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찧었다. 뒤통수를 부여잡고 황급히 손을 본 순간 흘러내리는 피가 보였다. 흥분이 착 가라앉는 느낌과 함께, '이게 뭐지'란 생각이 든 순간 아득했다. 응급실 병원 의자, 아픈 애기들의 울음소리를 BGM으로 CT 촬영을 기다리던 중 생각했다. 아직 젊다고만 생각한 나이,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경계는 한 끗 차이였다.
2015년 12월,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이 때, 한 해를 되짚어보면서 우리 모두가 주목했지만 곧 다시 잊어버렸던 '죽음'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뭔가 멀게 느껴지지만, 이 모든 일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다.
1. 할머니의 쓸쓸한 발인식
이번 달 7일 발인이었던 최갑순 할머니의 장례식은,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발인식 당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직원 2명과 가족 5명 외엔 참여한 이가 없었다. 국회 여성가족위 위원 중에서 참여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관심의 방증일 것이다.
1210번째 정기 수요 집회가 열리는 24일까지도 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 11월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 올해 안에 종결을 짓겠다는 약속을 지었지만 뚜렷한 입장차만 보인 채 실질적 해결의 방향마저 잡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질적 실마리가 될 한일 청구권 문제마저도 23일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한일협정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자체가 무효라고 결정되면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24일, 아베 총리가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기사는 나오지만, 여전히 미지수다.
이제 살아 계신 위안부 할머님들은 46분 뿐이다.
2. Good Bye, YS.
지난 달 22일 한국 민주화 운동 격동기의 정치인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첫 국가장으로 치러졌던 장례식은 22일부터 26일까지 이어졌고, 약 3만 7000명의 조문이 이어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라이벌 관계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대통령 시절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이루었으나 IMF 사태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도 지목 돼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는 많은 인사들을 새로 정치권으로 입문 시킨 것으로도 유명해, 대표적인 인사들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정의화 국회의장, 홍준표 경남지사, 이완구 전 총리 등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이 현실 정치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YS의 유산'의 여파는 한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 Pray for Paris : 여러 가지 의미로
다에시(DAESH, 이슬람국가 IS와 동일어)에 의한 여파로 시리아는 전쟁터가 되었다. 난민이 발생하고 3세 꼬마 소년 쿠르디의 죽음으로 난민 문제에 대한 이슈가 불거지면서 유럽 국가들은 독일 메르켈 총리를 필두로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터졌다. 사망자 120명, 부상자 200명. 대참사였다.
파리 테러는,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모든 유럽 국가들의 경계의 빗장을 더 굳건히 만들며 국제사회를 뒤흔들었다. 이민자 추방이란 극단적인 선언까지 불사하는 마린 르펜과 극우 정당 프랑스 국민전선이 선전했고, 이를 막기 위해 집권 프랑스 사회당은 야당 니콜라 사르코지가 이끄는 공화당의 당선을 위해 후보를 일괄사퇴시키는 극단적 처방까지 감수했다.
수많은 폭격들에도 불구하고 다에시가 건재한 지금, 점조직 형태의 특성 상 테러의 위협은 2016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유럽 사회의 보수화와 배타주의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른 수많은 비극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4. 메르스, 그 후.
23일, 정부는 공식적인 메르스 사태의 종결을 선언했다. 지난 5월부터 확산된 이래 사망자 38명, 감염자 186명이란 기록과 함께 7개월만의 일이다.
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 등 수없이 파생되었던 뉴스거리들을 제외하더라도 메르스는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발생한 사태로 인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의료체계의 총체적 난국이 드러났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수장까지 교체하는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엔 큰 변화가 없다. 우리 사회는 메르스로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의사들은 망설임 없이 진료하던 가운을 입은 채로 식사를 하러 나간다.
체계화 된 방역체계와 관리체계만 구축돼있어도 일어나지 않을 죽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무도 죽음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5. 성완종과 <내부자들>?
지난 4월 9일,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성완종 리스트는 정치권에 큰 파장을 남겼다. 당시 총리였던 이완구 전 총리가 직격탄을 맞았고, 홍준표 홍문종 유정복 서병수 김기춘 허태열 이병기 등 수많은 정치권 유력자들의 실명이 거론됐다. JTBC와 경향신문은 성완종 씨의 음성 녹취 파일과 관련 공방을 벌였고, 사회는 온통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그러나 12월 현재, 산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돈을 받았다는 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사무소에서 성완종을 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증언들만 활자화 돼 인터넷 지상을 떠돌 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의 말의 신빙성을 뒷받침해 줄 직접적인 증언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 맑은 사회를 우리 부장님이 만들어 주시고 꼭 좀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겼던 성완종씨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일지, 혹은 모든 것이 거짓 헤프닝으로 밝혀지면서 끝날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영화 <내부자들>의 중반이 섬뜩할 만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괜한 착각인걸까.
by. 9
*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연합뉴스, 뉴스1, 주간경향
** 새로 합류하게 된 필진 9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