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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푸디세이아

[푸디세이아] 2. 필사의 계절, 따뜻한 빵이 건네는 위로

 

게으르고 머리 나쁜 이가 결과물에는 항상 마음이 쫓겨서 시험기간에는 으레 중세의 민머리 수도사들 마냥 뻘뻘거리며 필사를 한다. 눈이 글을 담지 못하니 손으로나마 우겨넣을 뿐이다. 불안한 만큼 꾹꾹 눌러 담느라 샤프심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항상 똑, 하고 부러져 책상 주변엔 그 잔상들이 항상 포연 뒤 빈 탄피마냥 가득하다. 조급한 마음이 터질 듯해서 바람을 쐬러 나갈 때면 팔뚝과 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린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이 똑 마음을 닮았다.


항상 턱에 받쳐야 폭식하듯 하니 공부가 어느 정도 됐단 것을 깨닫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되어버렸다. 백야와도 같은, 망각과 기억 사이의 불안이 오히려 안심할 수 있는 척도가 된 역설적 상황에 시험기간은 항상 서릿발 같다. 어쩌면 저 흐릿한 장막 뒤의 경지에는 깨달음이 있을 터지만, 항상 미생인 삶처럼 머뭇거리다 시간만 보낼 뿐. 미련한 중생은, 삶의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턱에 받쳐서야 깨달으며 소멸해 윤회만 거듭한다.

 

아는 것 모르는 것 모든 걸 토해내고 돌아가는 길은 밤을 새지 않아도 쌓이는 졸음과 피로와 스트레스가 먹구름처럼 뒤섞인다. 반복되는 후회를 뒤로하고도 벼락이 치는 이유가, 삶이 그 무수한 빗방울을 견디기엔 아직 그닥 간절하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는다. 업화와도 같은 영겁 속에서 삶은 물레를 돌고, 영은 메말라 저 멀리 고비의 바람마냥 흩날릴 뿐이다. 문득 티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 드넓은 시간을 횡단하는 열차 끝에 있을 알록달록할 천들과 독수리와 하늘을 생각한다. 썩어 없어지느니 차라리 풍장이 낫다. 바람결에 잿내가 난다.

 

새로 생긴 골목의 빵집엔 뜬금없이 한창 이혼 소송으로 유명한, 재벌집 딸의 사진이 액자 너머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사장은 갓 나온 빵들을 순서대로 일러줬고, 나는 취향대로 치아바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봉지 속에 담는다. 앙버터는 아직은 말랑한 바게트들이 딱딱하게 마를 정오나 되어서야 나올 것이지만, 일상의 여행을 미루고 기다리기에는 너무나도 먼 시간이다.

 

뿌옇게 김이 서려오는 비닐을 풀고 따뜻한 것을 떼어내 입에 밀어 넣는다. 주사위처럼 썬 감자는 가볍게 포슬거리며 바스라지고, 꼬릿한 치즈의 짠 내와 물기를 머금은 채 살짝 덥혀진 올리브가 씹힌다. 쫄깃하지만 질기지 않고, 부드럽지만 녹진 않는다. 의례 느껴지는 밀가루의 신맛은 아직 따뜻한 탓에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짜지만 담담한 빵을 잘게 찢어가며 걷는 길은, 더 이상 그 이전만큼 헛헛하지 않다.

 

밀은 소화가 잘 안 된다. 아마도 한참을 돌아 집에 가고도 더부룩한 채로 남을 것이다. 매번 삶과 맞바꿔가며 허기를 달래지만, 그래도 따뜻한 빵이 건네는 위로를 차마 뿌리칠 수가 없다. 담담한 함미 아래, 작은 위로 덕에 삶은 다시 무미건조한 익명 속으로 되돌려졌다. 그렇게, 하산이다.


* 여름의 초입에 쓴 글. 시간은 돌아 돌고 마음도 그때와는 다르지만 - 지금이랑 별반 차이는 없다. 그렇게 인생도 돈다. 그 사이 빵은 차갑게 식었고, 삶 또한 변했다. 식어버린 감자빵은 왠지 모르게 부드럽지만 퍽퍽했다. 목이 메이는 듯한 기분은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물 대신 크림빵을 삼킨다.


By.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