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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은 이유로 공포영화를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문제는 영화를 본 이후다.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포영화를 돈 내고 볼 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짜로도 보지 않을 만큼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엉겁결에 보게 된 영화가 <퇴마: 무녀굴>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비록 원작 소설을 보지 못했지만 원혼에게서 벗어나려는 금주(유선 분)가 처한 비극적 굴레와 그를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퇴마사인 진명(김성균)의 독특한 치유법은 관객들에게 서늘한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정신과 의사면서 동시에 무당의 아들인 진명이 지광(김혜성 분)을 영매로 삼아 환자를 치료하는 첫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예측 가능한 공포는 무섭지 않았다

 

영화의 공포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금주가 현실에서 겪는 이상증세들이었다.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리고 공간이 뒤틀리고 한기를 느끼면 어김없이 공포가 찾아왔다. 다른 하나는 최면 중에 일어나는 금주의 빙의 증상. 목소리가 변하고 제주도 방언을 쓰는 금주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역설적이게도 이 두 가지 포인트에서 영화가 아쉬웠다. 두 가지 포인트가 무섭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너무 친절한 게 탓이었다. 관객들에게 이쯤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오니까 기대하고 있어, 하는 식의 분위기가 감지되니 무섭기는 해도 적어도 놀라지는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타이밍이 문제였다. 마치 썸을 타는 여자가 이쯤 되면 남자가 고백하겠지, 라고 여기는 상황에 비견될 만큼 영화의 공포는 예측 가능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측 가능한 공포는 무섭기는 해도 충격을 줄 수 없다. 찝찝함을 남겨주기는 하지만.

 

그것만 아쉬웠다면 좋았을 텐데 또 다른 아쉬움도 있었다. 그것은 반복이었다. 공포 포인트가 2가지라면 상황이라도 달라져야 하는데 그런 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레퍼토리가 항상 똑같으니 주인공이 분명 또 다른 공포상황에 처했는데도 심드렁한 태도로 볼 수밖에 없었다. 조건 반응하듯 방울 소리가 들리거나, 주인공이 한기를 느끼거나, 음산한 음악이 나오면 항상 기괴한 존재들이 튀어나왔다. 하다못해 한두 번의 변주—이를테면 귀신인 줄 알았는데 그냥 사람이었다는 식의—라도 있었으면 ‘이번엔 진짜일까’ 하는 식의 긴장감이라도 생겼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나중에는 귀신이 등장할 타이밍에 어떤 귀신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지루한 반복에 호기심이 공포감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겉돌게 된 4‧3 사건과 종교

 

그럼에도 영화의 스토리는 꽤 선명한 편이었다. 다른 공포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제주 4‧3 사건 당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의 원혼을 담고 있어 나름대로 비장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또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그 4‧3 사건은 말 그대로 배경에 불과했다. 정치적 민감성 때문인지, 상영 시간의 한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에는 4‧3 사건의 피해자인 금주의 할머니만 짧게 나올 뿐, 4‧3 사건 자체는 영화의 핵심 스토리라인에서 비껴나간 듯한 인상을 줬다.

 

같은 차원에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강 목사(천호진 분)다. 강 목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역시 그 이상의 진전을 찾을 수 없었다. 제주에서 사역하던 강 목사가 어떤 연유로 금주와 얽혔는지, 왜 그녀를 납치했는지 영화는 말끔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그 결과 찝찝함은 더욱더 가중되었다.

 

어쨌든 강 목사의 존재 자체는 영화에서 분명 중요했다. 무속신앙과 종교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또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는 점에서. 하지만 스크린 속 강 목사의 모습은 어땠나? 광기에 사로잡혀 금주와 그의 딸을 죽임으로써 원혼을 없애려는 것이 전부였다. 다시 말해 무속신앙과 종교의 갈등이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작 보이는 건 방향 다른 광기뿐이었다. 그 결과 원혼과 목사의 대결은 별 다른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빛바랜 배우들의 열연

 

배우들의 연기는 무난한 편이었다. 특히 진명 역을 분한 김성균의 연기는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 캐릭터를 소화한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이웃사람> <살인의뢰> 등에서와 같이 차분하고 냉정한 연기를 했다. 유선과 차예련, 김혜성의 연기 또한 매끄러웠고 딱히 연기력 논란에 휩싸일 만한 장면도 없었다. 특히 유선은 출산 후 첫 영화 출연이었음에도 모성애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과 비정한 모습을 오가는 연기를 잘 수행해냈다.

 

하지만 배우들이 열연에도 불과하고 영화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만으로는 풀릴 수 없는 의문 때문이다. 가령 진명을 예로 들어보자. 진명은 아버지가 무당이었고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동시에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 초반 그는 가족(아내라고 짐작된다)의 환영을 본다. 그리고 이후 자살을 시도하는 가족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이 두 장면은 진명이 아픔이 있는 캐릭터라는 사실만 확인해줄 뿐 다른 의미는 도출해내지 못한다.

 

이외에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장면들은 몇 개 더 있다. 방송국 PD인 혜인(차예련 분)이 왜 그토록 진명의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건지. 또 잠깐 나왔지만 혜인은 어떻게 지광에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지광이 혜인에게 자신이 건담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음)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감독과 제작자가 속편을 의도하고 그런 설정들을 배치했는지도 모르겠다(영화의 결말은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영화 속 물음표들이 많다 보니 공포영화를 봤음에도 시원함보다는 찝찝함이 더 깊게 남았던 것 같다.

 

오랜 만에 본 공포영화였다. 무섭기는 했지만 예측이 가능했던 이유로 별로 놀랄 만한 장면이 없었다. 한 가지 더, 머리가 하얗게 변색되는 장면에서 CG 처리한 것이 어색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썩 내켜하지 않는 공포물이지만 정작 영화가 공포를 주지 않을 때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by 락

 

*사진 출처: 씨네그루(주)다우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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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ngenv 2015.08.21 19:30 신고

    방울소리 하니까 예전 '착신아리'가 생각나네요. 핸드폰 착신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