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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category 이슈/사회 2015. 9. 12. 13:25

한반도엔 두 조선이 있다. 지독한 독재세습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는 북조선과 청춘들의 포기로 유지되는 ‘헬조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헬조선은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나오지 않았던 말이다. 그렇다면 그때보다 현재 한국의 경제지표가 더 좋지 않은가? 그렇지는 않다. 당시와 비교하면 경제성장률이나 경상수지는 많이 나아졌다. 그렇다면 헬조선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헬조선은 2030세대의 한숨에서 출발한다. 최근 한 대학 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20~30대의 절반이 “대한민국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50~60대의 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헬조선의 거주자는 결국 기성세대가 아닌 청년세대다.

청년세대에게 한국이 헬조선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단어의 결합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헬(hell)’이다. 지옥은 고통에서 오는 게 아니라 희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찾아온다.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곳이 청춘들의 헬조선이다. 여기에 취업, 인간간계, 집까지 추가로 포기해야 한다면 기존의 지옥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염라대왕의 구제 가능성마저 사라져버린 생지옥처럼 말이다.

 

다음은 ‘조선’이다. 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이 나라 젊은이들은 부정하는가? 그것은 조선이 갖는 봉건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대한민국과 구별되는 조선의 가장 큰 차별점은 신분제와 공공연한 세습에 있다. ‘날 때부터 금수저’라는 말이 있듯 헬조선에선 세습이 노골적으로 이뤄진다. 재벌의 세습은 마치 처음부터 당연한 일이었던 양 취급된다. 얼마 전 일어난 한 기업의 상속 분쟁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건 누가 왕좌를 차지하느냐였지, 그 정당성이 아니었다. 한국 언론 대부분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북한주민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걸 비판하면서도 정작 대기업 재벌의 세습 문제에는 크게 문제 제기하지 않고, 때로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이 회피하고 싶은 모순이다.

 

헬조선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방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눠진다. 헬조선의 ‘헬’을 먼저 떼어 버리거나 ‘조선’을 한국으로 바꾸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헬을 떼기 위해선 절망에서 청년들을 구하는 게 아니라 청년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의 전제조건은 결국 경제력이다. 임금피크제든 창조경제든 일단 청년에게 돈을 쥐어줘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청년을 볼모로 기성세대의 돈을 정부·기업에서 가져가는 시나리오다. 그렇게 된다면 헬조선의 헬은 영원히 지속될지 모른다.

 

헬을 떼기가 부담스럽다면 조선이라도 한국으로 바꿔 ‘헬한국’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방법은 역시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치는 데에서 출발한다. 기업의 부당한 세습 고리를 끊어버리고 비정상적인 출자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권력의 세습이든 자본의 세습이든 그 부당함의 본질은 같다. 북조선의 정치체제를 온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헬조선은 적어도 헬한국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헬조선으로 남고 싶다면? 남은 건 당연히 몰락의 길이다. 과거 조선이 고리타분한 쇄국정책만을 고수하다가 일제의 농간에 나라를 빼앗겼듯이 말이다. 변하지 않는 한 헬조선이든 북조선이든 한반도에 오래 남지 못한다.

 

*사진 출처: 리틀빅픽처스

 

by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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