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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회

pray for seoul

13일의 금요일을 미신이라 치부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파리에서는 동시다발적인 폭탄테러로 1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고, 서울에서는 물대포에 맞은 1명의 무고한 농민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파리 테러와 서울 시위는 제각기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안의 우선순위를 매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 집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고는 내게 사안의 중요성을 가리는 눈이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신문의 1면부터 10면까지는 11‧13 파리 테러의 배경과 여파, 한국에 미칠 영향 등이 육하원칙에 따라 상세하기 기술돼 있었다. 같은 날 있었던 서울의 시위와 관련해서는 단 2면만 할애했다. 경찰이 물대포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점과 경찰 차벽이 위벽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시위대의 폭력성과 그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반응 등이 일목요연하게 제시돼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우선 시위대가 ‘왜 도심에 집결했는지’가 없다. 파리 테러가 왜 일어났는지 IS의 전략을 통해 분석하고, 그들의 의도가 무슬림 난민에 대한 유럽의 부정적 인식 확대와 그로 인한 난민의 조직적인 ‘IS 전사화’에 있다는 것까지 설명했던 언론의 분석력이 파리보다 가까운 서울 시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다면 현장에서 시위대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취재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파리 테러의 경우 취재 인력 부족 등으로 현장성을 살리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이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언론은 지도를 통해 파리 곳곳에서 일어난 테러를 시각적으로 잘 구현했다.

 

반면 한국에서 일어난 시위와 관련된 시각 자료는 크게 3가지다. 경찰 차벽이 줄지어 설치돼 있는 장면, 시위대가 경찰차를 파손하는 장면,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시위대의 이동경로나 시위 장소를 나타내는 지도는 전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위대가 애초에 신고한 집회 장소에서 이탈했는지 안했는지는 경찰이나 검찰에 의해서만 판단된다. 언론은 사건의 목격자라는 중요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물음표)가 없는 보도

 

시위대의 불법성을 따지는 것 물론 중요하다. 불법적인 집회는 당연히 반대한다. 불법적인 집회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솔직히 인정하기 어렵다. 그걸 인정해버리는 순간 불가역성의 쿠데타도 인정해버리는 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시위대의 불법성, 경찰 진압의 불법성만을 가리는 그들의 태도다. 시위를 비롯한 사건의 본질은 결국 ‘어떻게’가 아닌 ‘왜’에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언론의 존재 가치이기도 하다.

 

시위대는 왜 그렇게 많이 모였는지,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68세의 농민은 왜 시위에 참가했는지 국민은 궁금하다. ‘어떻게’는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영역이다. 그건 여느 언론이나 할 수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왜’는 다르다. 어떤 언론이든 ‘왜’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나 그것이 권력에 대한 비판일 경우 골치 아픈 일이 되어버린다. 결국 ‘왜’를 보도하는 언론은 용기 있는 언론이고, 그렇지 않은 언론은 처세술에 능한 언론일 뿐이다.

 

내가 비판하고 싶은 지점은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를 서울에서 일어난 시위보다 더 중요하게 다뤘다는 내용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파리 테러를 취재한 역량을 왜 서울 시위에는 투입하지 않았느냐에 있다. 보수적인 성향이든 진보적이 성향이든 언론은 기본적인 언론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 언론의 기능은 넓게 보면 언론 외의 정당, 시민단체, 시민들에게도 있다.

결국 비판의 범위는 한없이 확대돼 마침내 반성에 이르게 된다. 여당과 야당은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나? 시위에 참여했든 참여하지 않았든 또 찬성하든 찬성하지 않았든 수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번 시위에 대해 충분히 언급하고 묘사했나? 나를 비롯한 일부 시민들은 겁에 질려 시위를 외면한 건 아닌가? 또 불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주장과 근거를 논리 없이 깎아내리지는 않았나?

 

프랑스 테러 이후 SNS에는 프랑스 삼색기를 활용한 프로필 사진들과 pray for paris라는 해시태그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무고하게 희생당한 100여명과 물대포로 의식을 잃은 1명의 목숨은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pray for paris만큼이나 pray for seoul을 외치고 싶다.

 

by 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