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새정치민주연합 입당이 한참 이슈였던 27일, 안철수 의원(이하 안철수)의 기자회견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작금의 문제의 원인은 경제이며 결국 이는 정치로 해결해야한다며 시작된 기자회견은 공정성장, 교육 변화, 격차 해소를 통한 '합리적 개혁 정당'이라는 다소 모호한(?) 결론으로 갈무리됐다. 분명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해지고 직설적으로 변한 안철수지만, 아직 그가 그리고 있는 사회의 청사진이 구체화되기까지는 분명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점도 분명하다. 탈당 후 안철수와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안철수의 신당이 가진 지지율의 상승 추이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그의 말을 통해서 어떤 '희망'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지켜봐야 하는 것 또한 분명함에도 말이다.
정치 현실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분석에도 비교적 평범했던 그의 기자회견에서, 주목해볼만한 지점은 그가 탈당부터 시작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시도 중인 정치적 '실험'이다. 안철수가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꿈꾸는 미래, 다당제 말이다.
1. 문국현 : 낯설지 않은 기시감과 그럼에도 이어지는 안철수 현상
2007년 대선 당시 진보 성향의 후보로 분류됐던 문국현은 당시 야당이었던 이명박의 경제대통령 패러다임에 대해서 경제적 영역에서 대척점으로써의 이미지가 강했다. 정직한 기업인, 소수약자에 대한 배려의 경영, 합리적 운영 등 그의 기업 영역에서의 성과는 구체적인 정치적 레토릭 대신 사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탈 이념적, 탈 이데올로기적 정치 모델이 사실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같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은 그 '모델링'이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는 점이다. 대선은 결국 이명박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문국현은 창조한국당을 창당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불법정치자금 등의 문제로 이것이 (14개월이란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당선무효 판결로 이어졌고, 이후 문국현은 한국 정치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2015년인 현재, 한국 정치인들 중 누구도 문국현의 가치를 계승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탈 이념적 정치 모델의 시초는 이렇듯 철저히 무너졌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특이한 점은, 불과 몇 년밖에 지나지 않은 이 정치적 실험이 다른 기업가 출신 정치인에 의해 비슷한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야당 진보 세력의 비난과 여당 보수 세력의 비웃음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자신의 돈까지 쓰는 '베팅'까지 감수하면서 벌이는 안철수의 정치적 실험은, 그런 점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안철수는 진짜 자신의 생각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강수를 두고 있는 것일까. '간철수'라 불리며 정치 입문 후 모든 행보에 있어서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로 일괄했던 그가 기존의 정치 문법을 벗어던질 만큼 그 자신에게 확신을 줬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 안철수의 '실험' - 제 3의 길, 다당제 모델로의 첫 걸음
전 대권주자이자 현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안철수의 정치적 목표는 필연적으로 대선 승리일 수밖에 없다. 이는 그가 이념이 다르다고 비판하고 있는 민주당에 입당한 계기였고, 수많은 비판과 정치적 위상의 하락에도 그가 꿋꿋하게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버텼던 이유였을 것이다. 안철수는 - 2012년 대선의 경험을 통해서 - 완벽한 양당 대결적 구도로 갈 경우에도 진보 진형은 불리하다는 사실마저 모를 만큼 정치적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탈당'이라는 승부수(혹은 무리수)를 던지면서까지 어떤 실험을 시작했다.
"개헌저지선 100석 확보", "다당제"와 같은 그의 말들은 총선 승리라는 기존 정치 세력의 레토릭하고는 다르다. 그는 안보적 보수, 경제적 진보라는 전형적인 중도 보수적 정치 지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비교적 양분된 한국 사회에서 중도 성향이라는 정치적 지향점이 자칫 두 세력 사이에서 괴멸될 위험성이 있음에도 안철수의 '실험'은 진행 중이다. 이는 그의 노림수가 비교적 명확하단 점에서 기인한다. 중도 온건 보수 세력과 무당층, 중도 온건 진보 세력을 포괄함으로써 부동층을 흡수하겠다는 그의 전략은 결국 대선 승리의 열쇠가 중도 세력을 포용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기에 나온 경험적 전략이다. 현실 정치에서의 고통을 통해 '정치 멘토 안철수'는 드디어 '정치인 안철수'로 거듭났다.
정치에 대한 무력감, 분노, 불신이 가득한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기존의 정치 세력이 사용하던 정치 문법을 벗어던지는 데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3김 이후의 정치인들의 집권의 중요한 한 요소였다. 새로운 언어를 제시하는 이들에게, 대중들은 열광하며 표를 통해 지지했다. 안철수 또한, 그들과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당이 총선에서 자리 잡는다면 그가 선두주자로 치고나갈 것은 자명하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현실성의 문제다.
3. '영웅'과 '현실적 제약'을 넘어서야 하는 다당제 실험, 안철수는 이겨낼 수 있을까?
이제 안철수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가 이루고자 하는 실험에는 두 가지 큰 장벽이 있다. 그건 바로 '영웅'을 바라는 대중의 심리와 그로인해 파생되는 '현실적 제약'이다.
21세기,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아직 실질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요소인) '영웅'의 신화가 정치사 전반에 흐르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부단한 정치 투쟁과 갈등에 지친 나머지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갖게 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역설적으로 산적한 사회 문제 전반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백마를 탄 초인'과 같은 스타 정치인들의 탄생을 바라고 원한다. 이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에 비례해서 생겨난, 현실 정치인에 대한 반감의 반증과도 같다. 뉴스 댓글들부터 길거리 허름한 노점들에 이르기까지 쓸모없는 국회의원들 모두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낙선 낙천 운동부터 지금의 물갈이론에 이르기까지 기존 정치인들 대신 새로운 인물, 참신한 인물에 대한 열망 또한 꾸준했다. 그렇게 정치계에 입문한 사람들이 결국 기존 정치인들과 동일화되면서 실망감도 점점 커졌지만, 그럴수록 새 인물, 새 사람에 대한 갈망 또한 높아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국 정치 구성원들의 태도는 결국 다모클레스와 칼과 같이 작용했다. 새로 영입된 인물들은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정치적 무력과 구조적 한계 안에서 점차 기성 정치인들과 동화됐고, 결국 '아무 변화가 없구나'란 국민의 실망만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치인 노무현은, 서민의 대통령이 돼줄 것이란 환상의 결정체였고, 집권 후 그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했던 신자유주의적, 친미적 정책들이 그들의 기대와 어긋나기 시작하자 곧바로 지지기반을 상실했다. 현대의 전설이었던 이명박은 경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란 경제 대통령 프레임으로 집권하는데 성공했지만, 그의 집권에도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자 그에 대한 조롱은 만인의 축제와도 같이 이뤄졌다. 한국 사회는, 영웅을 그리며 영웅을 세우는 데 익숙하지만, 그렇게 모두의 손으로 올린 '영웅'이 자신들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지의 추이는 하나의 거대한 조류와 같아서, 그 흐름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모두가 예측할 수도,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안철수는 다시 거리고 뛰쳐나가 자신의 머리 위로 칼을 매달았다. 칼은 한 번은 빗겨갔지만, 두 번의 기회는 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기존 양당제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정치적 토양 하에서는 양당제를 벗어나는 대안정당은 '사표'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민주노동당 때부터 지속된 이러한 '사표' 논란은 양당 체제의 갈등이 극대화되고 세력 대결의 형태로 선거가 지속되게 될 경우 더욱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당장 안철수의 창당 이후 예상과 달리 대규모의 연쇄 탈당이 이뤄지지 않는 현상도 결국 이와 같은 현실적 제약에 기반을 둔다. 안철수 신당이 온건보수로까지 지지기반을 넓히지 못한 채 호남 등 새정치민주연합의 세력의 표만 양분하는 형태로 선거가 진행될 경우, 안철수의 정치적 생명은 수많은 비난과 비판 속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결국 손학규나 유승민과 같이 기존의 판세를 완전히 깰 새 인물의 수혈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는 성공이 어느 정도 보장될 때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결국 문제는 순환된다. 승리가 담보돼야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선 승리가 담보돼야 한다. 그러나 피상적인 지지율의 상승만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도 설득되지 않는다면 지지율은 떨어진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우로보로스처럼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결된다. 돌파구를 찾는 일 또한 녹록치 않다.
이와 같이, 그의 진단과 포부와는 달리 현실 정치의 셈법은 복잡하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4개월 남짓이다. 그 시간 동안 안철수는 모든 중도층을 아우르는 설득적인 제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설득이 쉽게 변하는 대중들의 심리와 현실적 제약까지 한꺼번에 넘어설 수 있을까. 오히려 자기 진영의 내분만 야기했다며 비난 속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분명한 현실을, 그의 정치적 '실험'은 견뎌낼 수 있을까. 이는 안철수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결국 들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4. 글을 마치며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현실 정치적 상황에서 안철수의 승리 여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가 벌이고 있는 정치적 '실험'들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문국현 때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희극으로 반복될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그의 행보는 오늘의 기자회견과는 말과는 달리 호남기반 지역정당 정도로 끝날 수 있다. 그것마저도 안 돼 총선에서의 참패와 새누리당의 압도적 승리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양당제에서 다당제로의 전환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정치의 발전은 결국 갈등과 합의의 반복의 산물이다. 기존 양당제 체제에서의 한국 정치는 자신들의 세력화가 주요 관건이었고, 다수당으로 집권하는 순간 합의보다는 '날치기'에 급급했다. 정의화 의장과 같은 정치적 중재 같은 책임을 모든 개인한테 기대할 수도 없다. 지금 정당들이 구축한 시스템 하에서 한국 정치는 결국 합의 도출 대신 이념적 정치적 레토릭에 급급한 세몰이 갈등 구도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정치는 갈등을 통해 발전한다는 인식 대신 정치인들은 맨날 싸움만 하느라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인식만을 만연하게 한다. 정치에 대한 관심 대신 정치에 대한 혐오만 늘리는 것이다.
만일 다당제가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정치 구도는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는 (총선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안철수 신당의 의회 내 비중만 높일 가능성이 크더라도, 이와 같은 견제세력의 등장은 현재 외면 받고 있는 소수 정당에게 기회로 주어질 수 있다. 물론 선거법 개정의 뒷받침이 이뤄져야 되는 일이지만, 외연의 확대는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등의 소수정당의 목소리도 중요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집권을 위해선 협력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연정이 필요해지는 순간 정치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이 확장될 가능성은 더 커지게 된다.
'실험'은 이제 시작되었고,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성공하더라도 기대와는 달리 그저 평범한 권력욕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고, 실패할 경우 안철수의 정치 생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조용한 '레이즈'가 이루어졌던 오늘의 한국 정치 상황에 흥미가 가는 것은 커지는 판의 향방을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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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연합뉴스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