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회, 이 쯤 되면 장르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앵그리맘>은 엄마가 딸 때문에 고등학생이 된다는 재밌는 설정의 학원 액션 활극이라기보다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이 쫄깃한, 확실한 장편 스릴러다. 초반에 드라마는 굉장히 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학교 폭력 정도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선생과 제자의 불륜, 학교와 돈과 관련된 비리, 소년범에 대한 법의 집행 등, ‘학교’를 둘러싼 문제들 중 대부분을 집합 시켜놓았다. 과연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굉장히 걱정스러웠는데, 한창 전개 과정에 들어간 5회를 보니 앞으로도 계속 긴장의 끈을 붙잡고 드라마를 따라갈 것 같았다.

5회의 내용은 모든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던 이경(윤예주 분)의 자살 처리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자살은 아닐 것이지만 진실을 아는 이경이 죽었으니 진실은 계속 묻힌 채 밝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단짝이었고, 그녀 때문에 함께 고통을 겪은 아란(김유정 분)은 진실에 대한 실마리를 쥐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아란은 막무가내로 도정우(김태훈 분)의 잘못을 지적한다. 이경을 죽게 만든 장본인인 그는 상황을 눈치채고 진실 은폐를 시도한다. 아란 역시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빠르게 깨닫고 오히려 역으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척을 해서 더 큰 위기에 빠지게 되는 걸 막는다. 하지만 도정우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란의 아버지를 포섭하고, 또 돈과 권력을 쥐기 위해 홍상복 회장의 최측근 주애연(오윤아)에게도 접근한다. 학교에서는 선한 선생님의 얼굴을 하고, 어두운 곳에서는 섬뜩한 표정을 짓는, 욕망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도정우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변 인물 또한 관계를 복잡하게 구성한다. 그의 뒤를 지원하는 안동칠(김희원 분)과 강자(김희선 분)도 과거에 살인 문제로 얽혀 있다. 또한 5회에서는 강자가 소년범으로 처분 받은 사건에 애연이 결정적으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계도를 그림으로 그려도 모자를 만큼 지금 이 드라마는 복잡다단하게 상황을 얽고 있다. 

 

쉽게 정리하면 진이경이라는 학교 폭력의 희생자를 중심으로 이 드라마는 모든 욕망의 문제들이 얽혀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를 전진하게 만들고 있다. 그 실마리를 주고, 푸는 것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제작진은 드라마를 흥미진진하지만 주제가 가볍지 않은 스릴러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언급한 인물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조강자이자 조방울의 담임선생님인 박노아(지현우 분)이다. 박노아는 현실에 저런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착하고 곧은 인물이다. 학원 선생님 시절부터 청소년들의 감수성을 위해 시를 읊고, 이후에 진로상담 시간에도 시의 구절을 인용해 아이들을 지도할 만큼 좋게 말하면 곧고 바르지만, 나쁘게 말하면 참 센스 없는 청년이다. 그의 정직함은 그의 아버지면서 존경받는 판사인 박진호(정국환 분)에게서 나온 것이다. 소년범 위주로 판결을 내린 그의 아버지는 강자의 판결에도 관여했고, 이후에 고복동(지수 분)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강자가 다시 올바르게 클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는 그의 아들도 올바르게 키웠다. (하지만 그의 아들을 선생님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에 로비를 해서 중요한 결함을 하나 만들었다. 이것이 어쩌면 박노아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박노아는 등장하는 순간마다 일관된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대나무를 세워놓은 것 마냥 일관되어서 놀라울 정도였다. 아이들을 계도하기 위해 성인나이트를 찾아다니고, 수업에 빠진 아란을 위해 그동안의 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주기도 하고, 방울을 돕기 위해 그녀의 엄마라는 분을 찾아가서 독대하기도 했다. 보면 볼수록 현실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현실에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싶다.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 5회 중반부에 나왔다.

 

방울의 엄마인 한공주(고수희 분)을 만나고 나서 노아와 방울은 포장마차에서 대화를 나눈다. 방울은 노아에게 학교가 정글이고, 온실 속에서만 자라면 밖에서 잡아먹힐 것이라고, 선생님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애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아는 그 말을 듣고 이런 대답을 그녀에게 건넨다. 맞다고, 자신은 온실에서 자랐다고, 그렇지만 아이들이, 방울이 따뜻한 곳에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곤두선 가시를 눕히고, 꽉 쥔 주먹을 좀 펴고, 걱정 없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온실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방울에게 자신이 온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때 마침 국수가 나오는데, 여기서 상징적으로 노아는 방울에게 단무지 하나를 건넨다.

 

참 터무니없는 말이고, 말도 안 되는 말이다. 현실은 정말로 참혹한데, 그 와중에 온실 속에서 자란 뭣도 모르는 사람이 자기는 온실에서 자랐으니 온실이 되어주겠다고 하니까. 그런데 묘하게 설득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의지도 하고 싶어졌다. 현실 속에서 내게 온실 같은 사람이 되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니, 반대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박노아’라는 부러질 것 같이 곧고, 올바른 사람의 존재는 눈치가 없어 드라마를 더 악순환으로 끌어가는 것도 같았지만 앞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 해 줄 열쇠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정이 갔고,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점입가경으로 드라마는 향해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균형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건 ‘박노아’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기대를 걸고 싶다. 이토록 비현실적인 인물이 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사진출처 : MBC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