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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세이아] 1. 지치고 힘들 땐 라멘

category 에세이/푸디세이아 2016. 10. 3. 19:28

 

생각해보면 뭣도 모르는 아이였을 때부터 사골국을 좋아했다.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애늙은이였던 나는 - 집 형편에 맞게 대부분 잡뼈였지만 - 그게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두 사발씩, 세 사발씩 들이켰다. 한 번에 푹 끓여 일주일을 내내 놓고 먹어도 딱히 질린다는 생각마저 안 들었다. 그때는 왠지 모르겠지만 뼛국에는 칼슘이 많다는 말이 정설처럼 여겨질 때였으니, 알게 모르게 마실수록 뼈도 튼튼해진다는 플라시보 효과도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 같다. (슬프게도 곰국에는 단백질과 지방 밖에 없다는 것이 정설.)


사실 사골국을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먹고 나서 느껴지는 든든함, 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푹 삶아낸 뽀얀 국물은 왠지 모르게 먹고 나면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곰탕집에서 내주는 아삭아삭 씹히는 겉절이도, 마늘을 담뿍 넣어 약간 알싸한 향이 나는 김치도 좋아했으니까 사골국이 최고의 음식처럼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본론으로. 분명 낯선 음식이었을 텐데, 의외로 라멘을 처음 먹었던 날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 고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처음 먹었던 돈코츠였을지도 모르고, 강남역 한 구석에 조용히 있던 라멘집의 미소였을지도 모르겠다. 김이 둥둥 떠 있던 시오 라멘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뭐 아무렴 어떤가. 면을 좋아하고, 고깃국물을 좋아하고, 푹 끓인 뼛국물을 좋아하니 라멘은 내게 완벽한 음식에 가깝다.

 

짧은 인생에서 가장 초라했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초라하게 그지없는) 새로운 삶을 찾아 도전해보겠다고 호기롭게 휴학계를 던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늘어지게 살면서도 항상 불안과 초조에 쫓겼다. 할 수 있는 모든 것도 부러 하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공연을 하던 동기가 모두에게 시간대를 알려줬음에도, 그리고 갈 마음을 굳혔음에도, 일부러 가서 볼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길치였지만 어찌어찌 길을 잘 찾아 헤매지 않고 도착한 날, 지하에선 아직 다른 팀이 공연 중이었고 오기로 약속하는 것을 봤던 이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깜깜한 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그를 알아봤지만 왠지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바닥이었음에도 겉으로는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그 순간의 초라함마저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세 곡을 듣고, 마지막 곡을 부를 때 팻말까지 준비한 이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을 보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까지 보곤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혼자 찾아간 곳은 왠지 모르게 씁쓸한 날의 홍대 하카다 분코. 그곳의 돈코츠 라멘의 눅진한 국물은 좀만 식으면 기름이 굳어 퍽퍽해질 정도로, 일본을 가보지 못한 나로선 지금까지 기억 속에서 가장 진한 국물을 가진 집이다. 그렇게 늦은 밤, 라멘이 줬던 그 따뜻함이란. 그때부터 괜히 진이란 진이 다 빠진 날에는 라멘을 찾는다.

 

여전히 방황하는 삶이다. 지치고 힘든 날들은 그때보다도 더하다. 다만 나는 나를 견디며, 꿋꿋이 그때의 초라함을 기억한다. 그래도 지치고 힘들 땐, 라멘이 있다.

 

By.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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