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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의회민주주의의 성장통

2016년 2월 1일로 예정되어 있던 정의화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회동이 2일로 연기됐다. 이날 연기 된 회동에서는 선거구 획정과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등 쟁점 법안들의 직권 상정 여부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정의화 의장이 중대 발표까지 예고했던 만큼 직권상정 사항에 대한 종결의지가 강했었기에, 이번 직권상정 문제와 관련한 파열음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회에 대한 평이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그 중에서 19대 국회에 대한 평에는 새로운 말들이 덧붙어졌다. 기존의 비판들에 더해 19대 국회는 일하지 않는, 무기력한 식물 국회라는 수식어가 뒤따른 것이다. 이는 새누리당에 의해 발의 돼 여야합의로 2012년 5월 2일 상정 처리된 국회 선진화법에 의거, 다수당이라 할지라도 국회의장에 의한 직권 상정과 과반 의석수에 의한 소위 ‘날치기’ 처리가 불가능해진 후 역설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경우 2월 1일 현재 157석의 의석으로 과반수(53.58%)를 상회하는 의석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입법 강행 처리를 하지 못했다.

 

과반수 의석수를 가져도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되고, 법안 처리와 관련한 협상들의 지연과 결렬이 계속되자 새누리당의 누적된 불만은 점차 커졌다. 야당과의 원활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2013년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 이래로 새누리당은 여러 루트들을 통해 국회 선진화법의 개정 및 폐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법안에 대한 필요성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특히 강조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선진화법과 관련한 새누리당의 피로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대통령 스스로 언론을 통해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맹비난을 쏟아내고, 대국민 담화에서 한숨을 쉴 정도다.

 

여당이 단단히 벼르는 현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유지되고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누리당 출신인 정의화 국회의장의 의지다. 이렇게 되자 친정인 새누리당의 불만은 정의화 의장에게 고스란히 쏟아졌다. 직권상정과 관련한 많은 사건들 가운데 대다수 갈등은 여당과 야당의 갈등보다는 여당과 국회의장 사이의 갈등이었다.

 

이에 따라 정의화 의장은 12월부터 2월인 지금까지 여러 정치적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여당은 물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공세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직접적 압박에도 직권상정은 안 된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반발한 새누리당이 내세운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조차도 일방적인 개정이라며 불가하다는 뜻을 밝혔다. (직권 상정 요건인) 국가 위급 상황에 대한 해석을 천재지변에 한한다는 의장의 원칙론에 새누리당은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정의화 의장의 개인적인 정치(대권) 욕심 때문이다, 다음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출마하려한다는 식의 낭설만을 국회의장의 20대 총선 불출마선언 전까지 쏟아냈을 뿐이다. 국회 선진화법 도입 당시 이를 가장 반대했었던 정의화를 상대로 말이다.

 

이와 같은 ‘지루한 정치적 공방’들이 계속될수록 국민들의 불만은 커져간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월급을 반납하라는 댓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 또한 국민들의 피로감을 상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직권상정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쟁점이 없는 법안들만이 제한적으로 처리되고 있고, 국회에 계류되고 있는 법안들은 처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존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누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정치 불신과 혐오라는 감정들을 걷어내고 나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현 상황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 그 자체가 발전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차는 모든 국회들을 통틀어 크게 좁혀진 적이 없었고, 각자의 기반이 다른 상황은 항상 반복됐다. 이와 같은 상황들 속에서 국회는 대화와 합의로 결론을 도출하려는 어려운 길 대신, 날치기와 직권상정과 같은 쉬운 길들을 택했다. 이에 반발한 소수당의 항의에 국회에는 항상 고성과 야유가 이어졌고, 레슬링을 방불케 하는 육탄전 또한 빈발했다. 국회의사당에는 해머와 쇠사슬을 넘어 최루탄까지 등장하는 사단이 빚어졌고, 이와 같은 모습들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의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정치는 갈등 합의의 산물”과 같은 정치학 개론에서 언급되는 원칙들마저 항상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점에서 국회 선진화법은 분명한 부작용에도 불구, 대화의 합의라는 정치의 기본 원칙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로 작용한다. 서로에 대한 상호 비방이 계속되어도, 다른 한편에서는 필요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강제되는 협상과 합의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농협중앙회장 선거와 관련한 JTBC <썰전>의 논의에서 유시민 작가는 이러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이 결국 민주주의 성장에 불가피한 일이란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초기의 민주주의의 성장 과정에서 문제들이 발생해도 이를 극복해나감으로써 결국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국회의 현 상황 역시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이란 어려운 수단 대신 항상 ‘물리적’ 힘의 작용으로 움직였던 국회였다. 다수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력의 공백이란 이례적인 상황을 대처하는 것에는 그만큼 진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현상 자체가 부정적이어도 흐름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를 국민이 이해해줘야 할 의무는 없다. 비판이 됐던 비난이 됐던, 과거의 행적들을 되돌아볼 때 국회의원들이 받는 질타는 결국 그들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누리당의 불만 또한 근거 없는 일만은 아니다. 악법도 법이듯, 내 뜻과 달라도 다수결의 원칙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얻은 과반수 의석임에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것 자체에 불만조차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국회 선진화 법안에 결함이 있는 것이 분명해도 대화와 타협 대신 법안 자체를 없애자는 공세부터 꺼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제 해결 대신 지름길만 찾는다면, 한국 정치가 겪었던 악순환의 고리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다수 시민들의 불신 또한 그 이전보다 더욱 깊어질 것이다.

 

결국은 원칙과 상식의 문제다. 아무리 대통령이 왈가왈부해도 헌법 40조(“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에 의해 국회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결국 국회의원 본인들의 몫이듯, 대화와 협상을 통해 내줄 것을 내주는 대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정치의 등가교환성 또한 정치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상식이다.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될 수 있다. 다수당과 소수당은 영원하지 않으며, 항상 콘크리트 같을 것만 같은 정당 지지율도 언제든 국민의 준엄한 심판에 의해 뒤집힐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국회선진화법이 능사는 아닐지라도, 이를 없애는 문제에 눈에 불을 켜는 대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먼저다. 국회의장을 흔들고 압박할 시간에, 야당 대표들과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대통령이 법안 처리가 안 된다며 답답하다고 국민에게 호소할 시간에, 될 때까지 국회를 설득해서 합의를 만드는 것이 정치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에 의거한 정치의 기본기를 제대로 닦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의 혼란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비극적인 축복이다.

 

국회 선진화 법 기초를 잡았던 홍정욱 전 의원은 정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던 이정희 전 국회의원이 국회 안의 대립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자 자신의 손수건을 건냈다. 의견이 다르고 서로 반목할지라도 정치는 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인 작은 에피소드였다. 지금의 국회에 이 정도 수준의 품격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의회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지금의 성장통을 보다 의미 있게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 한다. 선진화법 개정과 폐지와 같은 근시안적 지구책 대신 원칙만 잘 지켜도, 의회민주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값진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국민의 몫은 비록 지치더라도 그 고통스런 과정을 지켜봐주는 일이다.  

by. 9

 

* 사진 출처 : 머니투데이,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