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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선균 하나로 끝까지 가는 영화 <성난 변호사>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선균이 돌아왔다. 전작 와 유사한 풍의 영화인 로. 달라진 게 있다면 전작과는 달리 원톱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결국 영화의 성공은 조진웅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 넣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역할의 중심은 다시 이선균이다. 이선균은 “이기는 게 정의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변호사 변호성으로 분한다. 성난 변호사에 걸맞은 이름이다. 그러나 변호성은 능력 없이 성만 내는 변호사는 아니다. 첫 장면에서 드러나듯 그는 승소를 위해 감정이 아닌 논리를 앞세운다. 결과는 변호성의 승리. 피고였던 제약회사 로믹스의 문지훈 회장(장현성 분)은 그에게 또 다른 소송을 맡긴다.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회장의 운전기사를 변호하라는 임무다. 돈을 최고로.. 더보기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박성원이 단편 「댈러웨이의 창」에 담았던 문제의식은 같은 작품이 실린 소설집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전반을 가로지른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어려운 용어가 거북스럽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기 어두운 암실에는 사방이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작은 상자가 있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촛불만이 유일하게 빛을 밝힌다. 상자 안에는 미지의 물체가 들어 있는데, 우리는 하얀 천에 맺힌 그림자를 통해서 그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형태는 대략적으로 보건대 토끼의 모양이다. 자, 그렇다면 질문. 상자를 둘러싼 천은 토끼라고 추측되는 대상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가리는가? 대답 하나, 보여준다. 정말? 우리는 그저 토끼처럼 보일 뿐인 그림자를 볼 뿐이다. 정말 그 안에 토끼가 들어 있다고 확신할..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1주차(10/5~10/11)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유스>, 젊은 노인의 역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젊을 땐 모든 게 가깝게 느껴진다네, 그게 미래지. 늙어선 모든 게 멀리 보여, 그게 과거라네.”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인공, 영화감독 믹(하비 케이틀 분)이 젊은 배우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젊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참 가깝게 느껴지고, 노인들에게 과거는 아득히 먼 과거가 된다. 영화 는 이 문장을 이야기로 천천히 풀었다. 주인공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은 지금은 은퇴한 백발의 노인이다. 한때 그는 세계적 지휘자였고, 그가 작곡한 '심플송‘은 여전히 클래식 연주자의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화는 휴양지에서 조용히 은퇴자의 삶을 보내고 있는 프레드에게 영국 여왕이 ’심플송‘ 지휘를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예상대로 프레드는 지휘를 거절한다. 심지어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 더보기
인도 ‘바보 형’이 선사하는 감동의 물결, <카쉬미르의 소녀>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바보 형’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너무 착해서 항상 뭔가 손해 보는 그런 형들 말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마지막 영화 는 그간 잊고 지낸 바보 형들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영화다. 다소 뻔한 감동 스토리임에도 영화를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데에는 주인공 바지란지(살만 칸 분)의 역할이 컸다. 대략적인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파키스탄 초원지대 카쉬미르에서 태어난 소녀 샤히다는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샤히다의 어머니는 샤히다가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인도의 사원을 찾는다. 파키스탄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샤히다는 잠깐 밖에 나갔다가 어머니와 헤어지고 만다. 그 후에 인도에서 만나는 인물이 바지란지다. 주인공의 순수한 내면과 냉.. 더보기
<자객 섭은낭>, 혹은 허우샤오시엔이 무협판타지를 추모하는 방식 동시대 중국을 별다른 동요 없이 카메라에 담아왔던 지아장커는 기묘하게도 (2013)에서 무협의 판타지를 끌어들였다. 과장된 배경음악, 인위적이고 능숙한 인물들의 몸짓과 포즈. 거기다 산탄총, 권총, 칼이라는 소재 등. 하지만 다소 생뚱맞은 무협영화적 요소들도 결국 동시대 중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아장커에게 무협이란 일종의 거울이었다. 무협지적 낭만을 상실한 시대에 무협은 맥락을 잃고 부유할 수밖에 없다. 시대와 무협의 괴리, 그리고 불가능한 무협의 몸부림은 자연스레 무협이 불가능한 시대를 향한다. 그러니까 지아장커에게 무협은 단지 현실을 객관화시켜 반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무협은 리얼리즘을 위한 판타지(적 수단)였다. 그리고 (2007)이후 8년 만에 허우샤오시엔.. 더보기
<비거 스플래쉬> 그대의 욕망을 욕망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영화를 깊게 읽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서사에 대해 고민하고, 그 흐름을 찾아내는 걸 즐긴다. 그렇기에 영화나 드라마 모두 나에게 즐거운 이야기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는 틸다 스윈튼이 출연하고, 그녀가 다시 한 번 내한한 계기가 된 작품, 였다. 직역하면 ‘더 큰 물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한국 팬들과 친숙한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영화는 예매 때부터 금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그녀를 직접 볼 수 있었던 GV 행사는 덤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면, 는 1969년 탐정 스릴러물 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탐정 스릴러물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기에 음산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긴장하게 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 더보기
요새 공부는 하니?, 영화 <공부의 나라> 그동안 잊고 지냈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현재에 억눌려 과거의 기억은 무뎌졌다. 인간은 눈앞의 현실이 항상 더 중하고 긴급한 법이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이나 ‘그날’의 불쾌함은 본질적으로 같다. 영화를 보고 다시 ‘그날’이 생각났다. 수능 말이다. 사실 나는 참 운이 좋은 케이스다. 수많은 정시생들과 달리 나는 수시 덕분에 대학에 왔다. 최저등급을 엉겁결에 맞췄고, 논술 시험 당일에 미리 써봤던 주제가 나와 나는 비교적 쉽게 대학생이 됐다. 재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공부가 싫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지금, 현재도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낯설지만은 않다. 영화 말이다. 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부제는 ‘Reach for the SKY’다. sky가 .. 더보기
<스틸 라이프>, 이방인에서 이방인으로 “나에게는 공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똑같이 중요합니다.” 지아장커의 이 말은 영화계에서, 특히 현재 한국에선 독보적인 선언일 수 있다. 서사구조, 이야기를 강조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고, 많이 팔리고, 그에 따라 많이 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경제학적 순리다. 어쨌든 그만큼 서사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위치는 막대하다. 그런데 문제는 비단 ‘공간’의 소외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물을 제외한 모든 것, 그러니까 공간뿐만 아니라 소리, 시간 등 모든 요소들이 눈 밖에 난다. 인물들이 얘기하고 행동하는 공간에는 어떠한 철학적 고려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하필’ 거기 있을 뿐이다. 거기다 소리도 마찬가지. 하긴, 음악 자체가 ‘일상의 BGM’ 정도로 소비되는 현실 아닌.. 더보기
이야기의 힘, <세라자드의 꿈> “천일야화의 시작과 끝이 어땠는지 아무도 모른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그 말처럼 이야기, 아니 예술은 가능성을 전제로 존재한다. 말하고 듣는 이에 따라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될 수도 있고, 현실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핵심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를 메타포로 삼아 현재 이집트, 터키, 레바논 등에서 활동하는 현대의 세라자드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여기서 잠깐, 에 대해 소개해야겠다. 사실 필자 역시 천일야화가 천일 동안 이어진 이야기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천일야화의 ‘천일’은 1001을 뜻했다. 천일 하고도 하룻밤 더 밤에 들려준 이야기란 뜻이다. 라고도 불린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 , 등은 모두 속 이야기다. 설화에 따르면 술탄 샤리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