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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세상을 쓰다

pray for seoul 13일의 금요일을 미신이라 치부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파리에서는 동시다발적인 폭탄테러로 1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고, 서울에서는 물대포에 맞은 1명의 무고한 농민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파리 테러와 서울 시위는 제각기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안의 우선순위를 매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 집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고는 내게 사안의 중요성을 가리는 눈이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신문의 1면부터 10면까지는 11‧13 파리 테러의 배경과 여파, 한국에 미칠 영향 등이 육하원칙에 따라 상세하기 기술돼 있었다. 같은 날 있었던 서울의 시위와 관련해서는 단 2면만 할애했다. 경찰이 물대포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더보기
<더 랍스터>, 사랑은 신기루인건가요? *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신기루라는 것이 있다. 그럴듯한 개념 하나 소개하는 듯이 시작하긴 했지만, 우리 중 신기루에 대해 모르거나, 신기루라는 이미지를 상상하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오아시스가 가짜라는 사실을 확인한 여행자의 절규는 어릴 적 우리에게 철없는 동경을 불러일으키곤 했으니까. 그런데 엄밀히 말해 신기루는 가짜라기 보단 왜곡에 가깝다. 신기루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뿅! 하고 무엇이 생겨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신기루에 대한 정의는 ‘물체가 실제의 위치가 아닌 위치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신기루란 목이 너무 말라 오아시스의 환영을 보는 여행자의 ‘망상’이 아니라, 어딘가에 무엇인가 있지만 불안정한 대기층에 의해 왜곡된 빛을 감각하는 여행자의 ‘착시’다..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5주차(11/2~11/8)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팬들에게 좋은 서비스만을 남긴 <그녀는 예뻤다> 예상대로 그녀는 예뻤다. 그리고 우리에게 동화 같은 장면들을 보여줬다. 혜진(황정음 분)은 우리 삶에 스포트라이트를 꺼버리지 않는다면,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했다. 참 고맙지만 고맙지 않은 말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미 잔혹동화이기 때문이다. 해피엔딩 드라마에 현실투정을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행복을 전해주던 드라마, 가 마지막 회에 이르러 보여준 드라마적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서비스를 위한 서비스, 잦은 회상씬과 캐릭터 소비 최종회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전작처럼 작가가 열린 결말,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결말을 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여른을 의식한 듯 안정적인 구조를 선택했다. (물론 여러 장치를 통해 새드 엔딩을 심어.. 더보기
프레임으로 본 노동개혁 프레임은 첫사랑이다. 잊으려 해도 자꾸만 기억이 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좋을 게 별로 없었던 사랑인데도 대다수 사람들은 첫사랑을 낭만적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항상 첫사랑을 생각할 때면 설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 감정은 프레임이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노동개혁으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이라는 정부여당의 구호는 매력적이다. 귀에 쏙쏙 박힌다. 일자리 문제는 청년을 비롯해 그를 둘러싼 가족·친척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위력이 있다. 노동개혁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다는 의미가 머릿속에서 복잡한 계산 없이 바로 떠오른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람들은 노동개혁을 생각하면 자동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반면에 새정치민주연합과 노동계.. 더보기
<소크>, 우연과 기억이 만날 때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에서 봤던 단편영화 제이미 도나휴, 에 대한 리뷰입니다. AISFF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나는 막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막장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우연’의 수위일 텐데, 일단 우연과 필연의 이분법적 구별에 회의적이기도 하며, 만약 우연이 지나칠지라도 극적인 측면에선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증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에도 우연적 요소가 있다. 이는 서늘한 음악, 창백한 화면, 짧게 이어지는 쇼트들과 더불어 영화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오키(Oki)가 하필 그때 거기서 빼앗긴 자전거를 마주하는 순간 이후 영화는, 그리고 그걸 보는 관객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진다. 하지만 의 우연에는 .. 더보기
[서평] 단지 ‘한국이 싫어서’였을까 장강명의 소설 는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계나는 평범한 한국여성이다. 대학 졸업 후 카드회사에서 멀쩡하게 직장 다니던 그가 돌연 호주로 이민 갈 생각을 한 이유는 ‘한국이 싫어서’다.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고. 그 이유는 마치 압축파일과도 같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마리를 풀어볼 수록 그만한 사정과 계기들이 중첩돼 있다. 계나가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지옥과도 같은 출퇴근길이 싫어서고, 남자친구 지명과의 신분 격차가 싫어서고, 도리어 자신에게 짐이 되는 가족들이 싫어서고, 회식 때마다 서슴없이 음담패설을 일삼는 상사가 싫어서다. 이밖에도 수많은 ‘싫어서’들이 모여 계나의 이민 결심을 확고히 만든다. 계나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한국에서 살면 희망도 없고 무엇보다 자신은..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4주차(10/26~11/1)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KBS 드라마 스페셜 2015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우리가 탈 기차는 어디에 이제는 먹거리 상품 중의 하나가 된 노량진 컵밥.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컵밥은 노량진역 육교 아래에서 만날 수 있던 명물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불법 노점상이라는 사실로 인해 컵밥거리라는 이름으로 이전을 했다. 혼잡도 완화와 불법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전은 필요했다. 다만 아쉬운 건 정돈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매력이 사라졌다는 점이랄까. 이전 컵밥골목을 기억한다면 반가울 수 있는 드라마가 나왔다. 가을을 맞아 다시 시작한 KBS의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 가 그것이다. 2014년 극본 공모 우수작으로 노량진 고시생의 삶을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극화했다. 특히 취업을 준비하고,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드라마였다. 드라마는 컵밥골목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더보기
<송곳> 시시한 약자와 시시한 강자의 싸움 약한 것은 과연 좋은 것일까, 아니면 병신이 되는 지름길인 걸까. 점점 구색을 갖춰가는 드라마 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착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세뇌되듯 배우지만, 생각보다 삶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착하면 이용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주인공 이수인(지현우 분)은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보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결단한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왕따가 된다. 하지만 구조조정 명령이 떨어진 회사에서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산 파트 과장 허과장(조재룡 분)과 형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던 성실한 주임 황준철(예성 분)에게 위기가 닥친 것이다. 허과장은 매번 준철에게 이런저런 일을 떠넘기다 결국 그에게 사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