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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세상을 쓰다

화성생존기에서 배우는 백수탈출기, <마션>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호평 일색인 영화를 뒤늦게 봤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이 영화의 절반은 과학적 지식인데 과학과는 거리가 있는 내가 리뷰를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화성에서 고군분투하는 마크 와트니(멧 데이먼 분)가 취업 경쟁에 뛰어든 나와 내 주변 친구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적어도 처절함과 절박함은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과학 수식은 과감히 차치하고 그의 생존기에서 힌트를 얻어 백수에서 탈출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얻어 보려 한다(스스로 위안 삼아보려 한다). 영화는 아주 짧게 요약 가능하다. 화성에 강력한 모래폭풍이 불면서 헤르메스호는 화성 도착 6일 만에 조기 귀환한다. 그 과정에서 와트니는 불의의 사고로 일..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11개봉 기대작 세 편 같은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과의 모임에는 남다른 기억력을 뽐내는 사람이 꼭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7년 만에 만난 재수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유달리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왜 걔 있잖냐. 맨날 잠자고, 자습 빼먹고 피시방 가던 놈. 하, 누구더라...” 다들 조용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때, 뒤늦게 합류한 A가 치고 들어온다. “아, X 말하는 건가? 자습이 뭐냐. 수업도 빼먹고 피시방 돌아다니느라 바빴지. 걔네 무리가 있었어. Z, W, U랑... 맞다, S. 이렇게 넷이서 같이 다녔잖아. 아, 그리고 니네 그거 아냐? Y랑 X랑 잠깐 사귀었던 거.” 하나 더 있다. 연례행사처럼 모이는 중학교 동창(회라기엔 초라하지만 어쨌든)회.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더보기
<그녀는 예뻤다> 고구마와 사이다 사이 겨울하면 군고구마다. 아버지가 퇴근길에 군고구마를 사오시면 그걸 까먹으면서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대입시험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돈을 벌어보겠다며 뛰어든 일이 군고구마 장수 일이기도 했다. 그만큼 고구마는 우리에게 추억이 가득한 존재다. 요즘 드라마에 고구마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아무리 맛있는 고구마라도 몇 개씩 계속 먹다보면 목이 턱턱 막히기 마련이다. 물이 그렇게 생각날 수가 없다. 드라마에서도 전개를 위해 일부러 주인공을 엇갈리게 하고, 끊임없이 심장을 졸이는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시청자들이 ‘고구마 먹는다’라고 표현을 했다. 의 11회가 딱 고구마 같은 장면들이 뒤덮은 날이었다. 성준(박서준 분)의 사랑 고백에도, 친구를 생각하며 망설이는 바보 같은 혜진(황정음 분)의 모습에 아마 시.. 더보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이반의 어린 시절>(1962) 키워드: 소년, 성인, 전쟁, 기억, 복수, 꿈 1. 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장편 데뷔작이자 베니스 그랑프리를 탄 은 블라디미르 보고몰로프의 소설 을 각색한 작품. 그렇다면 원작의 제목에 굳이 ‘어린 시절’이라는 제목을 덧붙인 까닭은? 과 달리 은 분명히 과거 시점을 가리킴. 그러니까 영화에서 진행되는 현재는 이반(니콜라이 부릴야예프)의 ‘어린 시절’ 이후일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그렇다면 이반의 어린 시절은 무엇인가?’라는 혼란에 빠지게 됨. 왜냐하면 12살 이반은 겉보기엔 이미 어리기 때문. 12살 이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곧 어리지 않은 현재 이반의 성숙함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 말하자면 영화는 제목의 아이러니를 통해 이반의 성숙함을 극적으로 강조. 2. 세 번의 꿈과, 이반의 ‘어.. 더보기
<KBS 드라마 스페셜 2015 짝퉁 패밀리> 당신의 굴레는 무엇인가요 언젠가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하는 시간. 이런 생각은 대부분 우리가 어떤 굴레에 갇혀서 맴돌 때 하게 된다. 그 굴레는 학교, 직장일 수도 있겠고, 연인, 가족일 수도 있겠다. 늘 그렇듯, 굴레는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시즌3의 첫 작품, 는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서른여섯 여성의 현실적 이야기를 담았다. 은수(이하나 분)는 철없는 엄마와 자신의 등록금을 들고 도망간 의붓아버지 때문에 젊은 시절을 가족에게 헌신했다. 피도 안 섞인 남인 미성년 동생은 그녀에게 ‘야, 야’거리며 시비 걸기에 바쁘다. 서른여섯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낮에는 치과에서, 저녁에는 알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가족 같지도 않은 가족의 굴..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3주차(10/19~10/25)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송곳>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당신들이 공감할 이야기가 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단행본이 출간된 웹툰이다. , 과 같은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담아낸 작품을 만든 최규석 작가의 웹툰 데뷔작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사용자, 정의감이 담겨 있는 노동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다룬 웹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었다. 드디어, 이 드라마로 세상에 나왔다. 인턴, 비정규직의 애환을 담아 세상을 뒤흔들었던 작년 이맘때의 tvN 드라마, 처럼. 드라마는 철저히 웹툰의 서사를 그대로 따른다. 첫 장면에서부터 인물들의 대사, 화면 구성, 장면의 순서까지 말이다. 보통 웹툰을 영상으로 만들 경우 새로운 문법에 맞게 고쳐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은 그렇지 않다. 웹툰의 서사가 워낙 드라마의 문법에도 맞게 잘 설계된 덕분일 것이다. 지난 주말 방송된 의 1, 2부.. 더보기
마음을 고백한다면 지성준처럼, <그녀는 예뻤다> 드디어 찾았다. 성준(박서준 분)은 진짜 혜진(황정음 분)을 우여곡절 끝에 만났다. 그 방법이 꽤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마음을 나누고, 화해로 나가는 것만으로 시청자는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즐거웠을 것이다. 그 시원함의 중심에는 성준의 고백이 있었다. 성준은 우수호텔리어로 상을 받은 하리(고준희 분)를 발견하고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리의 변명을 듣기도 전에 그는 혜진에게로 달려간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옛 동창이었음을 확인한다. 혜진에 대한 마음이 더욱 확고해진 성준과 달리, 혜진은 성준만큼 하리를 신경 썼다. 성준을 좋아하게 된 나머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결국 이렇게 들통난 것에 대해 후회하는 하리를 보는 것이 혜.. 더보기
<그녀는 예뻤다> 당신에게도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나요 쌀쌀한 가을밤이다. 바람 탓인지, 미세먼지 탓인지 우리의 밤은 더욱 쓸쓸하지만, 다행히 우리를 달래주는 드라마들이 있다. 특히 요즘 수목 드라마는 주목할 만하다. 누군가는 세 작품 모두 매력 있다고 해서 축구 프리메라리가의 ‘엘클라시코’에 빗대어 ‘수목클라시코’라 부르기도 한다. 사극물인 KBS2의 ‘객주-장사의 신’, 추리스릴러물인 SBS의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라는 독특한 작품들 사이에서 단연 시청률로 앞서는 작품은 MBC의 다. 10회도 최고의 시청률인 17%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 수치에 대한 설명은 충분한 듯하다. MBC가 야구 중계를 포기해가며 선택한 드라마인 만큼 는 확실히 대세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MBC와 시청자들에게 ‘신경 쓰이는’ 존재다. 자꾸 보고 싶고 생각나고, 걱정되.. 더보기
끝내 털어내지 못할 기억, <먼지아이> 먼지와 기억은 닮았다. 털어내려 해도 완전히 털어지지 않는다.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2009)는 털어버려야 할 것들을 끝내 털어내지 못하는 개인(혹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이 연출의도에서 밝히듯 고독은 근심과 고민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쌓인 먼지가 산발적으로 일어나듯 발생한다. 는 2009년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은 본인의 영화 DVD의 Director’s choice로 이 영화를 담아내기도 했다. 영화를 연출한 정유미 감독은 채색 없이 연필만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이후에도 (2010), (2012) 같은 작품을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해 내놓았다. 는 발견과 제거가 주를 이루는 영화다. 마치 처럼 주인공과 먼지아이는 쫓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