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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

[푸디세이아] 19. 취재 후의 잔치국수 답답한 마음에는 출구가 없다. 삶은 이를테면, 아무리 기를 쓰고 봐도 답을 알 수 없는 거시경제학 문제와 같다. 이제까지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듯한 막막함에는 샛길조차 없다. 올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는, 르뽀를 쓰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져 조우했던 잊혀진 도시의 기억과 같다. 알 수 없다. 그 어딘가에는, 정답이란 게 있는 것일까. 겨울 어느 날 2시간 내내 동네를 빙글빙글 돌며 맞췄던 퍼즐은 끝내 완성할 수 없었다. 길은 보였지만, 삶을 내던져 그 답을 끄집어 올려낼 자신이 없었다. 동네의 옛 이름에 인상이 변해가는 방앗간집 남자들, 고개를 돌리며 신경질을 냈던 노인. 전화 너머로 프로파간다와 신념과 공식적 멘트를 쏟아냈던 이들과, 마치 허상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온라인.. 더보기
<미스 슬로운>, 캐릭터가 주는 속도감 타격감.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굉장히 이질적인 표현이지만, 영화 을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적합한 단어를 찾기는 어렵다. 시종일관 빠르고 경쾌하게 치고 올라가는 영화는, 약간의 ‘클리셰’가 됐을지도 모를 영역들마저 특유의 속도감으로 극복해나간다. 영화는 제4의 벽을 넘지 않으면서도, 이미 관객의 의중과 반응 정도는 예전에 예측했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바로 캐릭터의 힘이다. 엘지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 업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로비스트인 그는, 그 명성에 걸맞게 날카롭고 차갑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치고 들어오는 그의 전략은, 적은 물론 아군마저 계산 범위에 두고 움직인다. 하루 16시간을 일하고,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약을 달고 사는.. 더보기
[푸디세이아] 18. 네모난 세계 같은 자리를 반복할지라도 몸에 닿는 락스 냄새가 좋다. 게으름의 면피라도 온몸의 세포들 사이로 파고드는 듯한 새벽의 차가움이 좋다. 한 번 몸에 익힌 감각은 소멸되지 않는다. 물길 사이로 흘러가는 발은 자연스럽게, 오래돼 잊혔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감각들을 다시 살려내 되풀이한다. 적막할 수 없으나 적막한 적막함이 주는 아스라함 속에서의 자맥질. 공간은 네모로 가득하다. 피곤에 절은 채 초롱초롱한 눈빛들과, 그 눈빛들에 어울리지 않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었던 날.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삶. 바라건대 그 많은 꿈들로 가득한 눈빛들이 실망 속에서 시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차마 전하지 못한 유물의 그림자를, 혹이라도 꿰뚫어볼까 느낀 두려움의 순간들. 다만 그 날의 내가 .. 더보기
[푸디세이아] 17. 식구(食口) 50km가 넘어가면 허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성묘를 위해 간만에 운전을 한다. 근 두어 달 만에 잡은 운전대는 매번 새로워서, 순간순간이 위기다. 언젠간 익숙해지겠지란 막연한 생각은 전방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다른 차량들을 볼 때마다 깨진다. 눈치 못 채는 사이에 느낀 인생 ‘최고’의 위기도 여러차례. 그래도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여행 아닌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다니는 일이 많다. 게으른 이는 집을 떠나는 일을 귀찮아하지만, 막상 도착한 타지가 가진 그 나름의 매력을 사랑한다. 이번 성묫길에는 대천을 간다. 그 바다, 겨울바다는 수많은 폭죽들이 밤새 펑펑 터지고 눈덩이를 뭉쳐놓은 듯 포동포동한 갈매기들이 뽈뽈거린다. 밤이고 낮이고 하염없이 물결치는 파도. 생각해보니 올 겨울 .. 더보기
[푸디세이아] 16. 취중일기 [푸디세이아] 16. 취중일기. 술을 살짝 과하게 먹고 나서 글 쓰는 일을 선호하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으므로 손이 가는 대로 노트북을 친다. 탁탁 거리며 울리는 키보드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하다. 기분 탓인가. 판을 키운다. 분명 시작은 2명이었지만 결국엔 여섯까지 늘었다. 연속해서 이틀을 같은 사람들을 봤으나, 그럼에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진 않았다. 사람 만나는 일을 그토록 귀찮아하건만 그럼에도 즐거울 땐 즐겁다. 1차. 유진. 기껏 약속을 6시 반으로 잡았건만 평생 그런 적이 없던 이들이 뭐라도 잘못 먹었는지 일찍도 모인다. 장소를 묘사하면서 동선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한참을 까였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려나. 다섯이서 녹두전 3개에 냉면 4, 설렁탕 1, 수육 1개를 시켜 노.. 더보기