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가 밝았어도 아픔을 끝내지 못했다. 협상이 타결됐음에도 2015년 12월 30일 1211번째 수요집회는 열렸고, 그 와중에 대학생 30여명은 주일대사관에서의 기습적 반대 시위를 이유로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았다. 위안부 협상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세대 간 이념 간 대립 구도로까지 벌어져 극과 극으로 갈려 분분한 채 사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난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의 주요 사항이 담긴 기자회견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
-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재단을 만들면 기금을 출연, 사업 진행
- 일본 정부는 조건이 충족될 시 모든 문제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
-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가 조건 충족할 시 모든 문제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된 것임을 확인
- 한국 정부는 소녀상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우려사항을 확인하고 관련 단체와 협의
- 한국 정부는 위의 사항이 이행되는 것을 근거로 국제적 상호비방을 자제
이와 같은 합의에 대한 여론은 통계조사에 따른 결과만을 놓고만 봐도 불분명하다. SBS가 TNS에 의뢰해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3.3%가 잘했다, 40.4%가 잘못했다는 결과치가 나온 반면, 돌직구뉴스가 조원씨앤아이를 통해 조사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는 신중하지 못한 합의라는 의견이 62.2%로 한일 관계 진전을 이룬 합의라는 의견 31.9%보다 높게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SBS가 공표하지는 않았던 리얼미터의 조사는 잘했다는 의견이 43.4%, 잘못했다는 의견이 50.7%로 나타났다. 그나마 잘했다는 의견이 높았던 SBS의 여론조사 결과 또한 20~40대의 경우 압도적인 반대 기류가 형성돼 있는데 비해, 50~60대 세대의 경우 압도적인 찬성 입장이 많아 세대 간의 극명한 인식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혼란이다. 해결을 위한 협상이 오히려 갈등만을 유발한 셈이다.
협상이 낳은, 수많은 분노와 절망을 삭인 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제 역학적, 외교적 관점에서만 볼 때도 이번 위안부 협상에 대한 접근 방식이 지나치게 미시적이고 국지적 차원에 국한됐다는 점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협상이 가진 궁극적 문제점 중 하나는 피해를 입은 피해국 간의 연대를 통해 더 의미 있는 사과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음에도 이를 포기했다는 데에 있다.
대만, 필리핀, 베트남, 네덜란드, 중국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와 같은 위안부 문제를 겪었다. 그 규모에 있어서는 우리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만, 비교적 피해자 수가 적게 알려진 네덜란드의 경우도 1992년 얀 루프 오헤른의 증언 이후 1994년 12월 이래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화요집회"를 열기 시작해 241회에 달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도 정확한 규모가 파악이 안 됐음에도 최대 20만명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추정치가 있다. 일본이 설립한 아시아 여성기금에서 파악한 위안소의 개수가 400여개고, 피해국들의 자체 추정치를 종합하면 최소 3000여개의 위안소가 22개국에서 개소됐다. 우리에게 위안부 문제는 그 누구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역사적 상처이지만, 이와 같은 상처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들 피해국들의 공통된 목소리가 제시된 적은 없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라는 단 하나의 가해자에 의해 일어난 사건임에도, 피해국들은 어떤 연대나 통일된 제한을 하는 대신 각개격파의 형태로 위안부 문제에 접근했다. 당장 한일 간의 합의가 나온 직후에서야, 대만 필리핀 중국 네덜란드 등이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 및 사죄와 관련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해 규모가 불분명한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는, 동남아 최대 경제특구로 불리는 다웨이 경제특구 개발 등을 주도하는 일본에 맞서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환구시보의 여론조사 결과처럼 95%는 이와 같은 협상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합의를 일본으로부터 끌어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비극적이게도 한국 정부 스스로가 이번 협상 결과를 통해 증명한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가 '정말 진심으로 상식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이와 같은 고려들조차 없이 협상을 졸속으로 진행했다고 믿기는 차마 '어렵다'. 중국이 핵전략미사일부대인 로켓군을 창설하고, 육군지휘기구를 창설하는 등 군사굴기 원년을 선표하며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외적 압박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강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초지일관 부정의 입장을 보였던 일본 정부가 갑자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나, 내년이 되어서야 협상의 진전이 있을 것이라던 기류가 갑자기 바뀐 것에도 이와 같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과 입김을 고려해 볼 때, 한국 정부가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생각해주는 대신 "대국적으로 이해하라"는 망언으로 갈등을 덮으려하고, 이번 합의가 위대한 성과라며 치켜세우는 일에 급급한 것은 정부의 입장만 고려할 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단 합의가 중요한 것이고, 이 합의를 바탕으로 한일 양국 간의 동맹을 건설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역학적 상황마저도 졸속 협상을 정당화할 수 없다. 압박이 있고, 어쩔 수 없는 합의가 필요하더라도 역사의 상흔마저 역학적 관계의 논리에 묻어버리는 것은 결국 국가의 폭력이다. 모든 합의의 기본이 되는 사과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것을 받아들일 때 성립한다는 기본 전제가 너무 쉽게 무시되는 현실은 어쩌면 이 사회가 가진 한계의 명백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일반 국민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국제적 연대를 통한 압박과 이를 통한 개별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노력을 꾀하는 것이 협상 후 피해자와 국민들을 상대로 납득 불가능한 설명을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한국 정부가 만일 이번 협상에 있어 국제적 연대를 주도하고 목소리를 대변해 협상을 주도했다면, 우리의 위상은 물론 우리가 얻게 되는 결과물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보이는 태도나 우악스런 일본 언론들의 공세로 비추어볼 때, 수요 집회는 결국 끝나지 못할 것이다. 전 세계 어딘가에서 "집회"조차 하지 못한 채 역사적 침묵과 망각을 강요받고 있을 모든 이들의 아픔도 결국 아물지 못할 것이다. 국가논리에 따른 희생이 21세기까지도 당연시 되는 비극은 그칠 줄을 모른 채, 또 다른 상흔만을 남기고 있다. 이 문제가 우리만의 비극이 아님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