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월 17일의 어떤 사건
16년 1월 17일 여의도, 한겨레 이승준 기자의 스케치.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민주 컨퍼런스 사람의 힘>에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비롯 문재인 대표가 직접 영입한 표창원과 김병관, 오기형, 김빈, 양향자, 김정우 등 새롭게 더민주와 함께하게 된 여섯 명이 무대에 올라 강연을 펼쳤다. 참석자 대다수 역시 문재인 대표의 주도 아래 10만명을 돌파한 온라인 당원들이 대다수. 문재인 대표의 밝은 표정 뒤편으로는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SNS에 올려 화제가 된 '더더더더더더' 머그컵을 비롯한 더민주 굿즈가 판매됐다. 네이버 메인에 오르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갔던 이 기사가 다뤘던 컨퍼런스는 어쩌면 정치인으로 거듭난 문재인이 지금의 위기에 대처하는 승부수를 단적으로 조명해주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탈당과 분열 등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위기를 맞이한 순간 문재인 대표는 여러 가지 승부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총선 결과를 아직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고작 과정에 불과한 그의 승부수를 분석해보는 것은 그것이 향후 총선에 있어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승부수는 무엇이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2. 문재인의 승부수 1 : 이미지 메이킹
조동원 새누리 홍보팀장의 성공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 영입한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조동원 팀장과 마찬가지로 광고 전문가다. 브랜딩 디자이너인 그는, '처음처럼'과 '참이슬', '힐스테이트', '엔젤리너스 커피'와 같은 대기업들의 브랜드들을 만들어왔다. 자본주의적 인물처럼 여겨지는 김성근 감독을 공개 지지했다 비난을 받기도 하고, 대기업 홍보 이력과 재산 등을 이유로 강남 좌파 비난까지 들으며 심한 회의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던 그는, 이 모든 일들을 버텨내며 2016년 1월 현재까지 업무를 진행 중이다.
2015년 7월 영입된 그의 첫 업무인 '셀프디스' 운동을 시작으로, 그는 그동안 구닥다리의 표식처럼 여겨졌던 새정치의 현수막을 비판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정당 홍보의 틀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등장한 "아버지 월급을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나 "소녀상의 눈물, 국민과 더불어민주당이 닦아드리겠습니다"와 같은 현수막 문구들은 기존의 더민주의 현수막 문법과는 다른, 손혜원 위원장 이후의 변화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구들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미지가, 젊은 층들에게 보다 세련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러한 손 홍보위원장의 시도의 참신성은 유상으로 판매되는 더불어민주당 정당 굿즈로 정점을 찍었다. 단순한 기념품 수준들로 여겨졌던 머그컵, 텀블러, 에코백 등의 기념품들에 디자인을 더한 더민주의 굿즈는 기존 정당의 접근법과는 차이가 있다. 그냥 생기면 쓰는 것을 넘어서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하는 더민주 굿즈는, 정당에 대한 거리감을 극복하는 작은 노력의 발판이다. 들고 다니기 부끄럽지 않아 정당원이 스스로 정당원임을 밝히기 용이한 굿즈. 이것은 더민주의 이미지 변화의 한 축을 상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문재인 대표의 주도로 이루어진 온라인 당원 가입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온라인, 모바일 등에서 5분 안에 당원 가입이 가능해지도록 구조를 바꿈으로써, 정당 가입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기존 지지층의 결집 정도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10만명에 육박하는 정당 가입원의 가시적 증가는 더불어민주당이란 정당에 대한 내부 지지자들의 인식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망감이 지지로 바뀔 때, 그보다 더 강력한 동원력은 없다.
이미지 메이킹은 문재인 대표 주도의 '인재 영입'에 의해서 더욱 탄력을 받는다. 화제가 됐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기점으로 시작된 문재인 대표의 인물 영입은 그동안 친노 운동권 집단이란 기존의 더민주가 가진 낙인과는 대비되는 탈정치적 성격을 띤 전문가형 인물들이었다. 김병관 웹젠 이사장은 성공한 벤처 사업가이며, 이수혁 전 주한독일 대사는 6자회담의 수석대표였고, 오기형 태평양 변호사는 중국 통상 전문으로 알려졌다. 양향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의 경우는 여상 출신 연구 보조원 출신으로 임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고, 하정열 한국안보통일 연구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취약분야로 여겨졌던 안보 문제의 전문가다. 이밖에도 김빈 디자이너, 김정우 세종대 교수, 박희승 안양지법원장, 유영민 전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 영입이 이루어졌다.
3. 문재인의 승부수 2 : 자발적 우클릭
합리적 보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혔던 표창원의 영입이 상징하듯, 이러한 인물들의 영입은 결국 전문성 강조를 통해 중도층을 아우르려는 문재인의 전략적 행보이자 동시에 새누리와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맞서 싸우기 위한 우클릭 행보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어렵게 영입한"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이러한 문재인의 승부수의 정점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2012년 대선 당시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의 대표자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선생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보수 세력인 김종인의 영입은 뜻밖의 일로 여겨졌다. 문재인 자신을 패배하게 만든 인물을 영입해 모든 전권을 안겨주는, 역설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호의적인 김종인의 영입이 꼭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김종인 영입에 대한 당내외적 반발 심리 또한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김종인의 합의되지 않은 듯한 돌출적 발언들은, 그의 영입이 문재인에게 있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총선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위험성이 커질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내외적으로, 위험한 결정인 셈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영입을 통해 문재인이 2016년 총선에서 지금껏 여당이 주도해왔던 경제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는 총선 프레임 선점에 여당보다 한 발짝 앞서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동시에 안철수 의원이 탈당과 더불어 '중도층'을 위한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던 선언에 대한 문재인의 날카로운 대응이기도 하다. 문재인은 이들에 맞서 기존의 더불어민주당의 방식 대신, 김종인 등을 비롯한 중도 실용주의적 인물 영입들과 "경제민주화"로 대표되는 경제 친화적 정강들을 통해 "우향우"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 새누리와 새로운 중도적 길을 지향하는 안철수에 맞서 문재인 대표는 "경제민주화" 캐치프라이즈를 통해 호텔링 모형대로 점차 중도에 수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문재인 대표의 자발적 선택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의 문재인의 선택은, 결국 지난 대선 때의 통합진보당과의 연합을 통해 패배한 경험을 되짚은 데서 비롯된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에 충실한 진보과 지역적 기반이었던 호남 대신 보다 중도 지향 전략을 취해, 정치적으로 흐릿해지는 대신 보다 선명한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시작한 것이다. 이는 김종인의 영입과 맞물려 이뤄졌던 호남 DJ계의 대표 권노갑의 탈당이 상징하는 일인 동시에, 지난 날 이승만과 박정희의 묘소 참배를 거부해 보수 세력의 비난을 받았던 지난날의 문재인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4. 결론
이 모든 일은 결국 문재인 대표가 위기를 맞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계속되는 비노 세력의 연쇄 탈당, 당의 답보적인 지지율은 물론 본인에 대한 지지율까지 계속해서 답보상태였다. 당내외적인 비판이 계속되는 와중에 문재인은 고립돼왔고, 무력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는 문재인이 가지고 있던 권력욕이 없는 정치인답지 않은 정치인이란 이미지와 맞물려 계속해서 악화일로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야당의 분열이라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위기론이 번져나가는 이 시점에서 문재인은 정치인으로 본격적으로 거듭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문재인의 승부수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그가 자신을 위한 권력 추구를 열망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난 순간 비로소 더불어민주당 모두를 위한 정치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한 사실은, 지금이 분명 그 어느 때보다 위기라는 사실이다. 야당의 분열은 야당 지지층의 분열로 나타나고 있고, 이는 정당 지지율이 양분되어 있는 현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천정배, 안철수 등의 범야당계 인물들의 경우 여전히 통합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이 혁신 없이 내분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야당 분열의 상황 속에서 180석 이상의 총선 대승을 기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의 구도대로라면 집권여당이 승리하게 될 것이고, 지금의 문재인의 승부수들 역시 빛을 바라게 될 수밖에 없다. 과정이 아무리 개선됐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알아주지 않는 것이 냉혹한 정치의 생리다.
그렇지만 문재인 대표의 위기는 어쩌면 2012년 대선 이후부터 계속된 것이기도 하다. 정치계에 발을 들어선 이래로 그는 항상 비판의 대상이었고, 동교동계와 비노 세력들에 의해 당을 친노 패권주의로 이끄는 원흉과 같이 여겨졌다. 그는 폐쇄적이자 무능력한 인물로, 당의 무력함을 조장하기에 물러나야 하는 과거와 같이 취급됐었다. 오히려 이번 위기를 총선 승리라는 결과로 극복해낸다면, 문재인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권주자로 다시 거듭나게 될 것이다.
판은 깔린다. 1월 현재, 거듭난 문재인은 현재의 총선 구도에서 그 누구보다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철수와 새누리가 헤매고 있는 것이 분명한 지금, 문재인은 19일 자신의 대표적 사퇴라는 또 다른 승부수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의 문재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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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더불어민주당 트위터,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