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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임진왜란 1592>, 타국의 시선에 대한 새로운 시선

[리뷰] <임진왜란 1592> 3편

 

 

1,2편이 가졌던 강렬함에는 비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방영된 <임진왜란 1592> 시리즈 3편 중에서 가장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3편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유전자 깊숙한 곳에 내장된 듯 한 반일과 분노의 감정을 거둬낸 그 지점에서 우리는 뜬금없는 재앙으로만 여겨졌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이 사실은 깊은 역사적 맥락과 흐름 속에서 차근차근 준비돼왔단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짚어낸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타인의 시선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김응수 분)의 임진왜란 전 행보를 다루는 <임진왜란 1592> 3편은, 우리에게 있어 그저 망상으로 가득한 “원숭이” 정도로 인식됐던 히데요시의 ‘욕망’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임진왜란 1592>는 길거리에서 ‘바늘장수 원숭이’ 정도의 천한 취급을 받던 히데요시가 자신의 이름을 수차례 바꾸고 치욕을 감수하며 자신의 가족까지 ‘팔아넘기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이름’의 무게를 보여줌으로써 그가 가진 욕망이 단순한 치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상징적 표현들을 통해 우리에게 강하게 부각된다. 이는 김응수라는 배우의 능숙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 열연을 통해, 보다 더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광기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란 인물에 대한 보다 다각도에서의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넘어 중세 일본이 가졌던 욕망까지도 그려볼 수 있는 상상력의 여지를 준다. 명나라 정복이란 히데요시의 치기 어린 발언이 점차 어떻게 힘을 얻고, 구체화되며, 실제로 진행되기까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를 통해 <임진왜란 1592>는 더 나아가 그러한 일본의 욕망이 비단 중세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근대에까지도 발현됐음을 암시하는 표현을 통해 이것이 단순한 과거의 일이 아님을 암시한다. 과거의 일을 그려내면서 <임진왜란 1592>는 단순한 감정적 반발 너머의 현재 일본이 가질 위험성까지도 우리에게 경고해주는 셈이다.

 

아울러 그 당시 일본이 처했던 상황들을 단편적이나마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일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포르투갈의 영향, 히데요시 가문의 본거지였던 오사카 성을 중심으로 축적됐던 무역의 성과와 부, 일본 사회의 단면, 전국시대 말기의 정치적 복잡성, 히데요시란 인물에 대한 조망 등이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배치돼 드러났다. 그저 단순히 “나쁜 나라” 정도로 취급받던 일본이 사실은 더 무서운 나라였다는 사실은 그를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1,2편이 보여줬던 연출보다 훨씬 더 강렬한 표현들을 통해 부각된다.

 

CCTV와의 합작을 통해 중국의 생각을 직접 담아냈다는 4,5편과는 달리, 3편은 일본의 시각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임진왜란 1592> 3편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상상한 일본의 모습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한계를 지닐지라도, 보다 복잡한 단계에서 다차원적으로 조망됨으로써 <임진왜란 1592>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시도는 분명 훗날, 한중일 3국의 합작을 통해 보다 풍부한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상상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By 9


* 사진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