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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싱 스트리트’, 소년이 음악과 함께 성장하며 반짝인 그 찰나의 기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따금 좋은 영화, 드라마를 보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 날 때가 있다. 머릿속을 휘젓는 생각과 마음에 오고가는 감정들이 너무 많아 타자 속도로 그것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내게도 그런 영화가 몇 개 있다. ‘비포 선라이즈’, ‘어바웃 타임’, ‘그녀’(Her)가 떠오른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에 나는 주로 흔들렸다. 그리고 오늘, 그 기록에 남길 영화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싱 스트리트’. 1980년대 경제 위기에 빠진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코너’의 첫사랑과 성장, 음악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싱 스트리트는 음악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원스’, ‘비긴 어게인’의 존 카니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다. 비긴 어게인을 제외하고 그는 영화의 배경을 전부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로 정했다. 엔딩에서 모든 형제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고백한 그는, 자신의 청소년 시절 기억을 모아 싱 스트리트를 만들었다.

 

코너(카니 감독은 자신의 이니셜을 따서 만들었음이 분명하다)는 딱히 잘날 것이 없는 청소년이다. 집이 망해 거친 분위기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했고, 거기서도 약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 사랑 한 번 제대로 못 한 쑥맥이기도 했다. 그가 고난을 받는 몇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그는 첫사랑에 빠진다. 매일 학교 앞에 모델처럼 서 있는 ‘라피나’를 좋아하게 된 것.

 

여기서부터 감독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코너는 다짜고짜 라피나에게 말을 건다. 집에서 형 브랜든과 함께 뮤직비디오 영상을 보며 떠올린 아이디어로 그녀에게 자신의 밴드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것을 제안한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한 라피나는 의외로 코너를 재밌는 아이로 생각한다. 그렇게 코너의 밴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영화는 밴드의 형성과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던 전작 ‘비긴 어게인’과는 다른 구성이다. 순조롭게 멤버를 구하고, 청소년 수준에서 해낼 법한 뮤직비디오와 음악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꽤나 매력적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음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기보다 좋은 결과물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데 힘썼다. 대신 그는 ‘코너’가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과 벌어지는 일에 대해 더 집중했다. 라피나와 친구인 듯 연인인 듯 깊어져가는 관계, 부모님의 별거로 인한 상처, 코너가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였던 형 브랜든과의 사이를 말이다.

 

코너와 주변인물과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면서 영화는 다소 색달라졌다. 특히 브랜든과 코너와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린 것이 인상적이다. 코너의 첫 음악을 형편없다고 말하면서도, 카피 밴드에 머물지 말고 노래를 만들라며 레코드를 던져주던 브랜든. 집밖에는 나가지도 않는 사회에서 ‘루저’로 낙인찍힌 그이지만 코너에게는 확실한 ‘음악 선생님’이다. 가정이 파탄 난 상황에서 자신도 꿈이 있었다며 그걸 포기한 삶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던 브랜든은 카니 감독 자신의 친형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했다. 또는 멘토 같은 브랜든의 모습에서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우리의 음악적 형이자 마왕, 신해철이 떠오르기도.

 

코너는 여러 순간에서 빛나지만 내가 본 장면 중 그의 밴드 싱 스트리트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그가 상상을 하는 장면이었다. 학교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는 상황에서 라피나는 출연을 약속했지만 나타나지 않는다. 코너는 하는 수 없이 촬영을 시작하지만 라피나가 문을 열고 거짓말처럼 등장하지 않을까하며 문에 시선을 고정한다. 이어지는 상황에서 라피나는 갑자기 약속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때부터 코너의 상상이 시작된다.

 

드레스를 차려입은 라피나의 모습, 꽉 들어찬 객석, 멋진 양복으로 갈아입은 자신들, 그리고 서로 화해를 하고 아들의 공연을 함께 보러 온 부모님, 그리고 집안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 코믹스럽게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형의 모습까지. 이 모든 상황이 실제처럼 일어지는 모습에 괜스레 울컥했다. 현실은 변한 것이 없지만 코너의 상상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힘을 느꼈다. 카니 감독은 자신이 어린 시절 해내지 못한 것을 영화 속 상상에서라도 해내고 싶었던 것 아닐까.

 

이렇듯 감독의 추억과 상상으로 잔뜩 버무려진 싱 스트리트는 보는 이에게도 ‘뜨거웠던 시절’이 있지 않았는가하는 물음을 던지고 마무리했다. 젊음에 기대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엔딩을 보면서 나는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도, 어떤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먹먹함을 남기는 음악과 장면을 남기는 것. 감독은 그것으로 충분했다고 판단한 듯 했다.

 

오히려 감정이 너무 벅차면 표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싱 스트리트는 내게 그런 영화다. 몇몇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이 벅참을 함께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그냥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한 번 보시라는 것’. 누가 홍보해달라고 돈을 준 것도 아님에도 과감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한 번 더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