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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세상을 쓰다

<임진왜란 1592>, 타국의 시선에 대한 새로운 시선 [리뷰] 3편 1,2편이 가졌던 강렬함에는 비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방영된 시리즈 3편 중에서 가장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3편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유전자 깊숙한 곳에 내장된 듯 한 반일과 분노의 감정을 거둬낸 그 지점에서 우리는 뜬금없는 재앙으로만 여겨졌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이 사실은 깊은 역사적 맥락과 흐름 속에서 차근차근 준비돼왔단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짚어낸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타인의 시선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김응수 분)의 임진왜란 전 행보를 다루는 3편은, 우리에게 있어 그저 망상으로 가득한 “원숭이” 정도로 인식됐던 히데요시의 ‘욕망’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늠자..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6 세계의 끝 [학곰군.txt] 넌 놓치고 있어.뭐를?사진에서 뭐가 보이느냔 말이야.말했잖아. 또라에몽.그것 뿐이야?뭐 쌓인 책들도 있고 오묘한 나무 그림도 있고.그뿐이냐고!왜 갑자기 지랄인데. 뭐 어쩌란거야.정말로 그것밖에 안 보여?응. 귀신이라도 보이냐 너는?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뭔데 그럼.그을렸잖아.그게 뭐.그게 뭐라니. 그을렸대두?아니 그게 뭐 어쨌다고.이게 안 보인다며!그깟 그을음이 뭐가 중요한데?뭐가 중요한 지도 모르는 건 너야.미친놈이. 개소리 할 거면 말 걸지마.볼 수 있는 것도 못 보면서 뭐가 잘났다고 큰 소리 치는 거야.그깟 그을린 자국 때문에 이 지랄을 하는거야? 뭔데 썅. 들어나보자.봐. 잘 들어봐 알겠니?설명이나 해.알았어. 봐. 사진은 누가 자를 대고 자른 것처럼 똑바르게 그을린 자국이 .. 더보기
[문장을 그리다] #2 한강, "흰" by 리카 지금 이 도시에서 그녀가 통과하는 시간은 흰 밤일까, 혹은 검은 낮일까?... 완전한 빛이나 완전한 어둠이 되지 않은 하루들은 과거의 기억들로 일렁거린다. 반추할 수 없는 건 미래의 기억뿐이다. 무정형의 빛이 그녀의 현재 앞에, 그녀가 모르는 원소들로 가득찬 기체와 같은 무엇으로 어른거리고 있다. 한강, "흰", 난다, 2016, p.96 더보기
<임진왜란 1592>, 결핍을 디테일의 힘으로 메우다 [리뷰] 1,2편 “또 이순신?” 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소재 선택이었다. 심지어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는 사극하면 떠오르는 배우 최수종.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전개로 흘러갈 수 있는 조합이다. 심지어 5편 제작에 13억이라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재원의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전문 PD가 직접 극본과 연출을 맡는 순간, 그 모든 예상은 기분 좋게 깨졌다. 는 팩츄얼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물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선보였지만, 엄격하게 따지자면 다큐멘터리적 틀을 빌린 드라마다. 보통의 드라마와 달리 보다 민초(실제로 싸운 군졸들의 삶)에 대한 조망을 보여주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에 상상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 난중일기 등 비교적 많은 사료들에 기인한 결과 그것은 개연성 있는 가능..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5 실패작 [소르피자.txt] 이것은 에어컨이다. 이것은 히터다. 이것은 둘 다 될 수가 있다. 지름이 30센티도 안되어 보여 약할 것 같지만, 이 작은 기계 하나만 건물에 있어도 모든 층에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과,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을 제공해줄 수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보고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기술혁신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하는 말이다. 그런 자가 있다면 더운 여름날 옥상에서 ‘사우론’을 닮은 메론 맛 눈깔사탕을 빨아먹으며 그 사탕이 입에서 녹을 때까지 엎드려뻗쳐를 하고 그것이 끝나자마자 호빗처럼 맨발로 63층 건물을 계단으로만 내려와야 할 것이다. 밑 부분은 왜 녹색으로 칠해져 있냐고? 아 그건, 여름이 너무 더워서 옥상에 있던 우레탄이 녹아 .. 더보기
<고산자> 가능성만의 향연, ‘국뽕’ 판타지는 이제 그만 잘 다뤄지지 않는 참신한 소재, 유명한 감독, 안정적인 원작 소설 기반, 탄탄한 배우진. 차려놓은 밥상만 놓고 봤을 때 영화 (이하 )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을 작품이었다. 구성이 다소 평범했음에도 자연을 담은 씬들 중에서는 탁월함의 가능성이 내비치는 듯한 아름다움 역시 존재했다. 섞어놓은 유머들이 거슬렸지만 그저 우스개꺼리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영화 에는 수많은 펼쳐지지 않은 많은 가능성들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가능성을 접고 스스로 평범 이하의 한국 영화로 전락해버렸다. 는 도입부부터 스스로의 색깔을 명확히 하는 영화다. 김정호(차승원 분) 위로 펼쳐지는 자연환경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지만, 그 탁월함의 경계에서 모든 것이.. 더보기
54살 먹은 이 영화, 여전히 오싹하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 영화 ‘싸이코’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CJ CGV는 이번 추석을 맞아 특가로 영화 예매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정 영화를 선정해 7000원에 제공하는 행사.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늘어선 영화들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이 몇 개 있었다. 잘 됐다 싶었다. 평일/휴일 없는 취업준비생이라지만 그래도 평일과는 다르고 싶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상식으로만 외던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니, 어느새 난 극장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우선 바로 밑에 걸린 동영상을 재생시켜보자. 4분 남짓 재생될 이 음악 하나면 사실 영화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본 것만 같은 기분을 제공할 것이다. 이날 내가 만난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물, ‘싸이코’(PSYCHO)..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4 이름 없는 화가 [호래.txt] 술을 마셔서 정신이 조금 멍한 상태로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그림을 보고 있다. 그림에는 검은 선이 몇 개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 모르겠다. 섬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하고 육지 같기도 하다.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 그림 앞에 멈춰 섰다. 굉장히 관심 있는 사람처럼 그림을 보고 있지만 사실 그림엔 별로 관심이 없다. 무엇을 그린 지도 알 수 없는 그림 따위 봐서 무얼 하나. 그냥 술자리엔 바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데 분위기 맞추며 앉아 있는 건 고역이다. 개새끼들 그냥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면 나는 조금 더 감정에 솔직해 진다. 아니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딘가 과장된 면이 있다. 사실 걔네들은 나한테 ..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36주차(9/5~9/11)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억만무려의 모욕’ 속에서도 [서평] 김수영을 위하여 쓰기에 앞에 고백하자면, 강신주 책의 서평을 쓰는 이는 정작 강신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다. 과 에 삶의 많은 빚을 졌을 때에도 그의 알 수 없는 폭력성은 껄끄러웠다. 내게 있어 그는 마치 모두를 단죄하려는 세례 요한을 꿈꾸지만, 정작 기준에 따라 스스로마저 단죄해야 함에도 스스로에게는 절대로 칼을 댈 수 없는 뻔뻔한 옛 애인과도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오늘의 글 역시 그에게 빚을 져야 한다. 모든 게 끝이 나도 지워낼 수 없는 것이 애증이듯, 그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강신주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진 “김수영을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는 제목 그대로 시인 김수영을 위해 쓴 글이자, 동시에 작가 자신이 작가 자신에게 삶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