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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삐딱하게 영화보기

끝내 털어내지 못할 기억, <먼지아이>

먼지와 기억은 닮았다. 털어내려 해도 완전히 털어지지 않는다.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먼지아이>(2009)는 털어버려야 할 것들을 끝내 털어내지 못하는 개인(혹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이 연출의도에서 밝히듯 고독은 근심과 고민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쌓인 먼지가 산발적으로 일어나듯 발생한다.

<먼지아이>는 2009년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은 본인의 영화 <박쥐> DVD의 Director’s choice로 이 영화를 담아내기도 했다. 영화를 연출한 정유미 감독은 채색 없이 연필만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먼지아이> 이후에도 <수학시험>(2010), <연애놀이>(2012) 같은 작품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해 내놓았다.

 

<먼지아이>는 발견과 제거가 주를 이루는 영화다. 마치 <톰과 제리>처럼 주인공과 먼지아이는 쫓고 쫓긴다. 주인공과 먼지아이는 한집에 산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존재를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먼지아이는 치워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발견하는 즉시 털고, 닦고, 씻어 버리려 한다. 그런데 그건 입장을 바꿔도 마찬가지다. 먼지아이에게 주인공은 피해야 할 대상이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대상에게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회피뿐이다. 그래서 털고, 닦고, 씻어 버리는 주인공의 행위에 맞서 고개를 돌리거나 숨어 버리는 방식으로 외면한다.

 

<먼지아이>와 <톰과 제리>의 공통점은 반복과 변주다. 쫓고 쫓기는 장면은 장소와 캐릭터의 표정만 바뀔 뿐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그러나 두 작품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소멸과 생성이다. 톰은 제리에게 가끔 잡히더라도 풀려나는 반면, 먼지아이는 주인공에게 잡힌 뒤 어김없이 제거된다. 그러나 먼지아이는 다른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다시금 생성된다. 소름 돋지 않는가? 분명히 잡아서 확실하게 처리했는데 다시 눈앞에 나타난다. 마치 유령처럼. 또 하나의 차이점은 의도성이다. 톰이 제리를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주인공은 먼지아이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냥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먼지아이를 발견하고 제거할 뿐이다. 그래서 잡지 못해 안달이 난 톰보다 무표정한 얼굴의 주인공이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본질적인 궁금증 한 가지. 주인공은 어째서 먼지아이를 발견하는 즉시 제거하려는 것인가?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그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제거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아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주인공에게 먼지아이는 어떤 존재일까? 그 답은 먼지아이의 겉모습에서 희미하게 찾아낼 수 있을 듯하다. 먼지아이는 등장할 때마다 항상 벌거벗은 주인공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벌거벗은 육체를 해석하는 것이 먼지아이를 제거 대상으로 여기는 주인공의 심리를 읽어낼 유일한 실마리다.

벌거벗은 몸은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낸다. 주인공에게 먼지아이는 부끄러운 기억을 환기하는 일종의 매개체다. 그것은 과거의 ‘나’일 수도 있고, 다시는 맺고 싶지 않은 인간관계일 수도 있으며, ‘이불 킥’을 시전하게 만드는 창피한 기억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먼지아이가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머리카락을 이불 삼아 숨으려 해도 주인공은 그를 구태여 끄집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꼼꼼하게 청소해도 완전하게 먼지를 털지 못하듯, 기억은 억지로 끄집어내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어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제거를 담보하지 못한다. 분명히 지워버렸다고 생각한 옛 연인이 특정 장소에 가면 갑자기 머릿속에 튀어나오는 과정처럼 기억은 먼지처럼 우리 뇌의 군데군데에 쌓여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먼지아이를 차마 제거하지 못한다. 방청소, 설거지, 샤워할 때 제거대상이었던 먼지아이는 식사할 때 잠시나마 그 위태로운 지위에서 벗어나 주인공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 잊고 싶은 기억은 억지로 잊으려 할수록 도리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해당 기억을 그대로 인정한 채 공존하는 것이 나쁜 기억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다. 밥을 다 먹은 주인공이 전처럼 먼지아이를 설거지해버렸을까? 설령 그렇더라도 주인공은 다음  번엔 먼지아이와 마주치더라도 그에 대한 불쾌감이 전보다 한결 덜해지지 않았을까.

 

by 락

 

 

*자료 출처: 다음 영화 및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