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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약약약약약강중…‘기막힌’ 리듬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손예진)는 고종의 승하 2년 뒤 1921년 일본 강제유학길에 오른다. 그가 한국의 땅을 다시 밟은 것은 1962년이다.

 

42년이라는 시간. 자연스레 <덕혜옹주>는 일본에서의 덕혜옹주가 보낸 나날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룬다. 강산이 변해도 4번 이상 변했을 기간이다. 그 동안 벌어진 여럿 사건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했을 ‘병렬적 구성’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마치 색종이 찢듯 나눈 시퀀스들과, 이들을 딱풀로 붙이듯 성기게 이은 기묘한 편집술 말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덕혜옹주>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의 리듬이다. 영화 초반 덕혜옹주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이 짧게 짧게 이어진다. 마치 재빨리 처리해야할 결재문서처럼. 성긴 마무리 뒤에 또 다른 사건이 곧바로 내던져지는 전개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런데 중반부 ‘영친왕 망명 작전’에 이르면 갑자기 영화의 리듬이 느려진다. 물론 여기서 리듬이란 속도감, 긴장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영화가 특정 사건에 온전히 할애하는 시간, 정성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반부 영화가 다루는 사건은 사실상 망명 작전과 덕혜옹주의 귀국이 전부다. 정확한 시간적 배분까지는 알 수 없지만 느낌상 영화 전체가 10이라고 했을 때 초반부에 다룬 사건‘들’이 2정도라면, 망명 작전과 귀국 단 두 가지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만 8이다.

 

중고등학교 음악시간 때 배웠던 리듬의 기본. 강약 혹은 강강약, 그것도 아니면 강약중강약. 그리고 <덕혜옹주>의 ‘약약약약…약강중’이라는 기묘한 리듬. 비유컨대 숙제를 재빨리 마치고 어서 PC방에 가고 싶어하는 초등학생의 마음 같은 구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여기서 의문을 풀어줄 중요한 단서. 지난해 10월 <덕혜옹주>가 크랭크인에 들어갈 당시 3개월 전 개봉한 <암살>(최동훈, 2015)이 ‘대히트’를 치고 있었다. <덕혜옹주> 제작 후기에 따르면 제작진은 <암살>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한 <덕혜옹주>의 시나리오에 긴박감 넘치는 사건을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허진호 감독은 이를 수용한다. 그렇게 새로 추가한 사건이 바로 영친왕 망명 작전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영친왕 망명 작전은 완전히 영화를 위해 새로 만든 허구다. <덕혜옹주>의 원작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아무리 소설원작이긴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인물에서 출발했지만 뜬금없이 초점이 전적인 허구로 쏠린 셈이다. <덕혜옹주> 그리고 허감독의 결정적인 딜레마다.

 

애초에 허구에서 시작했다면, 혹은 망명 작전을 추가하지 않았다면 앞서 지적했듯 기묘한 리듬이 나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영화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은 우를 범했다.

 

역사적 사건들을 앞에 재빨리 몰아 제시한 뒤 <암살>을 본뜬 픽션에 공을 들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역사와 드라마 모두를 영화에 제시하긴 했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리듬은 버퍼링 걸린 동영상마냥 갈피를 잡지 못한다. 

 

2. 사건들의 연쇄, 사라진 인물들

 

위와 비슷한 얘기다. 사건들을 병렬적으로, 숙제하듯 던지는 과정에서 영화는 리듬뿐만 아니라 인물의 설득력도 잃었다.

 

돌이켜보면 놀랍게도 <덕혜옹주>에는 주연(주연급 조연 포함)을 제외하고도 꽤 비중이 있어‘보이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놀랍다’고 표현한 것은 영화가 그들에게 부여한 ‘정황적 비중’과 비교했을 때 인물로서 그들을 이해할 만한, 혹은 설명하는 시퀀스, 씬, 심지어는 쇼트조차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황진(안내상), 김봉국(김대명), 다케유키(김재욱), 영친왕(박수영)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복동(정상훈)까지. 마치 미장센처럼. 이들은 사건을 보다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어디선가 주어진 사물인 것마냥 존재하고 옮겨질 따름이다. 

 

이중 일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데, 영화는 이를 (인물 자체에 할애한 시간보다 훠얼씬) 과장한다. 그런데 사실상 이들의 죽음은 꽃병이 총에 맞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나는 마치 주인공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총알이 꽃병을 깨부수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클로즈업한 쇼트를 보는 것마냥 이물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3. 감정 자극이 약하다고?

 

시간이 없어서(귀찮기도 하고, 더 길게 써봤자 아무도 안 읽을 거 같기도 하고) 마지막은 간단히만 언급하겠다.

 

언론시사회 이후 <덕혜옹주>를 향한 수많은 호평들 가운데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화가 감정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영화가 감정을 강요하지 않아서 밋밋했다는 것.

 

도대체 1도 동의할 수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감정을 자극한다. 특히 ‘아차’ 하면 깔리는 음악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최근 들어 이렇게 빈번하게 웅대하고 장렬하고 비장한 음악이 깔리는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만약 감정적 자극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전적으로 감정적 자극의 과잉 때문이다. (물론 호평일색인 몇줄평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닐 테다.) 틈만 나면 슬프거나 안타까운 얘기를 한 뒤 “울어라!”라고 외치는 사람한테 느끼는 감정이랄까. 물론 여기서 외침은 음악의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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