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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 스플래쉬> 그대의 욕망을 욕망하다.

category 영화/BIFF 2015 2015.10.07 07:00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영화를 깊게 읽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서사에 대해 고민하고, 그 흐름을 찾아내는 걸 즐긴다. 그렇기에 영화나 드라마 모두 나에게 즐거운 이야기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는 틸다 스윈튼이 출연하고, 그녀가 다시 한 번 내한한 계기가 된 작품, <비거 스플래쉬>였다.

직역하면 ‘더 큰 물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한국 팬들과 친숙한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영화는 예매 때부터 금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그녀를 직접 볼 수 있었던 GV 행사는 덤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면, <비거 스플래쉬>는 1969년 탐정 스릴러물 <수영장>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탐정 스릴러물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기에 음산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긴장하게 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영화는 시종일관 화면 속을 뛰어다니는 해리(랄프 파인즈 분) 덕분에 다소 가볍고 코믹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평화롭지만 폐쇄된 섬과 수영장에서 욕망이 점차 분출한다는 지점에서 긴장감을 준다. 탐정물하면 우리가 떠올리기 쉬운, 살인 사건 이후에 이어지는 추리극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틸다 스윈튼은 전설적인 록스타 마리안으로 분한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아끼지 않고 마구 사용하는 바람에 목소리를 잘 낼 수 없는 상황이다. (기존 작품에는 없었던 설정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빛난다. 본래의 낭랑한 목소리를 가리고, 목이 다 쉬어버린 록스타의 모습을 연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난히 역할을 소화한다. 또한 첫 장면에서부터 그녀는 나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영화의 방향을 예상하지 못한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마리안은 곰같이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남자친구 폴(마티아스 쇼에나르츠 분)과 지중해의 한 섬에서 평화로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마침 목이 고장나버린 덕분이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곳에 한 남녀가 들이닥친다. 마리안의 옛 연인이자 음반 프로듀서 해리와 그의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 분)이다. 마리안은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는 호의로 두 사람을 자신의 휴식처로 들인다.  

폴은 해리가 마리안의 옛 연인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팽팽한 관계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특히 해리는 욕망에 지극히 솔직한 남자다. 그리고 왠지 마리안을 다시 만나러 온 이유가 따로 있는 듯하다. 게다가 딸이라고 온 페넬로페의 눈빛은 더욱 묘하다. 마치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는, 앞뒤 가리지 않고 욕망으로 달려가겠다는 표정이다. 페넬로페는 항상 절제하고, 참을 줄 아는 남자, 폴에게 더욱 깊숙이 접근한다. 그러면서 네 사람의 관계는 점차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 골조로 정리하면 <비거 스플래쉬>는 단순해진다. 이 영화는 ‘물’이 고여있는 곳에서 ‘더 큰 물결’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관계라는 것이 더 큰 물결을 만나 흔들려버리는 것. 그 물결은 바로 ‘욕망’이다.  

관계의 줄다리기는 결국 욕망에 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급격히 한 쪽으로 쏠리고 만다. 그리고 파국으로 치달아 버린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난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현실로 돌아온다. 그렇게 영화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 마지막 장면 스포일러입니다. 드래그하면 보입니다.

 

그 갸우뚱거림은 마지막 장면에서 아예 에? 하는 탄식으로 끝난다. 사실 마리안을 수사하던 경찰이 영화 초반부에 마리안에게 식당 자리를 양보한 팬이었고, 그는 그녀를 한참 수사한 끝에 마지막 장면에서야 급히 뛰어오더니 사건 소식이 아닌 사인 요청을 건넨다. 달리던 차도 멈춰 세워서 한다는 말이 당신의 팬이니 사인을 해달라는 것. 마리안은 또 그걸 웃으며 기꺼이 해준다. 두 사람은 비를 맞으며 계속 웃는다.

 

마지막 장면을 계속 곱씹어보니, 이것도 어쩌면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보통의 흐름대로라면 경찰이 달리던 차를 멈출 경우, 사건에 대한 급격한 반전이나 전개가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하지만 <비거 스플래쉬>는 그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었다. 그리고 아예 마지막 장면으로 향해버렸다. 경찰마저도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해버린 것.

 

영화가 끝나고 GV가 이어지고, 다른 영화를 보러 이동하는 내내 나는 영화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읽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수용자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걸 믿고 있기에,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비거 스플래쉬>는 우리 안에 내재된 욕망을 더 크게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더 큰 물결을 일으키는 대상은 바로 ‘욕망’이다.

 

- by 건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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