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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BIFF 2015

<유스>, 젊은 노인의 역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젊을 땐 모든 게 가깝게 느껴진다네, 그게 미래지. 늙어선 모든 게 멀리 보여, 그게 과거라네.”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인공, 영화감독 믹(하비 케이틀 분)이 젊은 배우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젊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참 가깝게 느껴지고, 노인들에게 과거는 아득히 먼 과거가 된다. 영화 <유스>는 이 문장을 이야기로 천천히 풀었다.

주인공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은 지금은 은퇴한 백발의 노인이다. 한때 그는 세계적 지휘자였고, 그가 작곡한 '심플송‘은 여전히 클래식 연주자의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화는 휴양지에서 조용히 은퇴자의 삶을 보내고 있는 프레드에게 영국 여왕이 ’심플송‘ 지휘를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예상대로 프레드는 지휘를 거절한다. 심지어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를 하겠다는데도 거절한다.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지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 영문을 알 수 없는 전달자는 거절의 뜻만 받아들이고 자리를 떠난다.  

영화는 프레드가 ‘심플송’을 지휘하게 되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 장면이 피날레를 장식하긴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프레드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믹이 나누는 대화들과 각자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각 씬들은 언제 어느 때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이다.

 

프레드와 믹은 정말 유쾌한 콤비였다. 늙음에도 여전히 건강한 그들의 신체와, 여유를 누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 심지어는 성적인 농담도 불편하지 않게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시종일관 보는 이를 웃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 대화가 없는 노부부를 보면서 그들이 말을 할지 안할지에 대한 내기를 하다가, 숲속에서 그들이 참아왔던 욕망을 푸는 성관계를 몰래 보며 서로에게 돈을 건네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나도 저런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에도 한계가 있었다. ‘좋은 친구’를 그들은 ‘좋은 이야기’만 나누는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 어두운 고민을 나누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이기심과 같지 않다. 인생을 오래도록 산 지혜자가 말을 가려하는 인품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결국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으로 흐르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배려’하는 사이였다.  

프레드를 비롯해 믹은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주로 프레드를 중심으로 만남이 이루어지지만, 프레드의 딸,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어린이, 영화배우, 미스 유니버스, 마사지사 등 그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대화만으로 영화는 계속 이야기를 쌓아간다. 그리고 그 대화가 전부 위트가 있으며 동시에 지혜를 전해준다. 이것이 진짜 ‘젊은 노인’이 주인공인 <유스>의 장점이었다.

 

두 친구의 첫사랑에 관한 기억, 딸의 상처를 발견하고 해소하가는 과정, 두려움도 멋진 감정이라고 인정하는 마음, 열망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고 하는 말까지. 수없이 많은 장면들이 흐르고 흘러, 프레드는 결국 아내만을 위해 작곡했던 노래, 아내만이 부를 수 있다고 선언한 노래, 심플송의 지휘를 맡는다. 1시간 50분정도의 시간 동안 그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내린 결정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가까운 미래, 먼 과거’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한 듯 했다. 아내만의 것이라 고집하던 심플송을 먼 과거로 두고, 가까운 미래인 모두를 위해 마음을 열었다. 결국 젊은 노인은 그 짧은 시간동안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는 삶을 보였다.

영화가 항상 밝게만 흘렀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지막 대단원에서만큼은 가슴 벅차는 감정을 누릴 수 있었다. 초반부 이후 자주 등장하지 않던 음악을 대단원에서 기다렸다는 듯 발산하는 것을 보면서 이 영화가 음악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스>는 한 노인 지휘자의 음악 이야기가 아닌, ‘젊은 노인의 성장 이야기’다.

 

- by 건

 

사진 출처 :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