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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추천

<바닷마을 다이어리> 딱히 위로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가끔은 위로라는 말이 버거울 때가 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슬픔이 닥쳤을 때가 그렇다. 시간이 흐르는 것만이 약인 그 순간, 어설픈 위로는 외려 독이 된다. 그럴 때 나는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힘들어 하는 그 누군가의 옆에 머무른다.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하니까. 속 주인공 자매들은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딱히 건네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둘째는 첫째에게 맨 정신으로는 오글거리는 말을 못하겠다는 말도 한다. 낯간지러운 위로를 하기 어려운 사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상적인 말들이 어찌나 편안함을 안겨주던지. 는 만들어낸 위로 대신 자연스러운 평안을 전하는 영화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남겨진 세 자매는 다행스럽게도 건강히..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2016년 1월 개봉 기대작 세 편 이 글을 보는 여러분, 2015년 힘들었던 일은 다 털어버리고, 2016년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영화도 많이 보시길. 저는 당장 오늘 조조로 영화 보러 갑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 1월 7일 개봉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장. 각기 다른 이유 길 위를 떠돌던 ‘증오의 8명’이 모인다. 레드 락 타운으로 죄수(제니퍼 제이슨 리)를 이송해가던 교수형 집행인(커트 러셀), 현상금 사냥꾼(사무엘 L. 잭슨)과 보안관(월튼 고긴스), 그리고 먼저 산장에 와있던 연합군 장교(브루스 던), 이방인(데미안 비쉬어), 리틀맨(팀 로스), 카우보이(마이클 매드슨). 만만치 않은 8명이 모인 산장이 잠잠할 리 없다. 독살 사건이 발생한 뒤, 산장의 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12월 개봉 기대작 다섯 편 11월 내내 나를 뒤흔들었던 건 ‘연대’라는 단어였다. 달리 말해 한동안 나는 드라마 의 여파로 끙끙 앓을 것만 같다. 나를 울렸던 의 한 장면. 노동조합에 막 가입한 한 계산원은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조끼를 입지 못한다. 그녀는 남몰래 옷을 갖고 계산대에 간 뒤, 쭈그려 앉는다. 동료들의 시선을 피해 조끼를 꾸역꾸역 입은 뒤에도 그녀는 쉽사리 일어서지 못한다. ‘나 혼자’라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눈을 질끈 감고 일어섰을 때,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노조 조끼를 입은 계산원들은 별 말 없이 미소 짓고 있었으나, 그들은 단지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연대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단단하거나 확고부동한 시멘트 같은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건 말랑말랑하고..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11개봉 기대작 세 편 같은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과의 모임에는 남다른 기억력을 뽐내는 사람이 꼭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7년 만에 만난 재수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유달리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왜 걔 있잖냐. 맨날 잠자고, 자습 빼먹고 피시방 가던 놈. 하, 누구더라...” 다들 조용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때, 뒤늦게 합류한 A가 치고 들어온다. “아, X 말하는 건가? 자습이 뭐냐. 수업도 빼먹고 피시방 돌아다니느라 바빴지. 걔네 무리가 있었어. Z, W, U랑... 맞다, S. 이렇게 넷이서 같이 다녔잖아. 아, 그리고 니네 그거 아냐? Y랑 X랑 잠깐 사귀었던 거.” 하나 더 있다. 연례행사처럼 모이는 중학교 동창(회라기엔 초라하지만 어쨌든)회.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더보기
이선균 하나로 끝까지 가는 영화 <성난 변호사>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선균이 돌아왔다. 전작 와 유사한 풍의 영화인 로. 달라진 게 있다면 전작과는 달리 원톱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결국 영화의 성공은 조진웅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 넣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역할의 중심은 다시 이선균이다. 이선균은 “이기는 게 정의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변호사 변호성으로 분한다. 성난 변호사에 걸맞은 이름이다. 그러나 변호성은 능력 없이 성만 내는 변호사는 아니다. 첫 장면에서 드러나듯 그는 승소를 위해 감정이 아닌 논리를 앞세운다. 결과는 변호성의 승리. 피고였던 제약회사 로믹스의 문지훈 회장(장현성 분)은 그에게 또 다른 소송을 맡긴다.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회장의 운전기사를 변호하라는 임무다. 돈을 최고로..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9월 개봉 기대작 네 편 또 다시 개강이다. 벌써 9번째. 그러니까 내게 이번 가을 학기는 4년 동안 채우지 못한 학점을 따기 위한, ‘추가학기’다. 단 2학점이 모자랐다. 여름 계절 학기에 들어야지, 했는데 몇 개 개설되지도 않은 강좌들을 노리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따돌리지 못하고 그만... 여기까진 대외적인 변명이다. 솔직히, 아니 더 엄밀히는 무의식적으로, 막연한 ‘백수’생활에 대한 불안이 컸다. 취준생은 노력이야 가상하다 하더라도 어쨌든 백수고, 백수는 곧 낙오자니까. 아직까지 학생이라는 편안한 신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나보다. 다행이 2학점을 들으면 학비의 1/6만 내면 되었다. 그 정도 돈이면 반 년 동안 알바로 모은 알바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계절학기 수강신청 날, 나는 이상하리만치 게을렀고 예상보다 빨리 수강 정원은.. 더보기
놀랄 만한 공포를 주지는 못했던 <퇴마: 무녀굴> 겁이 많은 이유로 공포영화를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문제는 영화를 본 이후다.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포영화를 돈 내고 볼 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짜로도 보지 않을 만큼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엉겁결에 보게 된 영화가 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비록 원작 소설을 보지 못했지만 원혼에게서 벗어나려는 금주(유선 분)가 처한 비극적 굴레와 그를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퇴마사인 진명(김성균)의 독특한 치유법은 관객들에게 서늘한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정신과 의사면서 동시에 무당의 아들인 진명이 지광(김혜성 분)을 영매로 삼아 환자를 치료하는 첫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예측 가능한 공.. 더보기
<차이나타운>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걸작이 나타났다. 실로 오랜만이다. 물론 ‘최근 한국 영화’ 중에서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이 말은 곧, 역설적이지만 의 가능성과 동시에 결정적인 한계를 함축한다. 말하자면 은 일종의 데자뷰처럼 다가오는 현재 한국 영화의 퇴보하는 경향 와중에 피어난 핏빛 들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그 꽃은 정갈하게 구획된 정원 위에서 피어났다. 비록 잡초라고 할지라도 의 기반은 현대 영화 시스템이라는 복제된 정원에 있다는 말이다. 결국 의 가능성은 영화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으며, 동시에 결정적인 한계는 영화와 그를 둘러싼 영화 산업 구조와의 상호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은 여러 제약을 어느 정도 수용했지만(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과.. 더보기
<쎄시봉> 정우 연기와 음악은 좋았으나 기대 반 걱정 반 을 보러 갔다. 사실상 기대와 걱정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도의 차이었으니까. 70년대 당시의 음악, 풍경, 인물들을 어떻게 재현해낼지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과잉된 해석으로 또 하나의 신화가 재생산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지극히 주관적인 2월 개봉 영화 기대작’)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와 걱정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기대는 무너졌고, 걱정은 같은 의미에서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억지스러웠지만, 울림이 없지는 않았다. 아래 세 항목으로 나눠서 에 대한 감상을 적었다. 1. 이건 그냥 로맨스 영화잖아요? 영화는 70년대를 재현하는데 충실했다. 인물들의 싱크로율이나, 당시의 서울 풍경, 그리고 옷차림새 모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가 충족된 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