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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푸디세이아

[푸디세이아] 17. 식구(食口)

 

50km가 넘어가면 허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성묘를 위해 간만에 운전을 한다. 근 두어 달 만에 잡은 운전대는 매번 새로워서, 순간순간이 위기다. 언젠간 익숙해지겠지란 막연한 생각은 전방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다른 차량들을 볼 때마다 깨진다. 눈치 못 채는 사이에 느낀 인생 ‘최고’의 위기도 여러차례. 그래도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여행 아닌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다니는 일이 많다. 게으른 이는 집을 떠나는 일을 귀찮아하지만, 막상 도착한 타지가 가진 그 나름의 매력을 사랑한다. 이번 성묫길에는 대천을 간다. 그 바다, 겨울바다는 수많은 폭죽들이 밤새 펑펑 터지고 눈덩이를 뭉쳐놓은 듯 포동포동한 갈매기들이 뽈뽈거린다. 밤이고 낮이고 하염없이 물결치는 파도.

 

생각해보니 올 겨울 처음으로 수도권을 떠난 거였다.

 

조개구이를, 해물뚝배기를, 새조개를 먹는다. 삶이란 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비공식적 신조에 맞게, 어디로 떠나든 예산이 얼마든 밥만큼은 풍족하다. 너무 배부르게 먹어 운전하는 길이 밀려오는 졸음에 고돼도 목숨을 걸지 않는다. 잘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맨 정신으로, 그렇게 밀려가는 파도처럼 길에 부딪힌다.

 

 

수많은 부침과 상흔 후에도 남는 것은 밥이었다. 좋아하진 않지만 정겨운 단어인 식구(食口)는, 말 그대로 밥을 나누어먹는 것의 함의를 그 어떤 단어보다 강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도 온전한 밥 한 끼를 서로 나눌 수 있다면 가족의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비록 한 점을 덜 챙겨먹더라도 연탄불에 그을려가며 조개를 굽고, 끓는 육수에 조개를 넣느라 팔이 조금 저려와도 만족한다. 수고롭지만 즐거운 일이다.

 

돈을 벌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밥을 나누기 위함이다. 자리를 잡고자 애쓰는 것도 밥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그토록 불안에 떨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건, 그 어떤 순간에도 밥 한 끼만큼은 나눠줄 이들이 든든히 뒤에서 항상 믿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밥이란 삶이다. 삶을 베풀지 못할 소갈딱지라면, 적어도 밥만큼은 나누고 싶다.

 

게릴라전이 장기전이 될지라도 든든한 보급로가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밥을 나누듯 고통을 나눈다면 못 이길 것도 없다. 비록 허리가 아프고 매번 떠나기 귀찮은 마음이 들어도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By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