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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회

세월호 농성장 앞 호국음악회, 충무공이 통곡할 일이다

오늘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또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4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동시에 해군 창설 70주년이라고 한다. 분명히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날이고, 즐겁게 맞이해야 할 날이다. 그런데 그게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라면? 고개를 갸웃할 일이다. 국가적 재난으로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 앞에서 ‘호국’을 외치며 음악회를 여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어제(27일) 광화문의 풍경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오늘 있을 나라사랑 호국음악회를 분주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순신 동상을 기준으로 앞에는 비통한 표정의 사람들이 뒤에는 오늘 있을 공연을 기대하는 표정의 사람들이 보였다.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행사를 여는 것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는 건 아니다. 단지 왜 하필 광화문에서 행사를 진행하려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물론 이순신 동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세월호 피해 가족들이 광화문에 머무르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해군은 그에 개의치 않고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호국을 말하기 전에 애민을 실천하라

 

세월호 구조 과정에서 가장 큰 미숙함을 보인 건 해경이었다. 그 때문에 해경은 해체돼 버렸다. 해군 역시 구조 과정에서 실수를 범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도착한 해군 해난구조대는 잠수장비를 휴대하지 않아 구조작업에 제때 투입되지 못했다. 그뿐인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직 해군참모총장의 방산비리(통영함 납품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호국음악회가 조촐하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해군이 참사 피해자들 앞에서 군악대와 의장대, 합창단 및 무용단을 이끌고 공연을 열 계획이다. 유명 가수와 성악가도 온단다. 아픈 사람들 앞에서 시끌벅적한 군가를 틀고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설령 호국음악회를 관람 온 사람도 세월호 농성장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라도 행사를 마냥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국가와 국민의 사랑 역시 주고받기다. 국민을 소홀히 하면서 왜 국가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강요하는 건 순 억지다. 왜 사랑해주지 않느냐며 앙탈을 부리는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다(솔직히 요즘 대다수의 어린아이들도 무턱대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는다). 스스로 잘못한 일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생일을 챙겨달라는 얌체 이성친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충무공의 충이 가리키는 것

 

“장수의 의리는 충(忠)이다. 충은 백성을 향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흥행역사를 뒤바꾼 영화 <명량>의 명대사다. 이순신의 충은 표면적으로 임금을 향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백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 컸다.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도 이순신은 적과 싸웠다. 이순신의 충이 국가(왕)만을 향했다면 숱한 해전에서 승리만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백성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한 장수를 영웅으로 만들어냈다.

 

그런 충무공이 환생해 광화문에서 호국음악회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자신의 존재를 기리는 후손들에게 그저 감사의 인사를 전할까? 아니면 자식을 바다에 잃은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비통해할까? 충무공의 선택은 자명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같이 생각할 것이라 믿는다.

 

충무공을 기리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리는 것에 대해 따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해군의 호국음악회는 아쉽다. 충무공을 기리는 사람도, 음악회에 나서는 사람도, 오랜 기간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농성을 벌이는 사람도 찝찝한 기분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국음악회의 방점은 ‘음악회’가 아닌 ‘호국’에 있다는 걸 해군이 알아주길 바란다.

 

*사진출처: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