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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뺄셈의 역사가 올바른 교과서인가?

하다하다 이제는 역사까지 마이너스다. 정부가 국정 교과서 카드를 꺼내들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역사는 더 연구해야 할 법도 한데 그냥 빼버리겠단다. 학생들에게 생생한 역사를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균형이라는 탈을 쓴 무미건조한 역사를 가르칠 요량이다. 이념적 편향성을 이유로 ‘올바른 교과서’를 만든다는데 역사를 바르고 틀리다는 개념으로 구분하려는 발상 자체는 가히 창조적이라 할 만 하다.

문제는 바르고 틀린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90%의 역사학자들이 현행 검정 교과서 체제 유지를 바라는데 정부는 방침을 바꿨다. 10%의 역사학자들로 역사를 써내가겠다는 의지인가? 집필진 구성에서 올바른 과정을 거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다른 한계는 교과서 집필 기간이다. 1년 6개월 만에 새로운 기준의 통합 교과서를 만든다는데 통합이 아니라 애매한 것들은 전부 빼버린 마이너스 교과서가 될까 우려스럽다. 논란이 되는 부분을 제외하는 방식의 뺄셈의 역사 속에서 덧셈의 상상력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현행 역사 교과서에 편향성이 있다고 지적한 부분은 6·25 전쟁에 남측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로 쓴 부분과 북한의 주체사상과 관련해 북한 서적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부분이다. 전자는 인정하더라도 후자는 좀 황당하다. 주체사상을 따르자고 선동한 것도 아니고, 주체사상이 어떤 것인지 단순히 기술한 것을 두고 확대해석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다. 북한이 왜 그렇게 꽉 막힌 사회가 되어버렸는지, 북한주민들이 무엇 때문에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지 설명하는 데 있어서 주체사상은 필수 요소다. 어느 정신 나간 교사가 그 부분을 설명하면서 북한을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하겠나?

백번 양보해 지적한 부분들을 모두 수정해야 한다고 치자. 그러면 그 부분만 짚어내서 고치면 그만이다. 교과서에 오류가 있다면 검정 시스템에 의해 제대로 걸러내면 되지, 그것이 굳이 국정 교과서를 새로 집필할 핵심 명분이 되지는 못한다. 혹여 다른 속셈을 갖고 교과서에 손을 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벌써부터 국정교과서를 집필 작업을 총괄할 국사편찬위원장이 난데없이 ‘건국’을 강조하고, 교과서 집필진에 역사학자 외에 정치·경제 전문가를 참여시킨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로 나올 교과서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황당한 건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어떠한 협의나 토론도 없이 청와대와 여당이 마음대로 결정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한 나라의 역사를 건드릴 요량이라면 그 나라의 주인, 국민에게 그 의사를 물어보는 게 예의다. 국정 교과서는 난데없이 튀어나왔다. 가뜩이나 경기도 어려운데 왜 매번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지 의문이다. 야당의 토론회 제안에도 여당은 “정치 영역이 아니다”라면서 발을 뺐다. 그런데 이 말은 모순적이다. 애당초 한국사 국정화 이야기를 꺼낸 건 청와대와 여당이다. 자신들이 온갖 정치화 작업 다 해놓고 정치 영역이 아니라고 하니 이 정도면 심각한 건망증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갑작스러운 국정 교과서 추진 발표는 우리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웃나라 일본은 지금의 우리 상황을 보고 미소 지을 것이다. 그들이 역사 왜곡을 할 때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던 한국이 일본도 하지 않는 국정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일부 역사를 빼버리고 수정하는 꼴이니 말이다. 이번 국정교과서 결정은 일본의 역사 수정 시도에 기름을 붓는 꼴이나 다름없다.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된다면 우리가 그들을 두고 손가락질할 수나 있을까? 부정의 역사관을 지우는 시도는 이제껏 일본이나 하는 비열한 행동이었는데 그걸 굳이 하겠다고 나서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by 락

 

*사진 출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