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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주 안에 갇힌 청년세대

category 이슈/사회 2015. 9. 22. 16:52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영화 <사도>에서 울분에 찬 사도세자(유아인 분)가 영조에게 감정을 드러내며 내뱉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심히 공감 가는 말이다. 아마도 청년들은 최근의 노동개혁 이슈를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청년들을 생각했소?”

최근 노사정위원회의 노동개혁안이 통과됐다. 내년부터 정년이 연장되는 만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취업규칙 개정 조건을 완화시켜 일반해고를 쉽게 하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런데 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정부가 근거로 삼은 논리가 청년실업이다. 십시일반으로 기성세대가 양보해야만 청년들의 구직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의 입장에서 감읍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방향이 뭔가 잘못됐다. 청년들이 바라는 건 안정된 직장이다. 임금피크제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해고가 쉬워지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할 청년이 있을까? 물론 저성과자에 한해서만 기업이 해고할 수 있고, 해고자에게 몇 번의 기회를 준다고는 하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경쟁에서 뒤처지면 도태되는 건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기성세대나 청년세대나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바란다. 일을 대충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직장을 바란다기보다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 억울하게 도태되는 직장이 싫어 정규직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사정의 노동개혁은 자칫 잘못하면 뒤틀린 자식사랑이 낳은 영조의 ‘뒤주’가 될지 모른다. 청년들 중에 일반해고가 쉽게 되는 현실을 환영할 사람이 있을까. 청춘들을 위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말은 “다 너를 위해 그런 것이었다”는 영조의 허망한 말로 오버랩된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것도 결국은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왕(국가)을 위한 것 아니었나.

 

대부분의 언론은 독일식 노동개혁인 하르츠 개혁을 한국이 가야할 길로 제시한다. 하르츠 개혁을 통해 독일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났고, 실업률을 낮췄으며, 독일 경제는 다시금 성장세로 돌아섰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르츠 개혁은 성공한 노동개혁이 맞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하르츠 개혁을 통해 독일의 소득 불평등은 더 악화됐다. 실업급여가 줄어듦과 동시에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서 독일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의 일자리도 받아들이게 됐고, 그 결과로 실업률이 낮아진 측면이 있다.

 

다짜고짜 한국식 노동개혁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가 정말 청년들을 위한 대책을 고려한다면 정부의 관점으로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내세울 게 아니라 청년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직접 물어보고 답을 찾으라는 것이다. 100여 차례 노사정위원회에서 회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안에 과연 청년의 목소리가 투영됐는지 의문이다. 바야흐로 청년백수 100만 명 시대다. N포 세대 청년들은 답답한 뒤주가 아니라 숨통을 트여줄 물 한 모금을 원한다.

 

*사진 출처: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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