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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주일기2] 글(4.14) 글이 두렵다. 글을 써야겠다. "재미없게 살기로 했다." 세 번째 막이 올랐다. 반쯤 지친 배우들은 하나같이 벚꽃을 닮아있다. 분장 아래로 금세 땀이 차오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홈플러스에서 '하디 빈 53 쉬라즈'를 샀다. 30% 할인. '진로와인', '오스카'따위를 제외하고 제일 저렴했다. 4천700얼마. 고작 1천원 정도 비쌀 뿐인 다른 종류의 와인도 많았음에도 굳이 이걸 산 건 전적으로 내 지갑에 있던 5만원권 때문이었다. 거스름돈 받을 때 그래도 5천원짜리가 나으니까. 동전이야 저금통에 쑤셔넣으면 그만이다. 홀짝홀짝 S는 술을 마셨다. "으, 맛없어"라고 말하며 술잔을 후루룩 비우는 S는 나와 닮았다. 것보단 내가 S를 닮은 걸까. S는 "한 방울만" 담은 술잔을 세 잔 정도 비웠고.. 더보기
[금주일기2] Prologue 나는 그곳에 없었고, 그곳으로부터 나는 도망쳐나오고 있다. 이곳을 향한 여정.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여행이 시작됐다. 그 이름하야 술여행. by 벼 더보기
[今酒일기] 와인잔(11.30) 와인잔에 콜라를 따라마셨다. 다른 이유는 없다. 뒤집혀있는 다른 잔들과 달리 와인잔만 바로 세워져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그립감 때문? 나같이 변명일색인 관념론자(Thanks to 알튀세)에게 '무의식'이란 얼마나 효과적인 무기인지. 어쨌든 성공 by 벼 더보기
[今酒일기] 썰(11.29) 을 풀자면 끝이 없다.다만 타이밍이 문제다. 세 시간 수많은 이름과 기억을 헤집었지만정작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스핀오프' 술자리라도 마련해야 할 판. 둘이서 맥스 4병과 참이슬 후레시 3병을 마셨다. 마지막 세 잔을 제외하고는 모두 섞어마셨다. 안주는 닭도리탕과 골뱅이소면. 닭도리탕은 절반을 남겼고 골뱅이소면은 거의 입에 안 댔다. 집에서 호로요이 한 캔을 마셨다. by 벼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번외 모(부)성 [호래.txt]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나를 싫어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고양이는 그랬다. 후미진 골목이나 길가에서 마주친 고양이들은 모두 내게 관심이 없거나 나를 무서워했다. 집에서 고양이를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나는 고양이를 만나면 어쩔 줄 몰라 했고 고양이들은 그런 내가 어색한지 나를 항상 피했다. 그런데 바로 어제, 편의점에 가려고 밖으로 나섰다가 복도에서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내게 먼저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처롭게 울었다. 나는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가 고양이한테 줄 만한 것을 찾았다. 하지만 나도 먹을 것을 사러 편의점에 가려던 참이라 고양이가 먹을 .. 더보기
[푸디세이아] 0. 감각 잃은 세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 앞서 한 가지 사소한 고백을 하자면,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져 가는 듯한 착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뢰 역시 동일한 영향을 받고 있는 듯한 눈치구요.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모든 감각이 그대로 살아있지만, 그것이 내 뇌까지 실제로 전달되는지에 대해 스스로 확신이 없다는 느낌이랄까요. 손가락 끝을 열심히 깨물어보면 분명 아픈 것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실제로 아프다고 느끼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기억으로 그 모든 감각들을 재현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현재 내가 느끼는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죠. 네, 맞습니다. 어떤 믿음도 없습니다. 내 자신의 감각조차 믿지 못하게 된 순간엔, 믿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9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학곰군.txt] 1.자유주제로 뭔가 길게 쓰고싶어 일단 번호를 붙인다. 2. 아 벌써 2번이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두 번째 차례다. 그래. 포인트는 뭐 한 것도 없는데로 가볼까. 마땅히 할 말도 없었는데 잘 되었다 싶다. 3. 시작은 두산베어스 모자로부터다. 나는 2006년. 에스케이 와이번즈가 파랑에서 빨강으로 색을 바꾼 그 해 문학구장에서 모자를 샀다. 야구장을 처음 간 그 날 그래! 이왕 야구장에 온 것 모자라도 사야겠지 않겠는가 싶어서 원정 구단 간이 매점을 기웃 거렸고 지금도 쓰고 있는 네포스 두산베어스 모자를 6천원 주고 샀다. 모자의 나이도 벌써 10살. 비를 피하지 않는 주인 덕분에 비며 눈이며 미세먼지까지 온전히 들이마시더니 노화가 왔는지 색이 티미해졌다. 그렇지만 군청ㅡ노랑의 앤티크..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8 민감하다 [소르피자.txt] E주임은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는 갑자기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다. 까끌한 면에 손이 쓸려 생채기가 났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손을 털고 일어났다. 보도블록에 떨어져 있는 벚꽃잎들. 그는 자신이 걸려 넘어진 것이 벚꽃을 보느라 한 눈을 팔아 생긴 일이라 생각해 괜스레 벚꽃나무를 발로 한 번 걷어찼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경기가 좋지 않았다. 사기업에 다니는 자신의 친구들은 작년에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고 투덜댔고, 얼마 전 있었던 설날에도 상여금이 작년보다 곱절은 더 줄었다며 그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E주임은 그런 말을 들어도 와 닿는 것이 없었다. 자신처럼 나라의 녹봉을 받아먹는 공무원쟁이들은, 늘 일정한 봉급을 받고 하던 일만 하면 됐기에 성과급..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7 위대한 허구 [호래.txt] 사진가는 창문을 찍을 수 없다. 만약 낮-실내에서 창문을 찍으면 창문 밖 풍경이 카메라에 담길 것이고, 사람들은 그 풍경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창문을 통과한 이미지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만약 창문에 찍힌 지문이라든지, 창문에 비친 형광등을 사진에 담아 이것이 창문을 통과한 이미지라는 것을 알아채게 만든다면 사람들은 직접 현장에 뛰어들지 않고 안전한 실내에서 사물을 담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질책할 것이다. 반대로 밤-실내에서 창문을 찍으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찍힐 것이고, 사람들은 이를 자화상이란 의미로 해석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투명한 창문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불투명한 창문이란 그 자체로 창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창문’ 그 자체를 사진에 담.. 더보기
[3인의 현상범들] #6 세계의 끝 [학곰군.txt] 넌 놓치고 있어.뭐를?사진에서 뭐가 보이느냔 말이야.말했잖아. 또라에몽.그것 뿐이야?뭐 쌓인 책들도 있고 오묘한 나무 그림도 있고.그뿐이냐고!왜 갑자기 지랄인데. 뭐 어쩌란거야.정말로 그것밖에 안 보여?응. 귀신이라도 보이냐 너는?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뭔데 그럼.그을렸잖아.그게 뭐.그게 뭐라니. 그을렸대두?아니 그게 뭐 어쨌다고.이게 안 보인다며!그깟 그을음이 뭐가 중요한데?뭐가 중요한 지도 모르는 건 너야.미친놈이. 개소리 할 거면 말 걸지마.볼 수 있는 것도 못 보면서 뭐가 잘났다고 큰 소리 치는 거야.그깟 그을린 자국 때문에 이 지랄을 하는거야? 뭔데 썅. 들어나보자.봐. 잘 들어봐 알겠니?설명이나 해.알았어. 봐. 사진은 누가 자를 대고 자른 것처럼 똑바르게 그을린 자국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