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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 <그랑블루>(1988)

category 영화/삐딱하게 영화보기 2015. 10. 20. 11:07

키워드: 아버지, 우정, 경쟁, 바다, 돌고래, 사랑?

1. 음악과 카메라의 독특함

 

음악이 굉장히 두드러진다. 뤽 베송과의 찰떡궁합 에릭 세라 음악감독.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꼼꼼히 살피면서 음악을 작곡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흐름과 발맞추는 음악. 초반 가벼운 분위기에는 끊임없이 경쾌하고, 산뜻한 노래가 흐르다가 후반부 진지해질수록 음악의 비중은 줄어듦. 그렇다고 음악 풍 자체가 바뀌진 않는다.

거기다 카메라도 계속해서 로우앵글. 이물감? 로우앵글의 기본적인 속성은 대상을 위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하지만 가벼운 분위기(음악을 포함하여) 때문에, 대상이 위압적으로 보이진 않고 반대로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듯. 돈키호테 같달까.

 

2. 헐리우드

 

70년대 프랑스에는 자타공인 두 명의 영화광이 있었다. 한 명은 특히 프랑스의 예술영화들에 심취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헐리우드 영화들에 빠져있었다. 전자는 <나쁜 피>(1986)와 <퐁네프의 연인들>(1991)의 레오 카락스였고, 후자가 바로 뤽 베송이었다. 재밌는 건 이번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두 감독 모두 참석했다는 것.

 

어쨌든 <그랑 블루>에서는 헐리우드식 스타일에 대한 지향이 드러났다. 경쾌하고 과장된 진행. 특히 연애문제와 엔조(장 르노)-로베르토(마크 두레)의 관계에 있어선. 그런 의미에서 조안나(로잔나 아퀘트)와 로베르토의 위치는 중요. 어쩌면 영화에서 주변부에 머무르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헐리우드를 지향했던 뤽 베송에게 있어선 핵심적인 역할들. 물론 서사는 영화의 두 축, 엔조와 자크(장 자크-바)를 중심으로 이뤄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주변부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프랑스 영화와 헐리우드, 예술 영화와 대중상업 영화 사이에서 고심하는 뤽 베송?

 

3. 엔조와 자크

 

엔조에 대한 자크의 집착은 어느 정도 이해 가능. 그 힌트는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서 드러남.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시퀀스들이 모두 그리스라는 것은 의미심장. 그리스의 첫 시퀀스에서 아버지의 죽음.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던 자크. 그리고 그걸 보며 계속 자크를 부르짖었던 엔조. 어쩌면 자크에게 엔조는 잃어버린 아버지를 대리하는 존재. 자크와 엔조가 재회한 이후 물에 빠진 아버지를 바라보는 엔조의 플래시백 시점 쇼트. 그리고 이어지는 자크의 죽음. 이후 엔조가 따라 잠수하는 건 첫 번째 시퀀스와 때놓을 수 없을 듯.

 

그렇지만 엔조는? 엔조는 왜 자크에게 그렇게 집착하는가. 어쩌면 세계 1위 자크는 정말로 자기의 경쟁자를 원했을 듯. 어느 정도 엔조에 대한 아버지의 이미지(보살핌과 거리감)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다. 이 영화의 기묘한 긴장은 어쩌면 엔조와 자크의 어긋난 관계 때문일지도.

 

4. 징검다리 서사

 

과감한 생략이 두드러진다. 종종 이야기의 흐름일 끊길 정도로. 특히 조안나의 임신 전후의 흐름에는 갸우뚱. 경쾌한 진행을 위한 다소 무리한 결정? 혹은 편집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생략?

 

5. 장 르노의 재발견

 

장 르노는 <레옹>(1994)에서 본 게 유일했는데, 당시 실망감이 컸음. 뭐랄까 연기 못하는 사람이 연기할 수 있는 최선의 역이구나? 정도. 하지만 <그랑 블루>에서의 장 르노는 전혀 달랐다. 연기가 180도 달랐다는 말은 아님. 오히려 연기는 비슷했음.(말이 좀 많다는 점 빼곤) 그러니까 단 한 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장 르노의 연기가 두 번 반복 되니, 어쩌면 (다소 어색한 듯. 하지만 진실성이 묻어나는) 그의 연기 철학 자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랄까.

 

 

by 벼

 

*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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