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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삼시세끼 차승원 외출, 만재도 산체 하나 발령

딸에 대한 부정은 먼 타지에서도 그윽했다. 생일을 맞이한 딸을 만나러 20시간에 외출을 결심한 차승원은 손호준과 유해진 둘만 만재도에 남기고 뭍으로 향했다. 끼니를 담당했던 우리의 차줌마 차승원은 혹여 둘이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울까봐 배추 4포기를 때다가 겉절이를 한 소쿠리 만들어 준비했다. 저번 유해진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콩자반을 냉큼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배 시간을 지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손호준, 유해진을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겉절이를 버무렸다. 모르긴 몰라도 차승원의 요리에는 화려한 실력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차승원의 외출은 만재도 파란 지붕 가족에 크나 큰 타격으로 예상되었다. 불과 1박 2일의 외출이었지만, 집안일 지분 100%를 차지하는 그의 빈자리는 어째 커보였다. 안사람 차승원, 바깥양반 유해진, 둘 사이에서 눈치껏 행동하는 아들내미 손호준까지. 만재도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균형잡힌 가족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 차승원의 이탈은 균형의 추 하나가 빠진 셈이었다.

 

 

가장 염려스러웠던 것은 이들이 앞으로 때워야 할 끼니였다. 겉절이를 만들었음에도 안심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차승원은 손호준에게 된장국과 고추장국의 핵심 레시피 된장 고추장의 비율을 귀띔하고 갔다. 하기사 다른 이에게 단 한 번도 주방을 내줬던 적이 없던 그인지라, 먹거리를 책임지던 자신이 빠져나간 삼시세끼 밥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간 차승원의 요리가 단순 끼니 수준이었나? 차승원이 그간 보여준 화려한 요리 행적은 가히 위대했다. 생경한 어촌 재료들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순식간에 요리를 하고, 불가능해보이던 나영석 PD의 미션들(예컨대 어묵탕과 식빵 따위)을 보란 듯이 완수했던 그인지라, 시청자들에게 이제 그의 밥상은 미슐랭 별 3개를 자랑하는 세프의 음식처럼 어느새 신용 100%를 자랑했다.

 

그렇다. 차승원의 이탈로 만재도에는 진돗개 하나 아니 산체 하나가 발령한 것이다. 시청자로서 걱정만이 앞섰다. 아니 예능을 보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6회를 꼬박 챙긴 애청자로서 그들이 만재도에 뿌려놓은 삶의 궤적들을 지켜봤던 입장에서, 이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다. 고기가 안 잡히는 날에도, 별 재료가 없음에도 늘 훌륭한 밥상을 내놓았던 그였기에, 그의 이탈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내 마음을 아시는 이 있겠지)

 

그런데 만재도에 떨어진 산체 하나에 그들이 위태로우리라 생각했던 것은 크나 큰 오산이었다. 파란 집 지붕 가족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엄마가 갑자기 집을 비울 때 밥을 어떻게 해 먹을지 고민이 앞서다가도, 잠시나마 잔소리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속에서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던 여럿 아들들처럼, 이들의 속내도 이와 동일했다.

 

산체 하나에 대처하는 자세 1 : 잠을 청한다

 

차승원이 떠나자마자 먼저 이들은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손호준은 항상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환청을 듣기도 했는데 알다시피 그는 대선배들 사이에서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갑자기 군대 생활에 명언이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선임이어도 없는 편이 낫다는 말. 유해진도 매한가지였다.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배려 차원에서 차승원의 눈치를 살살 살피던 그에게 차승원의 부재는 휴식의 기회였다. 원래 이 시간에는 낚시를 하러 가거나,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날은 잠만이 그들의 유일한 작업이었다.

 

 

산체 하나에 대처하는 자세 2 : 통발 걱정 탈출

 

먹을거리에 대한 부담으로 항상 긴장하는 상태에서 통발을 열어봤던 유해진의 태도가 오늘은 통발에 차라리 아무것도 없길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을 내비쳤다. 손호준과 유해진에게 생선은 부담스러운 재료였다. 손질할 줄도 모르고, 매운탕을 끓이는 방식에도 자신없어했던 이들에게 오늘의 통발 답사는 그냥 인사치레이자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이었다. 어쨌든 생선을 기다리며 대문을 거닐던 차승원이 없는 오늘은 통발에 대한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산체 하나에 대처하는 자세 3 : 그냥 입에 풀칠만 하고 살면 되지 뭐.

 

양파채를 어떻게 썰어야하는지, 물을 얼마나 끓여야 하는지, 분 단위로 요리를 체크했던 차승원과 함께하는 요리 시간은 진짜 레스토랑 주방을 방불케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차승원이 칼과 국자를 들고 서성이는 시간은 유해진과 손호준에게는 초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오늘은 해드 셰프인 그가 없다. 굳이 맛있게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들은 있는 재료를 대충 준비해 먹고 바로 자자는 심정으로 요리를 준비했다. 그래도 구색은 갖추고자 잡은 노래미를 회를 듬성듬성 뜬 유해진의 노력이 갸륵해보였다.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이용해서 해먹는 행색이 흡사 우리와 닮아있는 이들이 제법 낯설었다.

 

 

차승원의 공백은 예상했던 것보다 그들에게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뭍에 나간 차승원만이 그들을 걱정해 전화를 걸었는데, 이건 뭐 전화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마치 전원일기를 방불케하듯 느긋함의 연속이었던 이번 방송은 엄청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죽고 못 사는 사이더라도 가끔은 떨어져보는 것이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아 물론 어서 빨리 차줌마가 와서 이들을 들볶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으로서, 다음 주 검은 그림자의 사나이 차승원이 등장하는 만재도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사진출처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