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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초인시대> 1회, 범인(凡人)의 일들이 모여 초인(超人)이 되다,

초인(超人)시대라 쓰고 범인(凡人)시대라고 읽는 것이 맞겠다. 살면서 한 번씩 우리가 겪던 불운과 고난을 전부 모아놓은 초인이 바로 드라마 <초인시대> 속 유병재였다. 복학생이 되어 ‘개’무시를 당하고, 세면대 물을 틀었는데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고, 월세를 내지 못해 방 빼라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듣고, 어떤 여자와 잘 되가나 했는데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 한 편의 드라마로 모아놓아서 그렇지 하나씩 풀어보면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남자사람’의 사건들이다.

유병재는 이걸 아주 자세하게, 또 재치 있게 살려냈다. <초인시대> 1회는 가히 그의 원맨쇼라고 봐도 무방했다. 극본도 담당했던 그가 직접 연기를 하면서 표현해냈기에 작가의 의도를 100% 살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가 오늘 보여준 모습은 연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유병재는 성공한 청춘이다. 성공이 있기까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과 현실의 괴리성을 비틀며 술 한 잔 기울이던 시기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유병재는 아프다기보다는 바빠서 아픈, 행복한 청춘이다. 어쨌든 그가 전국구 스타가 된 건 지금이고, 그는 예전부터 <초인시대>라는 드라마를 꼭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1회를 보고 나니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로서 드라마가 너무나도 아플 만큼 공감이 되었다. 그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선후배들이 겪은 모든 사건들을 종합해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바친 헌사가 <초인시대>인 것 같다.

 

그만큼 ‘어른’들은 모르겠지만 유병재 세대에게는 절절히 와 닿는 이야기가 <초인시대>의 1회였다. 드라마 같지만 실제 사회에서 사실처럼 떠도는 말인 스물다섯 동정의 마법사 진화설에서 시작해 복학생의 고군분투기, 취업 장벽에 부딪힌 젊은이들(일자리를 구하러 중동으로 가겠냐는 제안을 들을 만큼), 남자들은 바로 이해했을 4월에 시행될 음란물 금지법까지. 작가인 유병재는 기대 이상으로 그의 세대를 마음 놓고 저격하며 대본을 써내려갔다.

 

1회 이야기의 흐름을 잠깐 되짚어보자. 앞에서 언급했듯 주인공 유병재와 김창환은 스물다섯까지 동정을 지킴(?)으로써 초능력을 얻게 된다. 헐크처럼 영웅이 될 줄 알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더 지질하면 지질해졌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능력이 있다는 걸 알려준 인력사무소장 기주봉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고,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불쌍한 젊은이들을 쉴 새 없이 웃기면서 소개한 것이 오늘의 1회였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별 것 없음에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SNL코리아>로 다져진 제작진의 솜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달 전 <미생>을 패러디했던 <미생물>에서도 드러났는데, 그 때는 정극을 패러디하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었다. 하지만 이번엔 대놓고 B급을 표방하면서 사람들에게 ‘드라마’적인 부분의 기대를 낮게 잡도록 했다. 그 결과는 오히려 성공이었다. 드라마인 듯, SNL인 듯 헷갈리면서도 자연스럽게 내용을 따라갔다. 그러다보니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웃을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던 <초인시대>가 계속 풍자와 함의를 품고 있는 진정한 코미디 드라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병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병맛 코드를 마구 부각한 제작진의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계속 낄낄대면서 보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가 이렇게 공감하며 웃을 수 있던 건 내가 이 극 중에 나오는 09학번이요,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요, 연애마저도 포기해야하는 삼포 세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드라마에서 나왔듯 어디에서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앞으로 <초인시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드라마 상에서나마 시원하게 쌍욕을 날리던 유병재처럼 우리의 응어리진 마음도 시원하게 날려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진출처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