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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쓰던 사물함을 비웠다. 나한테 이렇게 책이 많았었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 책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기자를 준비하던 친구 녀석이 나보다 먼저 자리를 비우면서 내게 맡겨둔 것이었다. 몇 권을 들춰보다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뉴스가 지겨운 기자-내러티브 탐사보도로 세상을 만나다>. 기자가 되기도 전에 벌써 뉴스가 지겨워졌나 싶어 몇 장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책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한겨레> 신문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안수찬 기자의 글이다. 그는 정말로 (우리나라) 뉴스가 지겨워진 기자였다. 특종과 속보, 오로지 스트레이트(사실 기반의 짧은 기사)를 좇는 우리나라의 보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내러티브’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다. 어쩌면 그가 기자 생활을 하는 내내 매만지던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형식인 내러티브로 기사를 쓴다는 건 탐사, 심층보도를 하겠다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기존 보도 관행을 거부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는 입사 초기부터 출입처에만 붙어서 보도 자료를 받아 적는 기사 작성 방식에 의문을 품었고, 긴 시간을 들여 심층보도를 할 수 없는 현실에 도전했다.  

 

안수찬 기자는 사회팀, 주간지 <한겨레21>과 다양한 자리를 거치면서 탐사보도에 도전했다. 이 책에는 그의 시도와 함께 했던 기자들,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담겨있다. 물론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보도 관행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데스크가 조각내어버린 기사들, 친정부화 되다 못해 정부의 글을 받아쓰게 된 방송, 신문 등, 이 책이 발행된 2013년보다 퇴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비판적 시각의 독자(시청자)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그와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싶어 이 글을 썼다. 언론, 기자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통찰력,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혼자서 모든 걸 해낼 수 없다. 특히 심층, 탐사보도의 영역에서 협업은 더 중요하다. 이야기의 끝에서 안 기자는 언론의 혁신이라는 화두를 같이 부여잡고 용맹정진할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p.280)

 

유능한 기자답게 그의 글은 흡입력이 있었다. 특히 그가 <한겨레21>에서 실제 노동자들의 삶을 체험하며 쓴 기사 「노동OTL」에 관해 설명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보이지 않는 가난”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12장의 도입은 다음과 같다.

 

그는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울 구로동 어느 쇼핑몰에 입점한 가게엔 아침 손님이 없었다. 20대 초반의 그는 조용하다 못해 괴괴한 식당에 코 흘리는 아이 둘을 안고 나와 패스트푸드로 아침을 먹였다.
아이는 어른을 한없이 약하게 만든다. 아빠는 억지로 졸음을 참고 있었다. 마주 앉은 나를 보는 눈이 자꾸 감겼다. “잠이 부족해요. 잠을 잤으면 좋겠어요.” 3살, 2살짜리 아이들은 으깬 감자튀김을 코 훌쩍이며 먹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결혼했다. 고교 시절 여자친구였던 아내는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근처 도넛 매장에 일하러 간다. 젊은 남편은 아침 8시에 일어나 두 아이를 깨워 먹이고 대충 씻기고 어린이집에 보낸다. 이어 오전 11시 아내가 일하는 도넛 매장에 출근한다. 부부 모두 계약직이다. 
오후 3시 아내가 퇴근한다.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들을 데려온다. 남편은 밤 11시까지 일한다. 옷장, 서랍장, 냉장고, 컴퓨터가 있는 지하 단칸방에 돌아와도 두 사람이 눈뜨고 마주하는 시간은 없다. “요즘 자꾸 싸우게 돼요. 서로 피곤하니까.” 반쯤 눈감은 채로 입가를 찡그리며 그가 말했다. (p.160)

 

이어 빈곤,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신랄하게 설명한다. 그들이 계속 빈곤을 맴도는 이유, 그 이유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관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리고 청춘들이 매달린다는 공무원 시험도 사실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씁쓸하지만 현상을 꿰뚫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가 말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너무나도 정확하고 신랄해서 참, 아팠다. 12장의 말미에서 안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이상한 표현이겠지만 그런 빈곤의 현장을 누비며 비로소 편안해졌다. 몸은 힘들었으나 마음은 평화를 찾았다. 기자 노릇을 해나갈 궁리가 드디어 생겼다. 왜 취재하는지, 무엇을 취재할지, 어떻게 보도할지 등이 분명해졌다. 나름의 (장삼이사의) 취재원과 (빈곤‧소외의 현장이라는) 출입처와 (심층 내러티브라는 기사 장르를 곁에 두게 됐다. (p.176)

 

처음 취업에 도전하면서 나는 몇 개월 공부만으로도 무난히 취업을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이십 몇 년간 열심히 내 삶을 개척하며 살아온 것도 나름의 공부였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그 시간들은 참 귀한 것들이지만, 몇 개월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오만이고 자만이었다. 20년 넘도록 현직에서 활동한 기자의 고백은 여전히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마치며”라는 마지막 글을 쓰면서 이 책의 마지막 문단으로 이것을 선택했다.

 

“공부를 할 때는 그 나중의 쓰임새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네.” 공부도 그렇고 취재‧보도의 기자 노동도 그렇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파묻혀야 하는 것이다. 돌아 나올 일은 생각 말고 심연으로 계속 자맥질해야 하는 것이다. (pp.282-283)

 

그렇다. 나에게도 자맥질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의 선배가 자신의 삶을 여전히 자맥질이 필요한 것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나 역시도 겸손하게 내 삶을 깊은 세계로 나아가겠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고백하고자 한다.

 

- by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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