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category 2015. 12. 4. 16:38


1.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에서 드러나듯, 르낭은 프로이센의 군국주의가 독일 통일 및 유럽의 발전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독일이 통일된 이후로 프로이센은 소멸되어야 (독일로 흡수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선례로 이탈리아의 통일 과정을 제시했다.


물론 프로이센에 대한 르낭의 모호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문일 것이다. 1870년 이전까지 그는 독일의 지성, 프로이센의 남성성을 동경하는 지식인 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의 상당부분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끼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는 전쟁 발발 이후 프로이센을 비난할 명분을 명백히 내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이센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는 여기서 찾아야한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도, 르낭의 주장에는 철학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를테면,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가리키며 지속되는 일당독재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 베트남 전쟁 당시, 곳곳에 민간인 틈에 숨은 베트콩들을 죽이기 위해 ‘불가피하게’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자유진영 국가들의 변명은 타당한가?



2. 


르낭은 인종주의자였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인종은 평등하지 않다. 흑인은 백인이 원하고 그들이 생각한 위대한 일들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졌다.”(109쪽) 그에 따르면 인종은 ‘열등한 유색인종에서부터 셈족, 그리고 우등한 아리아족’으로 나뉜다. 


그런데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는 인종학을 매우 좋아합니다. 인종학은 보기 드문 이점을 가지고 있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72쪽)


달리 말해, 그는 스스로 ‘과학적, 혹은 문화적’ 인종주의자로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분이 의미 있을까? ‘과학/문화적 인종주의’와 ‘정치적 인종주의’의 구별이 칼로 베듯 자연스러울까. 더 나아가 과학/문화과 정치는 오히려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닐까? ‘과학의 가치중립성’ 문제도 이와 맞닿아있다.


예를 들어, 흑인을 혐오하는 백인 정치가가 ‘우리는 차별에 반대합니다.’ 따위의 슬로건을 들고 선거운동에 나서는 모습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할지라도) 진정성을 읽을 수 있을까. 역자는 르낭이 ‘인종 없는 인종주의(신인종주의)’의 원류라는 지적을 하면서 ‘아이러니’(117쪽)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아이러니가 아니라, 예정된 수순이었을 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듯 국회, 법,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등 거시적인 이미지들이 정치의 전부일까. 들뢰즈는 ‘미시’ 정치학을 강조했다. 예컨대 정치는 아주 미시적인 단위에서부터/혹은 무의식의 층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를테면 마릴린 먼로의 몸매(이런 미시적 단위를 들뢰즈는 ‘강도intensity’라고 불렀다.)에서부터. 그녀의 풍만한 가슴, 엉덩이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은 곧 당대 여성성의 상징이었고, 여성에 대한 인식 그 자체였다. 그런 맥락에서 모든 것은 정치다. <국제시장>(윤제균, 2014)이 결코 ‘비’정치적인 영화가 아닌 까닭도 그 때문이다. (비)의도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정치는 어디에나 ‘구조적으로’, 비유컨대 유비쿼터스처럼 존재한다.  



3. 


민족에 대한 두 가지 전통적 학설. 첫째, 독일식 개념으로서, 인종적 경향을 강조하는 민족주의가 있다. 민족의 핵심은 공동의 문화, 공동의 가치 등을 소유한 원초적 유대관계다. 민족은 영속적이다. 둘째, 프랑스식 개념으로서 민족주의가 있다. 민족은 원초적이고 불변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산물로서 ‘계약적 형태’를 띤다. 민족은 이데올로기다.


르낭은 전자를 부정하고 후자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독일식 민족주의와 프랑스식 민족주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르낭은 (문화적) 인종주의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민족으로서의 유대감’을 강조한 그가 과연 프랑스의 ‘열등한’ 흑인들에게 유대감을 느꼈을까? 정말 민족주의라는 것이 사회적 계약일 뿐이라면, 르낭은 아프리카, 혹은 아시아인들과 하나의 민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왠지 모를 어설픔, 혹은 다급함. 이는 어쩌면 그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이 관심 밖의 대상이라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지식인이자 학자로서 그가 정말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프랑스, 혹은 아리아인이 아니라, 유럽을 중심으로 꽃피운 학문적 풍토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정말 두려워했던 건 전쟁으로 유럽의 학문적 체계가 한순간에 황폐화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에게 민족이란, 전쟁을 막기 위한 방파제쯤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4.


칸트에 비하면 르낭은 확실히 나이브하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국제적인 연합 기구(실제 국제연합UN의 사상적 모태이기도 하다)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르낭도 비록 유럽 대륙에 국한되긴 하지만, ‘유럽 합중국’을 제시했다.


하지만 둘의 현실인식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르낭의 인식은 ‘공상’이라면, 칸트의 인식이 ‘비판’이었다. 르낭이 말한 ‘유럽 합중국’은 공상적 대안에 불과하다. 거기엔 냉철한 현실인식보다 희망적 바람이 가득하다. 르낭은 단지 전쟁을 끝내고 하루빨리 유럽의 평화가 도래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기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유럽의 학문을 사랑했던 점도 다소 성급하고 가벼운 제안의 한 원인이리라. 


반면, 칸트가 국제적인 연합 기구를 모색한 것은 ‘그래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칸트는 역설적이게도 폭력이 평화적 상태를 추동한다고 봤다. 달리 말해, 평화는 폭력과 전쟁의 귀결이다. 추측건대, 그가 말한 ‘영구’평화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건 차라리 끊임없는 폭력과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달리 말해 영구평화란 폭력성의 와중에 ‘오래 지속되는’ 평화를 의미하지, 결코 폭력이 영원히 제거된 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고백하건대 이런 오해 때문에 나는 한동안 칸트를 조롱하고 다녔다.) 실제로 1차 대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창설되었는데, 이 국제기구의 기능이 강화된 건 두 번째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뒤였다. 


끝나지 않는 중동 분쟁, 이슬람 테러, 경색된 남북관계, 중국 및 러시아의 강대국화와 미국 및 일본의 동맹 강화. 전 세계적으로 갈등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현시점에 평화는 어디서, 어떻게 올 것인가. 분명한 건 가라타니 고진이 그랬듯, 전례를 좇아 세 번째 세계대전이 터질 때까지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악을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약을 위해 굳이 바닥까지 찍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by 벼


* 사진출처: 

알라딘

http://www.counter-currents.com/wp-content/uploads/2015/11/Renan.jp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