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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한국판 이민법? 이자스민 법에 대한 단상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낸 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이다. 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한국 국적이 아닌 18세 이하 아이들을 이주아동으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국적과 관계 없이 모든 이주아동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혜택의 핵심은 특별체류자격
1. 한국에서 태어나 거주하고 있는 이주아동
2. 건강이나 안전에 위해가 발생해 치료 및 진료가 필요한 이주아동
3. 한국에 입국한 뒤 5년 이상 거주했으며 연속적인 교육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주아동
4. 그밖에 인도적 사유로 한국 거주를 보장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이주아동 

 

여기에 이번 법안에는 ‘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추가됐다. 즉, 이주아동이 특별체류자격을 얻게 되면 아이의 부모도 그 기간 동안 국내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쟁점의 중심은 이주아동에 대한 특별체류자격 부여와 부모의 강제퇴거 유예 조항에 있다. 벌써부터 ‘한국판 이민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또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비판의 논리는 간단하다. ‘국민들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이주자와 그 자녀를 도와야 하는가’ 내지는 ‘우리 세금을 범법자를 보호하지 마라’ 등이다. 그리고 이자스민 의원에 대해서는 ‘자국으로 돌아가라, 귀화했어도 여전히 필리핀 사람이다’라는 반응을 쏟아낸다.

법안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는 일부 네티즌들의 이러한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오바마 정부는 이민법 개혁을 추진 중이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의석을 내줘 의회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자 오바마는 행정명령으로 이민법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엄포를 낸 상태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반발하고 있고 이들의 논리 역시 이자스민 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불법 체류자의 대부분은 산업연수생 제도나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다. 즉,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국내(특히 지방의 경우)로 유입시킨 사람들이다. 실제로 국내 중소기업 공장은 이들 없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체류 기간이 끝난 후 돌아가지 않아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물론 돌아가지 않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를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국가의 잘못은 없는가. 애초에 불법체류자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운용해놓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은 없는가.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체류자=범법자’라는 등식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수원 훼손 시신 사건’의 피의자 박춘봉과 2년 전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오원춘 등과 같은 흉악범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들로 인해 불법체류자는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외국인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다. 모든 불체자들이 박춘봉, 오원춘과 같은 흉악범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비난은 온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자스민 법이라고 하지만 실상 이 법은 지난 18대 국회에서부터 발의된 법안이다. 당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발의했고 43명의 여야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논의 진행 상황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이주아동 권리보장에 대한 법 제정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이때 이자스민 의원은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또한 이 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다문화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국 이자스민 의원은 박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법안을 발의했을 뿐이다. 당시 대선캠프에서 다문화 정책을 담당했던 이 의원이 법안을 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정책을 대표 발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의원에게 돌을 던지기는 어렵다. 이 법안은 과거부터 국회에 꾸준히 발의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임수경, 정청래 의원 역시 비슷한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그러나 이자스민 법안이 국회에서 실제로 통과될 확률은 극히 드물다. 반대여론을 의식한 여당과 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가 1991년 가입한 UN 아동권리협약은 협약 규정에 따라 불법체류자 자녀를 보호할 근거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살아가는 아동들을 위해 교육권과 체류권은 최소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미등록상태에 놓인 이주자 수는 약 2만 명이다. 법안 내용 중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조정하면 된다. ‘불법’ 딱지가 붙은 이들은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없는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사회는 위선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다. 가끔 TV를 틀면 해맑게 웃는 다문화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우리나라 아이들과 어우러지는 캠페인이 나온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캠페인을 만들기보다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최소한의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 네이버, 다음,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