스란히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차관보가 연일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간접적인 압박을 주고 있다. 외교적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 상황, 기시감이 든다. 병자호란 전 조선이 처한 대외 여건이 떠오른다.

대처 방식도 언뜻 보기엔 비슷하다. 당시 광해군은 중립외교로 기존의 태양, 명나라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 후금의 비위를 맞췄다. 정부와 청와대의 움직임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지난 11일 민경욱 대변인은 사드 도입과 관련해 “우리 정부의 입장은 ‘3NO’”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 측과 요청(Request), 협의(Consultation), 결정(Decision)이 없었다는 말이다. 공연한 사드 배치 논쟁으로 중국 측에 밉보이지 않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것이다. 애매하게 논지를 흐림으로써 실리를 추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청와대의 전략적 모호성과 광해군의 중립외교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먼저 사안의 양태와 영역 자체가 다르다. 광해군은 구세력인 명나라와 신세력인 후금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실리외교를 펼쳤다. 이와 달리 미국과 중국은 구세력과 신세력으로 단순히 분류하기 어렵다. 또 결정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요구하고 관철하려는 사안은 범주가 다르다. 미국의 사드 배치는 국방‧안보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고, 중국 주도의 AIIB 참가는 경제적 접근 방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두 사안을 애매하게 다루며 미중 대결 구도를 이어지게 만든 측면이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시대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과거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가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보의 불투명성이 크게 작용했다. 명나라 사절이 후금과의 전쟁에 필요한 지원병을 요청하자 광해군은 도원수 강홍립을 내세워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후금과 휴전을 맺게 함으로써 싸움에 말려들지 않았다. 쉽게 말해 과거에는 외교작전의 의도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방식은 상대국에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11일 청와대는 “요청, 협의, 결정도 없었다”고 했지만 13일 주한미군은 사드 부지를 조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물론 한국 정부에 조사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정부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마지막 차이점은 실행력이다. 광해군은 적어도 지원병을 파견해 전세를 살펴봤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지금 너무 눈치만 본다. 새누리당은 줄곧 사드 도입 문제와 관련해 공론화를 원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15일 열린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출석하지 않아 사드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드를 도입하든 안 하든 배치에 따른 실익을 논할 필요는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러모로 따져 본 후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도입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

 

AIIB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군사적인 선택으로 경제적인 선택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개별적인 사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둘 모두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둘 다 선택하면 된다. 반면 둘 모두 별다른 이익이 없다면 포기하는 선택도 못할 것 없다. 이번 문제를 진영 논리로 바라보는 시선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 편, 미국은 영원한 우방으로 여기는 단순한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의 최우방국인 영국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AIIB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중립외교는 가만히 앉아 눈치만 살피는 외교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논의를 한 후 실익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결정을 빨리 내려야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속이 상한 국가와 계속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중립외교다. 광해군의 뒤를 이은 인조가 명분에만 빠져 내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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