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정치

새정치민주연합 당명 변경을 둘러싼 논쟁, 현대판 예송논쟁이다

예송논쟁은 조선시대 현종 때 인조의 계비인 조 대비의 상례 문제를 두고 남인과 서인이 두 차례 맞붙은 사건이다. 두 차례 모두 복상 기간을 얼마나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예송논쟁으로 인해 남인과 서인이 번갈아 정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도 있지만, 논쟁 내용 자체가 백성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는 무의미한 논쟁이었다는 점에서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400년도 지난 고리타분한 일을 굳이 꺼내는 이유는 최근 전당대회를 앞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에서 당명 개정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에 처음 불을 지핀 건 주요 당권주자들이었다. 지난 1일, 광주 무등산에 오른 박지원 의원과 문재인 의원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당명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혁신해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고 강한 야당, 통합 대표로서 앞장서겠다"고 호소했고, 문재인 의원은 안철수 의원을 의식한 듯 "양해를 얻어 새정치민주당으로 바꾸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도 2일,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개정하는 것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당명 개정은 추진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당명 개정은 정당의 고유 권한이다. 과거 새누리당도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전력이 있고, 이외의 정당들도 당명을 변경한 경우는 많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개정을 예송논쟁이라고 칭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왜 바꾸는데?"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다

당명을 바꿀 때에는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은 지난해 3월 26일 탄생했다. 채 1년이 되지 않은 이름이다. 지난해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중앙정치위원장이 제3정당 창당에 합의해서 나온 당명이고, 기존 민주당 당원들도 결과적으로 받아들였던 당명이다. 당시 새로운 당명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채택한 이유는 낡은 정치를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당명을 바꾸려는 이유와 의도는 무엇인가.

문 위원장은 당명 개정 필요성에 대해 "여러 계층의 당원들을 만났는데 당원과 국민들이 당명을 제대로 숙지하고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얘기가 있다고 하니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잘 다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명 개정의 이유는 '익숙하지 못한 이름'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 자체를 낯설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본다. 필자는 새정치연합의 당원도 아니고 지지자도 아니다. 다만 당명에 대해서는 뉴스와 신문을 통해 익히 들어 왔으며, 가족을 포함한 주변 지인들에게서 해당 당명이 어색하다거나 낯설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들은 기억이 없다.

당명을 낯설어하는 당원이나 국민들 때문에 당명을 바꾸는 것이라면 너무도 불친절하다. 지금까지 새정치연합이라는 이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이름에 애정을 갖는 사람이나 친숙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국민과 당원을 위해 당명을 개정하는 것이라면 절차를 통해 바꿔야 한다. 설문조사도 없이 유력 정치인의 말에 의해서 당명을 바꾸기로 결정한 당의 결정은 야당이 그렇게 강조했던 서민 친화적인 의사소통방식이 될 수 없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당명 개정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새정치민주당'으로의 이름 변경이 가능할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한 정당이 있기에 다시 '민주당'이라는 명칭을 쓸 수는 없다. 진통을 거쳐 당명을 새정치민주당으로 바꾼다면 아마 기존 민주당을 기억하는 이들의 결집 효과가 이전보다 뚜렷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기존 민주당 지지 세력이 모이는 것과 별개로 '안철수 현상'을 통해 새정치연합의 지지자로 돌아선 사람들의 이탈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안 의원은 당명 개정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상태다. 그는 당명 개정 논란에 대해 "당명 때문에 우리 당이 집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당명보다 당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경쟁할 때"라고 비판했다. 안 의원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명 개정을 하게 될 경우 안 의원을 비롯한 당내 신진세력과 지지자들의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기존 민주당 지지 세력의 결집 효과가 안 의원을 비롯한 신진 세력의 이탈 효과보다 더 강해서 결과적으로는 당명 개정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하지 않으며 통계적으로 분석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정치적인 계산 외에도 새정치연합이 생각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지난해 새정치연합은 당명 개정으로 인해 선거 홍보 현수막 등을 제작하는 데 꽤 큰 비용을 치렀다. 물론 당시에는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비용이 많이 든 점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당명을 바꾸면 또다시 비용은 들기 마련이다. 새로 발생하는 비용은 새로운 예산으로 보전되는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해 정책 연구, 설문 조사 등 다른 데 쓰일 수 있는 당 예산이 당명 개정하는 비용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 입장에서 손실이다. 거기에 새 당명만을 채택하면 몰라도 새로운 당령까지 필요로 할 경우엔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잃을 수 있는 것은 이미지다. 최근 새정치연합이 국민들에게 주는 이미지는 바꾸기로 유명한 당이다. 2000년 이후 야당은 새천년민주당(2000) → 열린우리당(2003) → 대통합민주신당(2007) → 민주통합당(2011) → 새정치민주연합(2014)으로 줄곧 당명을 바꿔왔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 당명으로 활동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이름을 바꾸겠다고 하니 현기증이 날 정도다. 거기에 당 대표도 위기 때마다 물러나고 비상 체제로 가고 다시 새로운 당 대표를 뽑는 식의 악순환이 수차례 계속됐다. 이처럼 거듭되는 '바꿈'의 반복에 국민들이 거부감이 생기는 순간, 당에 대한 신뢰감과 지지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달걀 껍질과 흰자와 노른자

달걀 껍질은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흰자와 노른자 역시 중요하다. 달걀 껍질이 없다면 병아리는 부화하지 못할 것이며, 흰자와 노른자가 없는 달걀 껍질은 그 자체로서 존재의 의미를 잃을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연결성이다. 우리가 달걀 껍질을 지칭할 때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 즉 흰자와 노른자를 자연히 연상하기 마련이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껍데기만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컨대 달걀 껍질을 소라 껍질로 바뀌었는데 그 내용물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당명을 바꾼다는 것은 당의 색깔과 이념, 성격을 달리한다는 것과 같다. 곧 당의 정체성을 바꾼다는 의미다. 새정치연합의 당명 변경 논쟁이 예송논쟁으로 끝나버리지 않기 위해서 알맹이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과거 수차례 당명을 바꿨던 새정치연합의 색깔이 변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당명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세력을 흡수한 새정치연합이 그들을 걷어내고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갈림길에 서 있다. 박근혜 정부의 중반 국정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야당이 내세우는 화두는 전당대회와 당명 개정 논란뿐이다. 정부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야당의 역할이다.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는 것에 몰두해도 시원찮을 판에 정책이 아닌 유력 정치인들과 그들의 발언으로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아쉽다.

국민들에겐 새정치연합이든 민주당이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정부가 제대로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민생과 민주주의에 힘쓰는 야당의 모습을 기대할 뿐이다. 예송논쟁으로 조정이 시끄러울 당시 정작 백성들은 양란으로 인해 황폐했던 국토에서 먹고사느라 바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개선안 등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크지만, 야당의 목소리는 희미했다. 더군다나 비정규직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먼저 내놓은 곳이 야당이 아닌 정부라는 점에서 야당을 향한 아쉬움과 실망감이 컸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정당의 익숙한 이름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당의 정책이다. 과거 국상 기간을 놓고 다투는 모습이나 지금 정당 이름을 바꾸니 마니 하는 걸로 떠들썩한 모습이나 국민들에겐 쓸데없는 논쟁에 불과하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국제신문,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