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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소년, 성인, 전쟁, 기억, 복수, 꿈


1. <이반>과 <이반의 어린 시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장편 데뷔작이자 베니스 그랑프리를 탄 <이반의 어린 시절>은 블라디미르 보고몰로프의 소설 <이반>을 각색한 작품. 그렇다면 원작의 제목에 굳이 ‘어린 시절’이라는 제목을 덧붙인 까닭은?

 

<이반>과 달리 <이반의 어린 시절>은 분명히 과거 시점을 가리킴. 그러니까 영화에서 진행되는 현재는 이반(니콜라이 부릴야예프)의 ‘어린 시절’ 이후일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그렇다면 이반의 어린 시절은 무엇인가?’라는 혼란에 빠지게 됨. 왜냐하면 12살 이반은 겉보기엔 이미 어리기 때문. 12살 이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곧 어리지 않은 현재 이반의 성숙함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 말하자면 영화는 제목의 아이러니를 통해 이반의 성숙함을 극적으로 강조.

 

 

2. 세 번의 꿈과, 이반의 ‘어린 시절’

 

영화의 현재 공간은 독일과 소련이 대치하고 있는 전선. 이런 장소, 분위기와 어긋나는 씬이 총 네 번 나옴. 앞의 세 번(나비가 되는 이반, 우물 속 이반, 그리고 동생과 마차 짐칸에 올라탄 이반)은 분명히 이반의 꿈. (전)후로 잠에서 깨어나는 이반의 모습이나 그런 이반을 바라보는 홀린(발렌티 주브코프) 혹은 갈트세프(예브게니 자리코프)의 모습이 이어짐.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씬이기도 한 네 번째 씬 앞에는 그게 이반의 꿈이라는 어떠한 단서도 없음. 오히려 그 앞 씬에서 이반은 처형당한 기록 속에서만 등장함. 그러니까 이반은 이미 죽어 있음. 그러므로 마지막 씬은 이반이 꿈이 아니라 이반의 과거 그 자체이자, 말 그대로 이반의 ‘어린 시절’.

 

세 씬과 마지막 씬의 차이는 그것들이 놓인 맥락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드러남. 마지막 씬부터. 마지막 씬은 앞선 세 씬들의 총체적 변주. 말하자면 앞에서 나왔던 인물(엄마, 여동생), 사물(양동이), 제스처(민소매를 입고 팔을 들어 땀을 닦는 엄마) 등이 반복됨. 그렇지만 마지막 씬에선 앞선 씬들과는 달리 표현(카메라, 편집)이 과잉되어있지 않고, 반전의 순간이 없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함.

 

하지만 처음 세 씬에서 카메라는 과장되고, 편집은 비현실적이고, 화기애애한 초반과는 달리 후반부에 급작스러운 반전의 순간이 있으며, 급속도로 공포의 분위기를 띰.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영화의 진행 순서와는 달리, 결코 마지막 씬과 앞선 씬들 사이의 포개짐에서 먼저 아래 놓여있는 건 후자가 아니라 전자.

 

이는 또한 마지막 씬이 꿈이 아니라 꿈의 질료로서 현실이라는 방증이기도 함. 이반은 그의 꿈에서 그토록 그리운 엄마(이르마 라우쉬), 혹은 동생의 이미지를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데, 결국 기억의 온전치 못함과 그들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그 이미지는 왜곡되고 훼손됨. 마지막 씬이 결코 이반의 기억, 혹은 꿈이 아닌 까닭이기도. 문제를 일반화해보면, 우리는 고통을 온전히 재현, 혹은 기억할 수 있는가?

 

3. 홀린과 갈트세프

 

어른으로서 둘은 어떤 역할인가. 일면 둘은 찌질해 보이기도 함. 마샤(발렌티나 말리아비나)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 사실상 둘의 관계에서 마샤를 빼놓을 순 없음. 중위 갈트세프는 상사인 대위 홀린의 속물적인 모습을 질타하기도 하고, 과감하게 대들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마샤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음. 둘이 미묘하게 대치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마샤와의 관계이라 그럴지도. 여튼 막상 멋있는 척 다 하던 갈트세프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갈팡질팡, 속물적인 모습을 보임. ‘어린’ 이반과 ‘어른’ 홀린, 갈트세프의 역설적 관계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by 벼

 

*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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