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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세상을 쓰다

지극히 주관적인 12월 개봉 기대작 다섯 편 11월 내내 나를 뒤흔들었던 건 ‘연대’라는 단어였다. 달리 말해 한동안 나는 드라마 의 여파로 끙끙 앓을 것만 같다. 나를 울렸던 의 한 장면. 노동조합에 막 가입한 한 계산원은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조끼를 입지 못한다. 그녀는 남몰래 옷을 갖고 계산대에 간 뒤, 쭈그려 앉는다. 동료들의 시선을 피해 조끼를 꾸역꾸역 입은 뒤에도 그녀는 쉽사리 일어서지 못한다. ‘나 혼자’라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눈을 질끈 감고 일어섰을 때,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노조 조끼를 입은 계산원들은 별 말 없이 미소 짓고 있었으나, 그들은 단지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연대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단단하거나 확고부동한 시멘트 같은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건 말랑말랑하고..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8주차(11/23~11/29)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두 가지 질문을 던진 영화, <이터널 션사인> 1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라 떠들썩했지만, 어쨌든 내게는 처음 본 영화였으니까 별다른 선입견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뿐인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전작도 보지 않았으니까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 새로운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의 로맨스 영화였던 만큼 설레기도 했다. 영화 초반 조엘(짐 캐리)가 출근하지 않고 뜬금없이 몬탁의 겨울바다로 향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하지만 영화 후반과도 맞닿아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한번쯤 그런 생각 하지 않는가. 정해진 궤적의 삶에서 벗어나 일탈을 맛보고 싶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별로 그런 선택을 했던 적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조엘이 기차에 몸을 악다구니로 밀어 넣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여하튼 누가 봐도 평범한 조엘과 누가 봐도..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7주차(11/16~11/22)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KBS 드라마 스페셜 2015 비밀, 외국인 매매혼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 오십이 넘은 남자가 죽었다. 자살은 아니다. 살인 사건이 명백하다. 그에게는 젊은 베트남 아내가 있다. 외국인 아내들은 나이든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 돈을 들고 빈번하게 도망간다. 남편은 두려웠다. 남편은 아내를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외국인 등록증과 아내의 여권을 주지 않았다. 아내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죽였다. 아내는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도망치려다 공항에서 발견된다. 모든 정황이 완벽하다. 단막극 은 앞 문단에서 설명한 대로 살인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용의자도 확실했다. 하지만 용의자는 외국인이지만 한국말을 아주 잘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 더욱 의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사건에 대한 의심과 과거의 실제 상황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더보기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 당신의 위치는 지금 어디? “이 영화는 공감이 되지 않아서 별로였어.”만큼 난감한 평가도 없을 것이다. 그런 평가가 잘못 됐다는 게 아니라, 공감하고 말고를 나누는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냐는 말이다. 누군가는 비행사의 삶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나는 비행을 해보지 않았으니, 저 이야기에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아.’ 영화티켓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쉴 수 있다. 반면에, 누군가는 재난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 오줌 마려워 죽을 뻔했던 기억이 나네.’ 창백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공감을 얻는 영화=보편적 주제를 담은 영화’ 혹은 ‘공감을 얻지 못한 영화=특수하한 주제를 담은 영화’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나는 (난니 모레티, 2015)에서 어머니의 존재와 부재에 대해 숙고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린 램지, .. 더보기
KBS 드라마 스페셜 2015 낯선 동화, 포기한 동화에서 피어난 새로운 동화 동화는 참 아름답다.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그리며 지은 이야기인 만큼, 동화는 행복을 지향한다. 하지만 어린이 때 좋기만 하던 동화들이 나이가 들면서는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생의 쓴맛을 너무 많이 봐버렸기 때문일까. 어른들에게 동화는 상상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단막극 는 제목 그대로 낯설게 다가오는 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화 같지 않은 삶을 사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로 뻗어나갈 만큼 인기를 끌었던 동화 ‘봉봉이’를 만든 작가 상구(김정태 분)과 그의 두 아들은 동화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봉봉이’는 작가의 두 아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봉봉이와 다르게 아들 수봉이(정윤석 분)와 재봉이(길정우 분)은 여관을.. 더보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솔라리스>(1972) 키워드: (반)과학, 예술, 사랑, 기억, 여성, 아버지 1. 과학? 예술! 는 외계 솔라리스 바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외형상 SF 혹은 과학 영화의 컨셉을 취한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토퍼 놀란, 2014) 혹은 (로버트 저메키스, 1997)의 원형을 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두 영화와 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SF, 그러니까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세계관에 의존하는 반면 후자는 그와 전혀 무관하고 차라리 반대. 예를 들어 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 논쟁, 비난은 가능하지만 에 대해서 그런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는 판타지이며, 그것도 철저히 과학적 맹신을 부정하는 반과학적 판타지다. 는 한 마디로, 오로지 사실로서 과학만을 인정하던 크리.. 더보기
[바꼈스오피스] 45주차(11/9~11/15) * [바꼈스오피스]는 저희가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제시하는 영화 순위입니다. 현행 박스오피스는 오로지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 관객수 등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바꼈스오피스]는 일종의 ‘대안적 박스오피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새로운 기준에 맞춰 영화 순위를 다시 매긴 뒤 따로 코멘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이 최대한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도 사실상 주관적인 가치 판단에서 벗어날 순 없을 텐데, 딱 거기까지를 주관적인 개입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려 합니다. *** 현재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다 다루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가피하게 ‘박스오피스’ 20위권 내에 있는 영화들만 다뤘습니.. 더보기
<뉴스가 지겨운 기자> 특종보도에 지쳐버린 우리에게 보내는 글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쓰던 사물함을 비웠다. 나한테 이렇게 책이 많았었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 책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기자를 준비하던 친구 녀석이 나보다 먼저 자리를 비우면서 내게 맡겨둔 것이었다. 몇 권을 들춰보다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 기자가 되기도 전에 벌써 뉴스가 지겨워졌나 싶어 몇 장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책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신문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안수찬 기자의 글이다. 그는 정말로 (우리나라) 뉴스가 지겨워진 기자였다. 특종과 속보, 오로지 스트레이트(사실 기반의 짧은 기사)를 좇는 우리나라의 보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내러티브’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다. 어쩌면 그가 기자 생활을 하는 내내 매만지던 개념일지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