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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푸디세이아] 15. 시장이야기 1 기억은 공간과 감각과 사람으로 구성된다고 믿는다. 시간 감각이 휘발되는 그 세계 속에서 기억은 하나의 지표에 잇대 복원된다. 먼지에 묵힌 채 잊혀진 기억은 사소한 음식의 맛 하나로, 혹은 작은 기시감 하나로, 또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오래된 과거는 미래가 되고, 현재는 수많은 조각들 가운데서 숨 쉰다. 망각의 동물은 수많은 죽음들 가운데서 헤엄치다 불현듯 눈을 뜬다. 기억하는 걸 포기했던 남자는 그렇게 모든 걸 심연 속에 넣고 살아간다. 계기만 있다면 모든 건 다시 떠오를 것을 알기에. 열쇠는 언제나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 1. 인생의 맥주는 저 멀리 광주 송정역의 16년 8월에 있었다. - 광주 송정역시장 시장이라는 오래된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지표면에 살아 숨 쉬는 기.. 더보기
[푸디세이아] 14. 초콜릿과 맥주 시사회를 다녀왔다. 왠지 무료로 영화를 본답시고 교통비와 간식비를 포함, 돈을 더 많이 썼지만 그래도 즐겁다. 할 일들과 약속이 겹쳐 내일 하루가 아수라장이 될 것이 눈에 빤히 보이지만 그래도 좋다. 처음으로 본 담당자한테 블로그하고 병행해서 올리지 말란 말을 두 번이나 (못 알아먹었겠지라고 생각하고 두 번이나 돌려서 말씀하신거겠지만 그래도 찰떡같이 알아먹었습니다 담당자님. 걱정하지 마십쇼)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영화 개봉하고 나서 올리지 뭐. 사실 이 글 쓰고 있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해두고 자는 것이 훨씬 이익이겠지만,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그런 것이다. 매번 갈 때마다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던 롯데월드타워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말하자면 안전 불감증 같은 거겠.. 더보기
[푸디세이아] 11. 은하고원과 한단지보 말하자면 삶과 ‘언어’를 새로 배우는 중이다. 얄궂게도 그 언어들은 모두 예전의 내가 알던 것이다. 문법을 등한시한 채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타국의 언어는 하면 할수록 빈틈만 보인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자부심으로 뭉쳤던 평생의 글쓰기조차 고수의 눈앞에서 고작 2주 만에 철저히 무너진다. 삶이 구멍이 송송 뚫린 해면체와 같다. 다만 게으른 자라도 과업처럼 주어진 일만큼은 어떻게든 해내가는 중이다. 여전히 열심히 한다고 말하기엔 하는 것이 없으므로, 부끄러움만 남을 뿐. 금요일이었나. 한 번 본 영화를 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가던 귀갓길에서 갑자기 뛰어내렸다. 몸이 지치고 마음은 더 지쳤으므로 쉬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뭔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핸드폰으로 부랴부랴 시간표를 확.. 더보기
[푸디세이아] 8. 종강 후의 치맥은 달다 사소한 일로 아침부터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1시간에 걸쳐 공연을 (비록 좋진 않은 자리지만) 예매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를 봤더니 기분이 어린왕자 속 보아뱀 - 혹은 모자로 보이는 무엇 - 마냥 유려한 곡선을 따라 오간다. 끝났으니 행복해야겠지만, 영화관을 나서니 역설적으로 이젠 진짜 비빌 언덕이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연말까지 읽겠다고 빌린 책은 가방을 채우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데, 설상가상 영화를 보고 나오니 처량하게 비까지 온다. 뭔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다.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벼 형을 만난다. 무한리필 삼겹살집 2곳과 양꼬치집을 갔지만 어딜가나 사람은 바글바글하기에 우리가 머물 ‘자리’가 없다. 사람에 치여 치맥이나 하자고 찾아간 치킨집은 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 더보기
[푸디세이아] 4. 나는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채로 독일. 맥주. 혼자. 항상 마음속의 이상향을 그리며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지만 정작 몸이 묶여 있을 때가 많다. 대개는 금전적 문제였지만, 금전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자 이제는 마음이 닿는 목적지가 없다. 답답할 때마다 내일로 티켓을 끊고 어디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일 없이 바삐 몸을 놀려 기어코 반도를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 방식으로 여행을 가는 것 역시 채울 수 없는 방랑벽이 주는 헛헛함, 그 때문이다. 반도인(半島人)은 외롭다. 김연수가 말한 ‘국경’의 정의 아래의 나는 제대로 된 일탈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출장차 워싱턴과 멕시코와 쿠바로 떠나셨던 교수님이 시험을 한 주 빨리 보신 탓에 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