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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젊은 노인의 역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젊을 땐 모든 게 가깝게 느껴진다네, 그게 미래지. 늙어선 모든 게 멀리 보여, 그게 과거라네.”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인공, 영화감독 믹(하비 케이틀 분)이 젊은 배우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젊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참 가깝게 느껴지고, 노인들에게 과거는 아득히 먼 과거가 된다. 영화 는 이 문장을 이야기로 천천히 풀었다. 주인공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은 지금은 은퇴한 백발의 노인이다. 한때 그는 세계적 지휘자였고, 그가 작곡한 '심플송‘은 여전히 클래식 연주자의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화는 휴양지에서 조용히 은퇴자의 삶을 보내고 있는 프레드에게 영국 여왕이 ’심플송‘ 지휘를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예상대로 프레드는 지휘를 거절한다. 심지어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 더보기
<자객 섭은낭>, 혹은 허우샤오시엔이 무협판타지를 추모하는 방식 동시대 중국을 별다른 동요 없이 카메라에 담아왔던 지아장커는 기묘하게도 (2013)에서 무협의 판타지를 끌어들였다. 과장된 배경음악, 인위적이고 능숙한 인물들의 몸짓과 포즈. 거기다 산탄총, 권총, 칼이라는 소재 등. 하지만 다소 생뚱맞은 무협영화적 요소들도 결국 동시대 중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아장커에게 무협이란 일종의 거울이었다. 무협지적 낭만을 상실한 시대에 무협은 맥락을 잃고 부유할 수밖에 없다. 시대와 무협의 괴리, 그리고 불가능한 무협의 몸부림은 자연스레 무협이 불가능한 시대를 향한다. 그러니까 지아장커에게 무협은 단지 현실을 객관화시켜 반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무협은 리얼리즘을 위한 판타지(적 수단)였다. 그리고 (2007)이후 8년 만에 허우샤오시엔.. 더보기
<비거 스플래쉬> 그대의 욕망을 욕망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영화를 깊게 읽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서사에 대해 고민하고, 그 흐름을 찾아내는 걸 즐긴다. 그렇기에 영화나 드라마 모두 나에게 즐거운 이야기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는 틸다 스윈튼이 출연하고, 그녀가 다시 한 번 내한한 계기가 된 작품, 였다. 직역하면 ‘더 큰 물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한국 팬들과 친숙한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영화는 예매 때부터 금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그녀를 직접 볼 수 있었던 GV 행사는 덤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면, 는 1969년 탐정 스릴러물 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탐정 스릴러물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기에 음산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긴장하게 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 더보기
요새 공부는 하니?, 영화 <공부의 나라> 그동안 잊고 지냈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현재에 억눌려 과거의 기억은 무뎌졌다. 인간은 눈앞의 현실이 항상 더 중하고 긴급한 법이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이나 ‘그날’의 불쾌함은 본질적으로 같다. 영화를 보고 다시 ‘그날’이 생각났다. 수능 말이다. 사실 나는 참 운이 좋은 케이스다. 수많은 정시생들과 달리 나는 수시 덕분에 대학에 왔다. 최저등급을 엉겁결에 맞췄고, 논술 시험 당일에 미리 써봤던 주제가 나와 나는 비교적 쉽게 대학생이 됐다. 재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공부가 싫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지금, 현재도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낯설지만은 않다. 영화 말이다. 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부제는 ‘Reach for the SKY’다. sky가 .. 더보기
<스틸 라이프>, 이방인에서 이방인으로 “나에게는 공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똑같이 중요합니다.” 지아장커의 이 말은 영화계에서, 특히 현재 한국에선 독보적인 선언일 수 있다. 서사구조, 이야기를 강조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고, 많이 팔리고, 그에 따라 많이 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경제학적 순리다. 어쨌든 그만큼 서사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위치는 막대하다. 그런데 문제는 비단 ‘공간’의 소외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물을 제외한 모든 것, 그러니까 공간뿐만 아니라 소리, 시간 등 모든 요소들이 눈 밖에 난다. 인물들이 얘기하고 행동하는 공간에는 어떠한 철학적 고려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하필’ 거기 있을 뿐이다. 거기다 소리도 마찬가지. 하긴, 음악 자체가 ‘일상의 BGM’ 정도로 소비되는 현실 아닌.. 더보기
부산국제영화제(BIFF) 여행기 3막 2박 3일의 부산국제영화제 여행이 끝났다. 마지막 여행기는 각자 써보기로 했다. 그만큼 할 말도 많을 테니까. 세 명의 이야기를 세 장으로 나눠봤다. 3막 1장(by 락) #1 숙소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건은 이미 꿈나라다. 벼와 함께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영화채널에서 이 막 시작됐다. 3편의 영화를 보고 질릴 법도 한데 뭔가에 이끌리듯 4번째 영화를 보고 말았다. 배우 김성균의 섬뜩한 눈빛을 따라가다 보니 영화를 어느새 끝났다. 4시 반이다. 같이 보던 벼도 잠에 들었다.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인지,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서인지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도 잠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시계 추 소리를 자장가 삼.. 더보기
부산국제영화제(BIFF) 여행기 2막 #1 롯데시네마 매표소 앞 10시다. 여유 있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관은 사람들로 붐볐다. 10시 영화를 예매한 사람들은 왜 자동화 기기로 영화표를 뽑을 수 없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한 아주머니는 거센 부산 사투리로 이게 말이 되냐며 따졌다. 나 같아도 어렵게 예매한 영화를 제때 못 보면 열 받을 것 같다. 곱상하게 생긴 서울 말씨의 자원봉사자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해명했다. 아주머니도 알 것이다. 그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우리는 10시 반 영화라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은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일간지 형태로 무료로 배포되고 있었다. 공식일간지라는 수식어 뒤의 은 어색했다. 상영 시간이 남아 잡지를 보는데 볼거리가 많다. 우리의 첫 영화는 디판이다. #2 롯데백화점 푸드코트 영화를 본 .. 더보기
이야기의 힘, <세라자드의 꿈> “천일야화의 시작과 끝이 어땠는지 아무도 모른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그 말처럼 이야기, 아니 예술은 가능성을 전제로 존재한다. 말하고 듣는 이에 따라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될 수도 있고, 현실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핵심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를 메타포로 삼아 현재 이집트, 터키, 레바논 등에서 활동하는 현대의 세라자드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여기서 잠깐, 에 대해 소개해야겠다. 사실 필자 역시 천일야화가 천일 동안 이어진 이야기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천일야화의 ‘천일’은 1001을 뜻했다. 천일 하고도 하룻밤 더 밤에 들려준 이야기란 뜻이다. 라고도 불린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 , 등은 모두 속 이야기다. 설화에 따르면 술탄 샤리아 .. 더보기
화두를 던진 영화 ‘디판’, 이것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첫 영화다. 별밤 3인(락,별,건)은 첫 방문을 기념해 한 작품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의 이야기는 쉬이 끝날 줄 몰랐다.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눈 40분의 대화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각자가 느꼈던 부분들, 혼자였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이야기들. 제6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 디판을 해부해봤다. 영화 소개 (네이버 영화 소개 참고) 부산국제영화제 2일차, 오전 10시 30분, 롯데시네마 6관에서 관람. 자크 오디아르 감독, 2015년 10월 22일 개봉 예정. “이제부터 당신들이 그 가족이요” 내전을 피해 망명하기로 한 주인공은 브로커에게 ‘디판’이란 남자의 신분증을 산다. 처음 만난 여자와 소녀를 자신의 가족인 양 꾸민 뒤 위험을 .. 더보기
부산국제영화제(BIFF) 여행기 1막 #1 무궁화호 벼는 밀린 과제를 하다가 멀미를 느끼고 잠에 들었다. 건은 몇 주 후에 있을 면접을 대비해 인생을 돌아보고 있었다. 락은 시사인을 읽으며 뉴스가 참 지겹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세 사람은 무료함을 느끼고 대화를 시작했다. 3인은 페이스북 페이지 구독자를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평상시 아이디어가 넘치는 J를 생각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했었지만 사정상 지금은 없다. J가 그립다. 평택역에 다다랐을 때쯤 우리는 다시 취업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딱히 답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굴레에 빠져들었다. 하품이 나왔다. 아직 우리는 절박하지 않나 보다…. 환멸을 느낀 우리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주제로 넘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