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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세상을 쓰다

뤽 베송, <그랑블루>(1988) 키워드: 아버지, 우정, 경쟁, 바다, 돌고래, 사랑? 1. 음악과 카메라의 독특함 음악이 굉장히 두드러진다. 뤽 베송과의 찰떡궁합 에릭 세라 음악감독.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꼼꼼히 살피면서 음악을 작곡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흐름과 발맞추는 음악. 초반 가벼운 분위기에는 끊임없이 경쾌하고, 산뜻한 노래가 흐르다가 후반부 진지해질수록 음악의 비중은 줄어듦. 그렇다고 음악 풍 자체가 바뀌진 않는다. 거기다 카메라도 계속해서 로우앵글. 이물감? 로우앵글의 기본적인 속성은 대상을 위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하지만 가벼운 분위기(음악을 포함하여) 때문에, 대상이 위압적으로 보이진 않고 반대로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듯. 돈키호테 같달까. 2. 헐리우드 70년대 프랑스에는 자타공인 두 명의 영화광이.. 더보기
<그녀는 예뻤다>가 더 '모스트'스러워 지려면...‘기회의 신’의 앞머리를 잡아야 한다. 결방 사태를 지나 드디어 반환점을 돈 는 재밌는 드라마의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최저 수준의 시청률에서 시작해 9회의 시청률은 약 16%, 당일 방송 중의 2위, 또는 3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푹 빠져들게 하는 내용도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본의 아닌(?) 결방이 더욱 약이 된 듯 했다. 마침 9회는 황정음이 극적인 변신을 하는 날이었고 그 모습을 시청자들은 손꼽아 기다렸으니 말이다.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이미 8회까지 애착관계를 형성한 시청자는 당연히 이 드라마를 챙겨봐야만 했다. 그리고 결방이라는 노이즈 마케팅도 시청률 상승에 한몫 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는 시청률, 화제성 잡기에서 장외홈런을 날리고 있다. 9회는 김혜진(황정음 분)이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잡지 편집팀 앞에 나.. 더보기
<라디오> 마살라 무비가 아닌 인도의 따뜻한 영화 우리에게 인식되는 인도영화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마살라 무비’다. ‘마살라 무비’는 한 영화에 몰입된 서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춤과 노래가 삽입되는 형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것이 혼합되어 있다는 의미로 인도의 자극적인 향신료인 ‘마살라’라는 별명을 인도영화에 붙였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좋은 장르라 평하기도 한다. 아무튼 인도영화하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영화 는 인도에서 제작된 드라마 장르의 영화다. 올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된 작품이고, 내가 여행 중 마지막으로 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라디오’라는 추억의 소재를 이용해 늙음과 인생에 관한 고찰을 다뤘다. 무엇보다 인.. 더보기
이선균 하나로 끝까지 가는 영화 <성난 변호사>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선균이 돌아왔다. 전작 와 유사한 풍의 영화인 로. 달라진 게 있다면 전작과는 달리 원톱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결국 영화의 성공은 조진웅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 넣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역할의 중심은 다시 이선균이다. 이선균은 “이기는 게 정의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변호사 변호성으로 분한다. 성난 변호사에 걸맞은 이름이다. 그러나 변호성은 능력 없이 성만 내는 변호사는 아니다. 첫 장면에서 드러나듯 그는 승소를 위해 감정이 아닌 논리를 앞세운다. 결과는 변호성의 승리. 피고였던 제약회사 로믹스의 문지훈 회장(장현성 분)은 그에게 또 다른 소송을 맡긴다.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회장의 운전기사를 변호하라는 임무다. 돈을 최고로.. 더보기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박성원이 단편 「댈러웨이의 창」에 담았던 문제의식은 같은 작품이 실린 소설집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전반을 가로지른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어려운 용어가 거북스럽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기 어두운 암실에는 사방이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작은 상자가 있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촛불만이 유일하게 빛을 밝힌다. 상자 안에는 미지의 물체가 들어 있는데, 우리는 하얀 천에 맺힌 그림자를 통해서 그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형태는 대략적으로 보건대 토끼의 모양이다. 자, 그렇다면 질문. 상자를 둘러싼 천은 토끼라고 추측되는 대상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가리는가? 대답 하나, 보여준다. 정말? 우리는 그저 토끼처럼 보일 뿐인 그림자를 볼 뿐이다. 정말 그 안에 토끼가 들어 있다고 확신할.. 더보기
뺄셈의 역사가 올바른 교과서인가? 하다하다 이제는 역사까지 마이너스다. 정부가 국정 교과서 카드를 꺼내들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역사는 더 연구해야 할 법도 한데 그냥 빼버리겠단다. 학생들에게 생생한 역사를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균형이라는 탈을 쓴 무미건조한 역사를 가르칠 요량이다. 이념적 편향성을 이유로 ‘올바른 교과서’를 만든다는데 역사를 바르고 틀리다는 개념으로 구분하려는 발상 자체는 가히 창조적이라 할 만 하다. 문제는 바르고 틀린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90%의 역사학자들이 현행 검정 교과서 체제 유지를 바라는데 정부는 방침을 바꿨다. 10%의 역사학자들로 역사를 써내가겠다는 의지인가? 집필진 구성에서 올바른 과정을 거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다른 한계는 교과서 집필 기간이다. 1년 6개월 만에 새로..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1주차(10/5~10/11)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유스>, 젊은 노인의 역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젊을 땐 모든 게 가깝게 느껴진다네, 그게 미래지. 늙어선 모든 게 멀리 보여, 그게 과거라네.”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인공, 영화감독 믹(하비 케이틀 분)이 젊은 배우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젊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참 가깝게 느껴지고, 노인들에게 과거는 아득히 먼 과거가 된다. 영화 는 이 문장을 이야기로 천천히 풀었다. 주인공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은 지금은 은퇴한 백발의 노인이다. 한때 그는 세계적 지휘자였고, 그가 작곡한 '심플송‘은 여전히 클래식 연주자의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화는 휴양지에서 조용히 은퇴자의 삶을 보내고 있는 프레드에게 영국 여왕이 ’심플송‘ 지휘를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예상대로 프레드는 지휘를 거절한다. 심지어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 더보기
인도 ‘바보 형’이 선사하는 감동의 물결, <카쉬미르의 소녀>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바보 형’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너무 착해서 항상 뭔가 손해 보는 그런 형들 말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마지막 영화 는 그간 잊고 지낸 바보 형들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영화다. 다소 뻔한 감동 스토리임에도 영화를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데에는 주인공 바지란지(살만 칸 분)의 역할이 컸다. 대략적인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파키스탄 초원지대 카쉬미르에서 태어난 소녀 샤히다는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샤히다의 어머니는 샤히다가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인도의 사원을 찾는다. 파키스탄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샤히다는 잠깐 밖에 나갔다가 어머니와 헤어지고 만다. 그 후에 인도에서 만나는 인물이 바지란지다. 주인공의 순수한 내면과 냉.. 더보기
<자객 섭은낭>, 혹은 허우샤오시엔이 무협판타지를 추모하는 방식 동시대 중국을 별다른 동요 없이 카메라에 담아왔던 지아장커는 기묘하게도 (2013)에서 무협의 판타지를 끌어들였다. 과장된 배경음악, 인위적이고 능숙한 인물들의 몸짓과 포즈. 거기다 산탄총, 권총, 칼이라는 소재 등. 하지만 다소 생뚱맞은 무협영화적 요소들도 결국 동시대 중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아장커에게 무협이란 일종의 거울이었다. 무협지적 낭만을 상실한 시대에 무협은 맥락을 잃고 부유할 수밖에 없다. 시대와 무협의 괴리, 그리고 불가능한 무협의 몸부림은 자연스레 무협이 불가능한 시대를 향한다. 그러니까 지아장커에게 무협은 단지 현실을 객관화시켜 반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무협은 리얼리즘을 위한 판타지(적 수단)였다. 그리고 (2007)이후 8년 만에 허우샤오시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