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곤에 근육질 몸매의 남자, 살기 가득한 눈으로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링이 울림과 동시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펀치를 휘두르고 또 주무기인 유도 기술을 펼치며 상대를 제압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가 옥타곤에서 내려오면? 사랑이 아빠로 변신, 딸바보적 기질을 마음껏 뽐냈다.
우리가 기억하는 추성훈은 두 얼굴의 사나이었다. 옥타곤의 추성훈과 사랑이 아빠 추성훈. 추성훈의 매력은 이 두 얼굴의 온도 차 때문에 더 배가되었다. 상대를 냉혹하게 쓰러뜨리는 추성훈의 팔은 사랑이를 사랑으로 안는 팔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추성훈이 만재도에 도착했다. 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에 함께한 차승원과의 인연으로 삼시세끼 어촌편 게스트로 참여했다. 일본에서 만나면 허름한 찻집에서 그와 차를 마신다는 차승원의 말로 짐작하면, 그들의 사이는 꽤나 돈독해 보였다.
이번 방송은 추성훈의 상륙과 본격적으로 그가 만재도에 적응하는 모습을 조명했다. 사실 방송 노출은 잦은 편이었지만, 사랑이가 주인공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추성훈의 모습보다는 아빠로서의 모습이 주를 이뤘다.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삼시세끼야말로 추성훈이 사랑이 아빠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방송이자, 시청자들이 40대 남자 추성훈의 솔직담백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였다.
하나, 추위에 벌벌 떠는 남자
추성훈은 근육으로 갑옷을 두른 것 같았다. 추위를 모를 것 같았던 그가 만재도에서 코를 훔치며 떨기 시작했다. 만재도가 춥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방한용품을 준비해 온 그가 정작 자신의 윗옷은 걸치지 않은 채 섬 날씨를 맞이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하는 그, 옆에서 지켜 본 손호준은 방에서 방한 조끼를 꺼내다 주었다. 또한 유해진의 주먹밥 배달을 하러 산 중턱에 오른 그는 강력한 바람에 몸을 그대로 바위에 뉘었다. 늘 강력할 것 같은 추성훈, 그가 만재도의 대자연에 한 없이 작아졌던 순간이었다. 옛 말에 추위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딱 그를 두고 한 말이었다.
둘, 입맛이 까다로운 남자
모든 지 잘 먹을 것 같은 데, 입맛이 제법 까다롭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쌀밥을 먹지 않았다. 운동선수로서 평상시에도 늘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자제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차승원은 특별 식단을 준비했고, 밥 이외에 영양분을 충당할 수 있게 다른 반찬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가 홀로 방에 들어가 허기졌는지, 초코바를 섭취하는 것이었다. 초코바는 탄수화물이 포함되지 않나? 그는 밥을 싫어하는 걸까? 점점 그의 식성이 미궁 속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입맛이 조금 까다로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셋, 셰프 기질이 충만한 남자
비닐장갑도 통 맞지 않았다. 곰 같은 손과 주방은 어째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그가 칼을 잡고 감자를 써는 순간 잠시 오해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소곳이 앉아서 재료들과 씨름하며 칼질을 쓱쓱 해내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차승원의 화려한 요리 실력으로 눈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추성훈의 칼질은 분명 요리의 기질이 충분해 보였다.
자고로 삼시세끼는 다큐멘터리적 기질이 충분하다. 가끔 작위적인 편집으로 프로그램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여타 예능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지그시 사람을 관찰하고 카메라에 오롯이 담아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브라운관으로 전달한다. 간혹 자신의 왜곡된 모습이 행여나 비칠까 예능 출연을 꺼리는 기존의 스타들에게 그런 우려를 최소화시켜주는 방송이 바로 삼시세끼이기도 하다.
삼시세끼가 표방하는 슬로우 라이프에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바쁜 도시와는 다른 이곳에서 출연자들은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듯 이윽고 퍽 자연스러워진다. 예전에 나영석 PD가 예능의 최종 도착지는 인간극장이라도 했던가? 삼시세끼가 표방하는 슬로우 라이프에서 사람은 곧 주인공이 되고, 천천히 흘러가는 섬의 시간 속에서 사람은 본연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추성훈도 예외가 아니었다. 밥 먹고 사는 이야기라는 대서사시 안에서 추성훈은 본인도 모르는 새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사진 출처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