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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이선균 하나로 끝까지 가는 영화 <성난 변호사>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선균이 돌아왔다. 전작 <끝까지 간다>와 유사한 풍의 영화인 <성난 변호사>로. 달라진 게 있다면 전작과는 달리 원톱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결국 영화의 성공은 조진웅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 넣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역할의 중심은 다시 이선균이다.

이선균은 “이기는 게 정의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변호사 변호성으로 분한다. 성난 변호사에 걸맞은 이름이다. 그러나 변호성은 능력 없이 성만 내는 변호사는 아니다. 첫 장면에서 드러나듯 그는 승소를 위해 감정이 아닌 논리를 앞세운다. 결과는 변호성의 승리. 피고였던 제약회사 로믹스의 문지훈 회장(장현성 분)은 그에게 또 다른 소송을 맡긴다.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회장의 운전기사를 변호하라는 임무다. 돈을 최고로 여기는 변호성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뭔가 촉이 좋지 않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에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그 합리적인 의심은 변호성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구체화된다. 바로 이 장면이 변호성이 본격적으로 성을 내는 시점이자 영화의 장르가 법정 추리물에서 추격물로 태세를 전환하는 지점이다.

영화의 긴박감이 고조되면서 변호성은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의 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 다만 방향만 반대일 뿐이다. 쫓기던 고건수는 추격하는 변호성으로 변신한다. 방향은 달라졌지만 몰입도는 여전하다. 1년 전과 판박이라 할 정도로 이선균은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여기까지는 대만족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처음의 전제로 돌아가자. 조진웅으로 상징되는 절대적 악인을 대체할 인물들은 문 회장과 그의 수족들로 파편화된다. 그러다 보니 시선이 분산된다. ‘나쁜 놈’이 한 명일 때는 그 사람만 씹으면 그만이지만, ‘나쁜 놈들’이 되어버리니 주인공인 변호성만 부각돼 버린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사실 그도 엄밀히 분류하자면 ‘착한 놈’은 아니다. 그냥 조금 ‘별나서 성내는 놈’일 뿐이다. 또 ‘착한 놈’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진선민(김고은 분)과 박사무장(임원희 분)은 분명 주연이지만 조연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다 보니 남는 건 결국 추격 장면뿐이다.

 

물론 반전 카드가 있다. 영화 후반부에 사실 변호성은 그렇게 타락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변호성이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무죄를 입증할 증인이 있다”고 선언하면서 전말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마저도 변호성에 의해 기획된다. 영화에서 박사무장이 “어차피 지가 다할 거면서”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마따나 영화는 변호성에 의해 모든 것이 전개된다. 물론 이선균은 연기로서 본인에게 집중된 서사를 잘 풀어냈다. 그러나 그의 열연과는 관계없이 그와 각을 세우는 이들의 존재감이 파편화되면서 피로감이 발생한다. 어차피 변호성, 아니 이선균이 알아서 하겠지 뭐, 하는 식의 사고가 머릿속에 세뇌되면서 극의 반전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뻔한 반전이 되어버린다.

영화에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다. “달라질 게 없다고 뛰지도 말까” “세상은 원래 X 같은 거야.” “이길 수 없다면 이길 수 있는 편에 서야지.” 같은 말들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공허한 외침처럼 들린다. 변호사가 성나면 ‘이기는 게 정의’라는 명제를 깨부수고 ‘정의는 이길 수 있다’라는 명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애초에 돈에 눈이 먼 ‘변호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정의라는 게 정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정의를 가리키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아마도 그가 태도를 달리하게 된 뚜렷한 동기나 계기가 성찰 없는 분노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정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즉 복수하기 위해서 나서는 느낌이다. <베테랑>에 표현된 정의가 순도 100%라면, <성난 변호사>의 정의는 뭔가 불순물이 끼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쨌든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영화는 이선균 하나로 끝까지 가는 영화다.

 

by 락

 

*사진 출처: CJ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