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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이토록 파괴적인 ‘사랑’

category 영화/주말이다 영화야 2016.07.12 11:52

제 17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이자 재상영 중인 가스파 노에의 영화 <Love>. 겉으로 보이는 것들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Love>는 2시간 30분 동안 반복되는 ‘포르노’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배경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도입부터 펼쳐지는 침묵의 정사가,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적 필터링과 같은 가감 없이 거의 모든 걸 보여주는 <Love>는, 오히려 그 반복되는 외설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지쳐 중반부에는 그 모든 ‘야한’ 장면들에 감흥이 없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횡횡한 모래폭풍 뒤에 남는 건 ‘사랑’이 가진 파괴성에 대한 상념과 같은, 보다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물음이다.

영화로써 <Love>가 보여주는 플롯 그 자체는 기시감을 들게 하는 부분이 많다. 점점 자극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연인, 과거의 불륜, 위험한 불장난, 그리고 발생한 사고와 이별 등. 그 동안 수많은 멜로물 등을 통해 때로는 희화화돼서, 때로는 비극적으로 그려졌던 모든 이야기들처럼 <Love>가 그려내는 ‘사랑’ 역시 그렇게 다르지 않다. 파리가 배경이고, 유학생인 미국인과 프랑스인 여자의 사랑 역시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역순행적으로 회귀하는 구조 역시, 다소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로써 <Love>가 가지는 의의는, 그러한 플롯 구조를 넘어서는 감각적인 파격들과 데카당을 ‘보여주는데’에 있다. 회상이란 장치를 통해 스스로 드러내는 수많은 ‘정사’ 신들에는 야함과 선정적인 것을 넘어서는 파격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지독하게, 때로는 사고와 같이 그려진다. 그렇게 <Love>에서 언어의 대화보다 더 많은 형태로 전개되는 몸의 대화는, 다소 허접하고 유치하게 그려지는 언어들보다 더 선명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드러낸다. 이는 신 하나하나를 유려하게 가공하고 다듬어 그 감각적 선명성을 3D라는 도구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냄으로써 보강된다. 때로는 현실의 한 부분처럼, 때로는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형광으로 빛나는 장면들은 어느 순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소 단조로운 플롯과 매우 자극적인 신들의 구성, 서로 따로 노는 것 같던 영화는 극도의 불안에 빠진 주인공이 패닉에 빠지는 욕조 신에서 극적으로 결합된다. 매우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배경에 쭈그려 앉은 주인공의 회상은, 현실과 상상을 넘어서며 이뤄진다. 욕조는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주인공은 점점 침잠한다. 후회와 슬픔, 분노와 사랑이 마구 뒤섞이는 칵테일 속에서 항상 찌질 했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걸 직시하는 대신 다소 비겁하게도 현실과 상상 속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과 포옹하는 수밖에 없다. 해결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을 슬픔 속에서 남은 건 ‘자위’ 뿐인 것이다.

 

<Love>가 보여주는 ‘포르노’의 이면에는, 그렇게 지독한 사랑 이야기가 놓여있다. 사랑은 마냥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퇴폐적이기만 하지도 않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했던 두 연인의 연애라는 다소 익숙한 이야기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여느 지나간 일들이 그러했듯, 서로를 “보호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서로를 망가뜨리며 절망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토록 파괴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by 9.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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