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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미움받을 용기>

근래 읽었던 자기계발서 중에서 가장 남는 게 많았던 책이다. 물론 책을 읽기 전 품었던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용기를 가질 때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은 참 시원하다. 그러나 책에서 청년으로 나오는 인물이 말한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구석도 있다.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겐 달리 방법이 없다는 말처럼 들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좌우지간 책은 청년과 철학자의 문답에 의해 전개되는 구조다. 주요 내용은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우리가 주류 심리학자로 생각하는 프로이트나 융이 아닌 아들러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책이 지루하지 않았다. 분명 자기계발서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엔 제3의 심리학에 대해 공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원인론을 목적론으로

 

아들러 심리학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프로이트 심리학에 대한 부정에 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주요 개념인 트라우마를 부정해버린다. 어떤 현상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는 원인론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원인론에 무게를 두면 사람은 변할 수 없다. 현재의 실패를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찾아내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인간은 과거나 감정에 지배받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인론에서 목적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이다. 언뜻 보면 염세주의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철학자에 따르면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인간을 기계처럼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프로이트의 원인론이다. 프로이트는 주어진 것에 주목한 ‘소유의 심리학’을 강조했지만 아들러는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주목하며 ‘사용의 심리학’을 펼쳐나갔다. 결국 철학자는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묻는다. 생활양식을 바꾸면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며 더 행복한 상태로 변할 수 있다는 아들러 심리학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아들러의 말처럼 개인이 변하기 위해 주어진 것을 다르게 활용하려고 하는 데 만일 국가나 사회가 그것을 방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경우에도 ‘헬조선’에서 원인을 찾지 말고, 국가나 사회를 고쳐나가는 데 힘을 다해야 하는 걸까? 공적인 사안에 대한 아들러의 철학이 궁금해졌다(책에는 주로 인간관계처럼 사적인 사안에 대한 아들러의 철학이 소개된다).

 

인간관계에 매몰되지 마라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맞다. 그래서 우리는 친한 친구와의 설전 후에 후회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니 결국 인간관계에서 풀라는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들러는 오히려 자립할 것을 요구한다. 타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과제를 수행할 것을 주문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열등감을 설명한다. 열등감은 열등성과 다르다.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해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란다. 가령 나는 말이 많은 편인데 그래서 항상 가벼운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는 온전히 나의 해석에서 비롯된다. 사실은 오직 말이 많은 것뿐이다. 말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물론 아들러는 열등감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열등감에서 벗어나려 하는 인간의 노력이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며 열등감을 인정했다.

 

오히려 문제는 콤플렉스다. 아들러는 열등 콤플렉스와 우월 콤플렉스를 설명한다. 콤플렉스는 도착적인 심리 상태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다. 별로 인과관계도 없는데 그걸 마치 중대한 인과관계처럼 받아들여버리는 것이 열등 콤플렉스다. 예를 들어, 현재 취업을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부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물론 한국사회에는 부모 덕에 취업하는 일부 자식들이 있기는 하다. 분명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이 취업 못하는 사람이 그것을 자신의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것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취업이 안 되는 건 대개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취업할 의지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우월 콤플렉스는 언뜻 보면 열등 콤플렉스에 대척점에 있는 개념 같아 보인다. 하지만 우월 콤플렉스의 역시 우월감이 아닌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우월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갖고 있는 권위에 기대어 자신을 포장한다. 이는 ‘거짓 우월성’의 전형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권위나 명예, 부에 기대는 것이다. 아들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만약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열등감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정말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충분히 부족함이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아들러 심리학은 “타인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이 아닌 자신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이다. 열등감이 아닌 열등 콤플렉스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청년들에게 철학자는 말한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뤄서는 안 돼. 설령 끝내 가위로 끊어내더라도 일단은 마주 볼 것. 가장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상황. ‘이대로’에 멈춰 서 있는 것이라네.”

 

용기를 내기 위해서라면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철학자는 이제 책 제목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전한다. 그것은 바로 ‘미움 받을 용기’다. 더 정확하게는 인정욕구를 거스르라는 것이다. 즉,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 자체를 부정하라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만 집착하면 결국 자신의 인생은 없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신경 쓰고 산다는 청년의 말에 철학자는 답한다. “신이 보고 있으므로 선행을 쌓는다”라는 생각은 사실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악행이 허용된다”라는 허무주의와 동을 맞대고 있는 사상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라는 철학자의 단순한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미움 받을 용기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철학자는 명쾌하게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는 것이다. 미움 받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결국 미움을 선택하는 건 타인의 과제다. 철학자는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을 통해 과제의 분리를 강조한다. 결국 나는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타인의 과제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아들러 심리학의 가르침이다.

 

철학자는 덧붙여 말한다. 사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라고. 자기 인생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유는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즉,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 어차피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것은 나의 과제고,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는 타인의 과제다. 참 시원한 말이다.


'공동체 감각'을 향하는 아들러 심리학

 

아들러 심리학은 개인심리학이라고도 불린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말처럼 아들러 심리학은 주체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들러 심리학이 오직 개인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출발선은 개인이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공동체 감각’을 향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는 것에서 공동체 감각은 시작된다.

 

공동체 감각은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다.” 공동체는 작게는 ‘나’와 ‘너’, 넓게는 우주를 가리킨다. 이 때문에 아들러 심리학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범위가 너무 모호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나는 이를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한 공동체에서 상처 받아도 다른 공동체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게 인간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범위를 한없이 늘려놓은 게 아닐까. 예를 들어 한 모임에서 배척당한 사람에게 또 다른 모임의 가능성이 없다면 어쩌면 그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때 다른 모임에 들어갈 수 있고 얼마든지 호의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과제를 분리하고, 공동체 감각을 향하라는 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지향점이다. 단, 공동체 감각을 갖되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자유가 있다면 공동체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은 사라질 수 있다. 책에도 나오듯 사실 타인은 나의 얼굴에 별 관심이 없다. 이리저리 얼굴을 뜯어보는 사람은 결국 거울을 든 자신일 뿐이다.

책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대목은 칭찬과 야단에 대한 아들러의 견해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당근과 채찍이라면 당근을 선택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당근과 채찍 모두를 부정한다. 칭찬도 야단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칭찬이나 야단이나 결국 수직관계에서 남을 평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할 땐 수평관계에서 대하라는 것이다. 철학자에 따르면 누군가 ‘잘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처음에는 유쾌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썩 유쾌하지 않다. 왜냐하면 ‘잘했다’라고 말한 사람이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나를 평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쾌하다면 은연중에 그 사람이 자신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우선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자기수용) → 타자를 전적으로 신뢰한다(타자신뢰) →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해 남을 돕는다(타자공헌) → 그렇게 되면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며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자기수용)는 선순환 구조다. 단 여기서 두 번째 단계인 타자신뢰는 신용과 구분된다. 조건이나 담보 없이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배신당한다면? 집착하지 말고 관계를 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아들러의 조언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탈을 쓴 철학서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는 수준을 넘어 끊임없이 메모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깨우침을 얻었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사진 출처: 인플루엔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