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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금주일기2] 글(4.14) 글이 두렵다. 글을 써야겠다. "재미없게 살기로 했다." 세 번째 막이 올랐다. 반쯤 지친 배우들은 하나같이 벚꽃을 닮아있다. 분장 아래로 금세 땀이 차오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홈플러스에서 '하디 빈 53 쉬라즈'를 샀다. 30% 할인. '진로와인', '오스카'따위를 제외하고 제일 저렴했다. 4천700얼마. 고작 1천원 정도 비쌀 뿐인 다른 종류의 와인도 많았음에도 굳이 이걸 산 건 전적으로 내 지갑에 있던 5만원권 때문이었다. 거스름돈 받을 때 그래도 5천원짜리가 나으니까. 동전이야 저금통에 쑤셔넣으면 그만이다. 홀짝홀짝 S는 술을 마셨다. "으, 맛없어"라고 말하며 술잔을 후루룩 비우는 S는 나와 닮았다. 것보단 내가 S를 닮은 걸까. S는 "한 방울만" 담은 술잔을 세 잔 정도 비웠고.. 더보기
[금주일기2] Prologue 나는 그곳에 없었고, 그곳으로부터 나는 도망쳐나오고 있다. 이곳을 향한 여정.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여행이 시작됐다. 그 이름하야 술여행. by 벼 더보기
[푸디세이아] 19. 취재 후의 잔치국수 답답한 마음에는 출구가 없다. 삶은 이를테면, 아무리 기를 쓰고 봐도 답을 알 수 없는 거시경제학 문제와 같다. 이제까지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듯한 막막함에는 샛길조차 없다. 올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는, 르뽀를 쓰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져 조우했던 잊혀진 도시의 기억과 같다. 알 수 없다. 그 어딘가에는, 정답이란 게 있는 것일까. 겨울 어느 날 2시간 내내 동네를 빙글빙글 돌며 맞췄던 퍼즐은 끝내 완성할 수 없었다. 길은 보였지만, 삶을 내던져 그 답을 끄집어 올려낼 자신이 없었다. 동네의 옛 이름에 인상이 변해가는 방앗간집 남자들, 고개를 돌리며 신경질을 냈던 노인. 전화 너머로 프로파간다와 신념과 공식적 멘트를 쏟아냈던 이들과, 마치 허상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온라인.. 더보기
[푸디세이아] 18. 네모난 세계 같은 자리를 반복할지라도 몸에 닿는 락스 냄새가 좋다. 게으름의 면피라도 온몸의 세포들 사이로 파고드는 듯한 새벽의 차가움이 좋다. 한 번 몸에 익힌 감각은 소멸되지 않는다. 물길 사이로 흘러가는 발은 자연스럽게, 오래돼 잊혔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감각들을 다시 살려내 되풀이한다. 적막할 수 없으나 적막한 적막함이 주는 아스라함 속에서의 자맥질. 공간은 네모로 가득하다. 피곤에 절은 채 초롱초롱한 눈빛들과, 그 눈빛들에 어울리지 않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었던 날.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삶. 바라건대 그 많은 꿈들로 가득한 눈빛들이 실망 속에서 시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차마 전하지 못한 유물의 그림자를, 혹이라도 꿰뚫어볼까 느낀 두려움의 순간들. 다만 그 날의 내가 .. 더보기
[푸디세이아] 17. 식구(食口) 50km가 넘어가면 허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성묘를 위해 간만에 운전을 한다. 근 두어 달 만에 잡은 운전대는 매번 새로워서, 순간순간이 위기다. 언젠간 익숙해지겠지란 막연한 생각은 전방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다른 차량들을 볼 때마다 깨진다. 눈치 못 채는 사이에 느낀 인생 ‘최고’의 위기도 여러차례. 그래도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여행 아닌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다니는 일이 많다. 게으른 이는 집을 떠나는 일을 귀찮아하지만, 막상 도착한 타지가 가진 그 나름의 매력을 사랑한다. 이번 성묫길에는 대천을 간다. 그 바다, 겨울바다는 수많은 폭죽들이 밤새 펑펑 터지고 눈덩이를 뭉쳐놓은 듯 포동포동한 갈매기들이 뽈뽈거린다. 밤이고 낮이고 하염없이 물결치는 파도. 생각해보니 올 겨울 .. 더보기
[푸디세이아] 16. 취중일기 [푸디세이아] 16. 취중일기. 술을 살짝 과하게 먹고 나서 글 쓰는 일을 선호하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으므로 손이 가는 대로 노트북을 친다. 탁탁 거리며 울리는 키보드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하다. 기분 탓인가. 판을 키운다. 분명 시작은 2명이었지만 결국엔 여섯까지 늘었다. 연속해서 이틀을 같은 사람들을 봤으나, 그럼에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진 않았다. 사람 만나는 일을 그토록 귀찮아하건만 그럼에도 즐거울 땐 즐겁다. 1차. 유진. 기껏 약속을 6시 반으로 잡았건만 평생 그런 적이 없던 이들이 뭐라도 잘못 먹었는지 일찍도 모인다. 장소를 묘사하면서 동선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한참을 까였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려나. 다섯이서 녹두전 3개에 냉면 4, 설렁탕 1, 수육 1개를 시켜 노.. 더보기
[푸디세이아] 15. 시장이야기 1 기억은 공간과 감각과 사람으로 구성된다고 믿는다. 시간 감각이 휘발되는 그 세계 속에서 기억은 하나의 지표에 잇대 복원된다. 먼지에 묵힌 채 잊혀진 기억은 사소한 음식의 맛 하나로, 혹은 작은 기시감 하나로, 또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오래된 과거는 미래가 되고, 현재는 수많은 조각들 가운데서 숨 쉰다. 망각의 동물은 수많은 죽음들 가운데서 헤엄치다 불현듯 눈을 뜬다. 기억하는 걸 포기했던 남자는 그렇게 모든 걸 심연 속에 넣고 살아간다. 계기만 있다면 모든 건 다시 떠오를 것을 알기에. 열쇠는 언제나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 1. 인생의 맥주는 저 멀리 광주 송정역의 16년 8월에 있었다. - 광주 송정역시장 시장이라는 오래된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지표면에 살아 숨 쉬는 기.. 더보기
[푸디세이아] 14. 초콜릿과 맥주 시사회를 다녀왔다. 왠지 무료로 영화를 본답시고 교통비와 간식비를 포함, 돈을 더 많이 썼지만 그래도 즐겁다. 할 일들과 약속이 겹쳐 내일 하루가 아수라장이 될 것이 눈에 빤히 보이지만 그래도 좋다. 처음으로 본 담당자한테 블로그하고 병행해서 올리지 말란 말을 두 번이나 (못 알아먹었겠지라고 생각하고 두 번이나 돌려서 말씀하신거겠지만 그래도 찰떡같이 알아먹었습니다 담당자님. 걱정하지 마십쇼)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영화 개봉하고 나서 올리지 뭐. 사실 이 글 쓰고 있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해두고 자는 것이 훨씬 이익이겠지만,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그런 것이다. 매번 갈 때마다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던 롯데월드타워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말하자면 안전 불감증 같은 거겠.. 더보기
[푸디세이아] 13. 삶을 갉아먹는 글쓰기와 나가사키 라멘 뭘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쓴다. 윌리엄 진서는 글이라는 것이 꾸준히 자꾸 쓰면 느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딱히 무엇이 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거 없는 자존심으로 쌓아온 옹졸한 성벽들이 쓸 때마다 너무나도 손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무얼 근거로 나는 스스로를 글쟁이라고 불렀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을 써왔으면서. 작문을 시작하고 실험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존감이 더더욱 떨어진다. 머리에서 구상하고 계획한 것들이 제한된 시간 내에서는 제대로 펼쳐지질 않는다. 지루한 글. 재미없는 글. 읽고 싶지 않은 글들을 쓴다. 나름 만족하며 쓴 글들은, 평가의 가치조차 없을 때가 많다. 열심히, 꾸역꾸역 쓰지만 영 쓰는 일이 고통스럽다. 원래 이것이 당연한 것이었나. 엉겁결에 따라간 뒤풀이가 .. 더보기
[푸디세이아] 12. 시장과 마지막 만둣국 명절이며 제사 때마다 시장을 간다. 이사를 온지는 채 오년도 되지 않건만, 시장만 따라 나온 것이 10번은 훌쩍 넘긴 것 같다. 많이는 안 산다고 하면서도 과일과 야채, 너무 커서 걱정인 밤, 썰어놓은 가래떡, 식혜, 제사용 과자 등등을 사고 나면 두 손 가득 짐을 들어도 다 못 들 때가 많다. 명절 때만 되면 온가족이 다 뛰쳐나와 고기를 파는 정육점에서 이번엔 찜갈비용 LA갈비를 3kg나 산 대신, 큼지막한 가오리나 먹음직스런 민어는 사지 않았다. 간소하게 본다고는 하지만 오가는 시간만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 시장통에서 갓 튀겨내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어묵과 뻥튀기 등을 사서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눠먹으며 느릿느릿 집으로 온다. 짐을 다 내리고 냉장고에 넣고 보니, 만두를 덜 가져온 것을 그제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